광고회사 4년차 카피라이터가 기꺼이 습작생이 되기까지
퇴사 결심 이후에 실제로 퇴사까지는 2주 정도의 과정이 소요되었다. 어색하고 붕 떠 있는, 분명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것 같은 괄호 속 인물처럼 앉아있다간 조용히 마지막 퇴근을 마쳤다.
며칠이 지났을까, 안부도 주고 받은지 오래된 대학원 지도교수님께 갑자기 연락이 왔다.
잘 지내니? 시간 되면 밥 한 번 먹자.
입사 소식 조차 건너서 전해드린 게 다였기에 퇴사 소식은 아실리도 없었다. 쌓인 연차만큼 학교와도 멀어진지 4년여가 지난 후였으니까. 마침 퇴사한지라 평일 저녁에 약속을 잡고 여유롭게 학교 근처로 갔다.
역에서 내리자 쏟아져나오는 대학생들 무리와 마주쳤다. 학교 이름이 새겨진 옷들과 가방을 들고 무언가에 집중한 채 혹은 삶에 지친듯이 무표정한, 혹은 즐겁게 대화 중인 이들. 퇴사 이후 나의 삶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놓여있었지만 대학생 때만큼 미래에 대한 기대들로 가득했던 적도 없었지. 하는 생각에 그 시절의 나와 그들을 겹쳐보며 조금 슬퍼졌다. 단순히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족에서 연유한 슬픔이라기 보다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세상에 대한 믿음이나 희망이 좀 더 있던 과거의 내가 부러웠던지도.
그렇게 만난 선생님은 예전처럼 쾌활하게
"내가 좀 점쟁이 같은 면이 있잖니. 어떻게 너 퇴사한 걸 딱 알고" 하고 운을 떼셨고
이어 대학원 시절을 비롯해 내 업무 이야기, 최근 학계 동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퇴사 이후엔 우선 여행을 다녀올까 한다고 하자
"너 글은 더 안 쓰니? 여행 갔다 오면 낯선 이미지들 보고 올텐데" 하시고선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네 시가 나쁘지는 않았다며 이번 기회에 등단 준비를 해보는 것은 어떻냐고 던지신다.
나는 이 말에 무척 놀랐는데 선생님은 과거 합평 시간에는 분명히 "뭐 어떤 부분은 재밌긴 한데. 이건 시가 아니야"라고 냉정하게 말씀하셨던 걸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졸업 이후에 여전히 시를 종종 쓰고 있단 건 모르시겠지만.
대체적으로 글 쓰는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 발화 욕구도 강하고 자아 또한 비대하다. 그러니까 자꾸 뭔가를 얘기하고 싶어하지. 물론 나또한 그렇기에 이름 알려진 작가인 지도 교수님이 그렇게 말해도 대충 흘려듣고 사실 쓰고 싶은 거 계속 쓴다.
대화 중 대학원에 다시 오지 않더라도 등단을 준비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던 말이 유독 그 날 기억에 남았다.
나는 글을 쓰면서 돈을 벌되, 조금 더 대중적이고 가벼운 글이 돈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고 순진하게 그러한 이유로 광고인이라면 하나쯤은 있는 흔한 대외활동이나 광고제 수상 경력도 없이 카피라이터 생활을 시작했다.신입치곤 나이도 많고 대학원 경력 인정도 받을 수 없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은 커리어 시작이었다.
그러나 광고계와 마케팅계에는 정말 말그대로 일에 미친 사람들이 많았다.
어딜가나 열정이나 일에 대한 흥미도는 중요하지만 유독 광고계에 그런 사람이 많은 건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조금 낡은 표현이지만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릴만큼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며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들을 만드는 영향력있는 컨텐츠를 생산해낸다는 즐거움덕일 것이다. 때문에 야근이나 주말출근 등도 감수하고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동력 하나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같은 사람들은? '버티다'가 대리직급 즈음에 커리어를 이탈한다. 그래서 4년차 정도가 황금연차라고 불리기도 하고.
좋아하서 하는 일에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나 나의 자아는 회사 밖에 있다고 여겼고, 정말 드물게는 퇴근 후 혹은 주말에 공연이나 전시를 볼 때 난 언제나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자리한 나의 정체성은 문학과 글이었고, 그 무엇보다도 잘하고 싶은 분야도 그것이었다. 그걸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다시 찾아낸 것이었다.
글은 대중의 주된 매체가 활자에서 디지털매체로 전환되며 오히려 더 낮은 허들로 많은 사람들의 컨텐츠가 되고 있다. 글 잘쓰는 사람은 정말 많고, 글이 업이 아니더라도 글은 잘 쓰면 좋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나는 여전히 나를 정의하는 가장 커다란 방식을 글이라 말하고 싶었고, 일종의 자격증과도 같은 등단이라는 보수적이고도 확실한 방식에 도전할 가장 적절한 시기는 지금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