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생의 탄생

습작생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 지는 것이다.

by 반작

등단과는 관련 없지만 상금이 걸려있다던 한 기업 주최의 문학상 작년 수상집, 최근 발표하신 선생님의 시집에 사인을 받아 들고 그 날의 만남은 마무리되었다. 다른 직종으로 이직을 한다지만 나는 계속 글을 쓰는 일을 할 것이었으니 등단이 일종의 스펙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선생님의 말이 여운으로 남아 맴돌았다.


3여년간 일을 하며 당장 눈 앞의 프로젝트와 아이데이션, 그 외 현실적인 잡무들만 생각하느라 잊혀진 뇌의 어떤 부분이 깨어난 기분이었다. 최근 무슨 작가의 책을 인상깊게 읽었는지, 어떤 이론에 관심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내가 몹시 설레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낯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시작한 것이었는데 일이라는 것이 그렇듯 사실 내 심장을 뛰게 한 적은 없었던 거였다.


30대에 들어서면 진로 고민은 없지 않을까 기대헀던 어린 시절의 희망사항과 달리 여전히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돈이 꾸준히 벌리는(이제 '잘'이라는 옵션은 포기했다는 게 굳이 따지자면 어린 시절과의 차이점이랄까) 일을 할 것인지는 내게 유효한 고민 사항이다.


선생님은 거의 손을 대시지 않은 채 나 홀로 맥주를 4병 즈음 마시고 자리가 정리되었기에, 내가 좋아하던 것을 다시 발견한 설렘과 그동안 흘려 보낸 시간에 대한 아쉬움으로 집으로 바로 향할 수가 없었다. 지하철 5정거장여 되는 거리를 걷기로 결심하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다. (난 종종 걸어다니면서 술을 마시는 길맥파이다) 해는 이미 진 후였기에 맥주를 들고 걷는 건 창피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이라면 맥주를 길에서 마시지 않겠지만. 무작정 같이 글을 쓰고 공부를 하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3년 만이었다.




그 친구와 마지막 만남은 같이 들은 외부 합평수업에서였다. 졸업 후에 난 아마 취업을 준비 중이었을테고 그 친구는 회사를 막 다니기 시작했던 참이었다. 우리는 시를 계속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한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시인의 합평 수업을 함께 들었다. 8주 정도 진행되었던 수업 중 한 번 자신의 시에 대한 합평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수업의 선생님은 시집 한 편을 내신 시인이었고, 이전에 읽어본 적 있던 시집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공부를 잘 가르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시를 쓰는 시인은 내 시를 잘 읽어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부드럽고 다정하다가도 합평할 때면 시에 대한 애정을 담아 무척 날카롭게 말씀을 덧붙이곤 하셨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이 말을 너무 심하게 하진 않았는지 걱정하는 사랑스러운 분이셨다.


시 합평 수업의 구성원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시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을 비롯하여 문예창작과나 국문과 소속의 학생 또는 해당학과 졸업자, 글과 관련된 일을 하는 직장인, 시인을 향한 꿈을 간직해온 중년, 그리고 나. 덜 다듬어진 날 것의 형태로 쑥쓰러워하며 합평 자리에 가져온 다양한 사람들의 언어를 읽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들은 즐거웠다. 나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틈과 이들을 잇는 어미, 조사를 기호처럼 읽어내고 그 사람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즐기기에.


부지런한 편도 아니거니와 자신감이 있는 편은 더욱 못 되어서 나의 합평은 마지막 차례에 이루어졌던 것 같다. 이전에 학교에서 합평 받았던 시 중 하나를 골라 전체를 퇴고해서 가져갔다. 이미지들을 가득 담아 내가 본 순간을 전달하고자 애썼다. 나에게 시란 이미지였다. 이미지를 통해 순간을 감각하게 하는 것이 나의 짧은 시론이라면 시론이다.


같은 습작생의 입장이므로 언제나 비판은 조심스럽고 칭찬은 화려하다. 단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장점도 같은 비율로 언급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합평 방침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쏟아진 코멘트들은 황홀한 수준이었다. 그 중에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말은,


"당신과 같은 글을 쓰고 싶었어요."


이 말을 어떻게 잊을까. 수업 뒷풀이 후 선생님과 함꼐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던 길에 선생님이 갑작스레 하던 대화를 멈추고 당신의 시가 나쁘지 않으니 계속 썼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준 것도 기억에 남는다. 부족한 점도 많고 고칠 부분도 많았지만 나는 언제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한없이 명랑하다.




지금도 그 순간들을 떠올리는 지금도 설레지만 종강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곧 나는 회사에 들어가게 됐고 이러한 설렘을 잊은 채 3년을 보냈다. 책을 읽을 시간 조차 부족하던 나날이었다. 몇 년 만의 연락이라 당황스러울 법도 할 터인데 통화 연결음이 얼마 흐르지 않아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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