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분 쌍둥이 Sep 03. 2024

3분 쌍둥이입니다


“혹시 쌍둥이?”


대한민국에서 쌍둥이로 성장해 오면서 “안녕하세요.” 보다 많이 들었던 첫인사말입니다.

쌍둥이로 태어나 어딜 가더라도 항상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쌍둥이로 걸어왔던 그 매일매일이 항상 꽃길이었던 건 아닙니다.

때로는 쌍둥이여서 더 어렵고 힘들기도 했고 더욱더 나답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고민을 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인생의 차가운 겨울날도 따뜻한 봄날도 항상 함께 걸어갈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

이런 쌍둥이들의 인생이 때로는 얼마나 힘들기도 재밌기도 그리고 행복하기도 한지 글로 담아보려 합니다.

3분 차이 쌍둥이 언니와 쌍둥이 동생이 성장하면서 각자의 시선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요.

이제는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서 되돌아보니 쌍둥이여서 세상에 대해서 더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힘들었던 많은 경험들 속에서 하나씩 배우고 알게 된 세상을 단단하게 살아가는 법을 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희가 쓰는 이 글이 대한민국에서 쌍둥이를 키우게 되실 예비 부모님들이나 아직 성장하고 있는 쌍둥이들 그리고 늘 새로운 하루와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분들께 공감과 응원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쌍둥이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부모님께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3분 쌍둥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쌍둥이로 살아가다 보면 스몰토크의 달인이 된다.


어려서부터 하루에 1번은 무조건 모르는 사람과 스몰토크를 하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우리 쌍둥이는 둘 다 소극적인 성격을 많이 고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쌍둥이가 지금만큼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방금 탄 좁은 버스 안에서부터 100명씩 면접을 보기 위해 모인 면접장에서까지 어린 유치원생부터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장소나 연령대는 상관이 없었다.


그냥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꼭 하루에 1번쯤은 이런 대화를 하게 된다.


“혹시 쌍둥이?”


조심스레 물으며 다가오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 호기심과 쌍둥이가 100% 맞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쌍둥이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면 그때부터는 일종의 미니 호구조사가 시작된다.

바로 몇 분차이냐는 질문과 함께 누가 언니 누가 동생이냐는 질문이 수식어처럼 따라온다.

그럼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3분 차이로 얘가 언니 제가 동생이에요.” 하며 스몰토크를 시전 한다. 닮았다 신기하다 등등의 짧은 몇 마디 대화가 이어지고 나면 금방 3분이 지나간다.

궁금증이 사라지고 조금의 어색함과 함께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면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고 서로 갈 길을 가면 된다. 이렇게 대부분의 스몰토크는 약간의 부끄러움 그리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평화롭게 끝이 난다.

하지만 그중에서는 종종 마지막에 “그래도 3분 차이라도 언니는 언니라고 해야지!” 라며 훈수 아닌 훈수를 한 마디씩 던지고 가시는 분들이 있다.


이때부턴 3분 차이 쌍둥이 동생의 억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게 된다.

다행히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들어서인지 “3분 차이가 무슨 언니는 언니야!”라고 하며 왠지 모를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던 꼬마는 이제는 무덤덤하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마는 대인배가 되었다.



3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컵라면의 면이 익어가고 레토르트 카레가 차갑다가 따끈해지는 시간



그 3분 차이로 우리는 쌍둥이 언니와 동생이 되었다.

겨우 3분 차이로 한날에 같이 태어났는데 언니와 동생이 되는 건 너무 이상하고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때는 몰랐다.

쌍둥이면 다 똑같은 쌍둥이지 언니 동생 같은 건 없다고 그렇게 자부했었는데 성인이 되고 보니 3분 차이라도 언니는 언니 동생은 동생인 것 같다. 어쩌면 미니 사회생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유치원에서 초중고를 지나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각자 언니 동생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언니에게 언니라 동생에게 동생이라 부르는 쌍둥이는 아니지만 말이다.

똑 부러지는 3분 차이 언니는 덤벙거리는 동생을 항상 챙기고 3분 차이 동생은 그런 언니에게 늘 의지한다. 그 3분 차이로 언니는 언니답고 동생은 동생답게 컸다니 우리가 생각해도 신기한 포인트다.


그렇게 우리 쌍둥이에게 3분이란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카레가 금방 따끈해지는 시간이지만 우리에게는 엄마 품속에서 한 명씩 세상 밖으로 나와 쌍둥이지만 각자 언니답게 동생답게 크게 된 신기한 시간이기도 하니까.


마지막으로 앞으로 쌍둥이로서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들과 감정을 글로 담기에 앞서 대한민국의 모든 쌍둥이 부모님들이나 쌍둥이들 그리고 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독자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한 할머니께서 쌍둥이가 일란성인지 이란성인지 물으시며 듣기 불편한 말씀을 하시거나 친척모임에서 아이들이 외모평가를 당해 속상했다는 엄마들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을 읽고 우리가 어린 시절 친척 모임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들었던 말들이 생각나 엄마와 웃기도 분노하기도 또 공감하기도 했다.


쌍둥이로 태어나 항상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아왔다. 그중에는 독이 되는 관심이나 상처를 주는 말도 많았다. “일란성쌍둥이인데 한 명은 왜 이렇게 부끄러워해!" 또는 ”애들이 아빠를 닮았나 봐요!”라고 했던 말들이 사실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가족끼리 웃을 수 있는 농담거리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평가적인 말들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들께 조언이라기보다는 경험에서 나온 조그만 팁이자 위로를 주고 싶다.


남들이 하는 말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조금 속상하거나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말이다.


쌍둥이로 자라오면서 늘 꼬리표처럼 달고 살았던 것을 두 가지로 말하자면 끝없는 비교와 관심이었다.

마치 인기 연예인들의 삶처럼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끝없이 많은 말들 때문에 많이 울기도 웃기도 했다.

무심코 듣게 된 말 한마디 때문에 싸우기도 울기도 하다를 반복하다 깨달은 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과도한 의미부여와 불필요한 감정소모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우리 쌍둥이는 기분이 나쁜 말을 들어도 가벼운 마음으로 긍정적이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감사한 관심으로 말이다.

덕분에 우리는 두 배로 더 단단해졌고 세상을 좀 더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의 평가나 시선에 별로 동요하지 않는 강하고 단단한 마음도 함께 말이다.


살아가다 보니 다른 사람의 처지나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또 반대로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의 말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건 아닌가라고 반성하기도 한다.


영양가가 있는 말이든 없는 말이든 또 우리처럼 쌍둥이든 아니든 간에 모든 일을 항상 긍정적이고 유하게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꽤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다른 분들도 한번 실천해 보시길 바란다.

불필요하고 영양가 없는 말들과 일들이 나에게 좋은 양분으로 변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쌍둥이 부모님들과 쌍둥이들 그리고 늘 새로운 하루와 고군분투 중이신 모든 분들을 응원하며 첫 글을 마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