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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 쌍둥이 Sep 11. 2024

우리는 모두 핑크를 좋아할 자격이 있다


똑같은 양 갈래머리 똑같은 핑크색 원피스 똑같은 핑크색 구두 우리 쌍둥이는 어렸을 때 정말 똑 닮은 외모만큼이나 똑같은 걸 좋아했다.


아니 사실은 정말로 똑같은 게 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서로의 것이 더 좋아 보여서 그랬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어린 마음에 남의 떡이 더 크고 좋아 보이는 욕심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한 번은 엄마가 색만 다른 원피스를 한 장씩 사 오셨는데 서로 입은 게 예쁘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

결국 한바탕 울음 소동이 지나고 엄마는 다시 똑같은 핑크 원피스 두 장으로 교환해 오셔야 했다.

같은 핑크색 원피스를 한 장씩 입고 나서야 웃는 우리를 보고 엄마는 언제까지 똑같은 것을 좋아하는지 두고 보자시면서 고개를 저으셨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이라도 다르면 꼭 서로 싸우거나 울었기에 우리 집에는 똑같은 물건을 두 개씩 사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똑같은 물건이라도 우리 부모님은 물건에 각자의 이름이 써진 이름표를 꼭 붙여주셨다. 

똑같은 물건이어도 각자 자기 물건에 대해 애착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물건을 가져도 각자 그 물건에 이름을 지어주며 정말 아꼈다.

덕분에 똑같아 보이는 토끼인형도 각자만의 이름을 가지고 서로의 하나뿐인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근래에 이름표에 대한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긴 했다. 사실은 이름표를 안 붙이면 똑같은 물건이라도 서로의 것이 더 좋아 보인다고 하도 싸워서 그랬던 것도 있다는 것.

각자의 배게 옆을 20년 넘게 묵묵히 함께하고 있는 토끼 인형을 보니 허탈함과 웃음이 밀려온다. 

어쨌든 덕분에 물건을 소중히 아끼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서 감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우리 집에서 점차 똑같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평범한 것으로 여겨져 갔다. 일상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주 가끔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거나 한 명은 울지 않는 이상한 날이면 우리 집 식구들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신기해했다.


우리 쌍둥이는 점점 더 이런 동일함이 주는 안정감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걱정으로 비칠 때가 많았다. 

그건 주로 주변 사람들에게서 많이 생겼는데 데칼코마니처럼 똑 닮은 우리 쌍둥이가 성격도 너무 똑같은 것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쌍둥이라고 머리도 똑같이 양 갈래로 묶은 거야?” 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묻기라도 하면 우리는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부끄러움에 동시에 엄마 뒤로 숨었다.

그러면 “아유 성격도 둘 다 똑같이 부끄럼이 많아서 어떡해!” 하는 걱정스러운 말들을 들어야 했다.


쌍둥이라도 각자 주관과 성격이 있게 키워야 한다는 것.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부모님은 쌍둥이가 안 똑같은 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며 가볍게 농담처럼 말씀하시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진지하게 고민을 하셨다. 고민 끝에 부모님은 둘 다 좋아하는 색깔까지 핑크이니 색이라도 바꿔보자고 노력을 하셨다. 엄마는 쌍둥이 동생에게 핑크보다 다른 색이 예쁘다고 설득을 해보려 하셨고 아빠는 쌍둥이 언니에게 핑크색을 동생한테 양보하면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달콤한 제안을 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열띤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 부모님은 우리의 “나도 핑크!”의 늪에서 벗어나실 수 없었긴 하지만 말이다.


바꾸려고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우리 쌍둥이를 보고 결국 부모님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결정하셨다. 그냥 핑크 공주 둘로 키우자면서 말이다.

그 뒤로도 수없이 고치고 바꿔야 한다는 걱정 섞인 말들을 들어도 부모님은 고민하지 않으셨다. 

똑같은 것을 좋아해도 똑같은 성격이어도 괜찮다면서 말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우리 고집 때문에 포기를 하신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가 한 말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으셨다고 했다.


“나도 핑크를 좋아할 자격이 있다고!” “나도 창피해서 울음이 나오는 걸 어떡해!”


우리는 혼날 때마다 이렇게 부모님께 이렇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권리가 있고 각자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다시 깨달으셨다는 것이다.  

그 후로는 똑같이 부끄럼이 많고 소심한 우리의 성격도 부모님은 애써 고치려고 하시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각자가 만들어갈 취향과 성격을 존중하고 지켜봐 주고 싶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고쳐야 할 것 같은 모습을 보여도 부모님은 늘 우리를 있는 그대로 봐주셨다. 

덕분에 우리는 성장하면서 각자 스스로 깨닫고 변화시킨 것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이 된 지금도 스스로 각자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지 않나 싶다.


이쯤 되면 궁금하실 수도 있다. 우리 쌍둥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말이다. 

똑같은 것을 너무 좋아하던 우리 쌍둥이는 이제 서로 너무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가졌다. 

이제는 너무 달라서 걱정이라는 부모님의 농담 섞인 말을 들을 정도다. 좋아하는 옷이나 물건을 고르는 취향이 많이 다른데 그만큼 성격도 서로 정반대로 커버렸다.

쌍둥이 언니는 꼼꼼하고 차분한 편이라면 쌍둥이 동생은 즉흥적이고 무던한 편이다.

슬픈 영화를 보아도 울지 않고 내일 시험이 있어도 여유로운 동생을 볼 때마다 언니는 “넌 정말 T야.” 하면서 신기해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얼굴만 똑같지 정말 다르구나!”하며 다름을 느낀다.


같은 혈액형과는 다르게 한 명은 T로 한 명은 F로 커버린 우리.

우리는 이제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쌍둥이가 되었다. 

부모님이 하셨던 걱정이 무색하게 말이다.


그러니 남을 따라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또는 자신의 성격이 부족하고 주관이 없어 보인다고 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가끔 연예인이 바른 립스틱을 따라 사거나 TV에서 나오는 가수의 긍정적인 성격을 닮으려 노력하면 주변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듣기도 한다. 남을 따라 하는 것이 좋으냐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똑같은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또는 어떤 사람의 좋은 성격을 비슷하게 가지려 노력해 본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그런 경험과 과정들을 통해 진정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를 알게 되기도 하니까.


사람은 성장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만의 색깔을 입게 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성격을 가지려고 노력해도 오직 나만의 특별함이 생겨버린다.

우리 쌍둥이가 그렇게 똑같은 것을 좋아하고 똑같은 환경에서 살아왔는데도 각자 자신만이 가진 특유의 성격과 모습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그 사람만이 가진 특별한 모습이 보인다.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영화를 봐도 각자 자기만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있다.

우리는 매일 비슷해 보이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각자 자기만의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면서 오직 하나뿐인 ‘나’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하루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인 것 같다. 

그래서 혹시 지금이라도  진짜 ‘나’에 대해 헷갈리고 자신이 없는 분이 있으시다면 꼭 ‘나’를 찾는 여행을 해 보시길 바란다.


다른 사람의 말로 듣는 내가 아닌 나의 눈과 귀로 나를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좋겠다.


분명 저 먼 곳에서라도 손을 흔들고 있는 나. 

다른 사람들의 말과 생각 때문에 잠시 잃어버렸던 소중한 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은 남이 아닌 내가 만들어가는 것임을 모든 분들이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핑크를 좋아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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