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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 쌍둥이 Sep 17. 2024

인생에 내리는 비는 맞아도 괜찮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늘 뜻하지 않은 긴 어려움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다. 


그 어려움은 이상하리만큼 오랫동안 그리고 먹구름처럼 함께 밀려올 때가 많다.

애써 내리는 비를 잘 맞고 지나가 보려고 하면 저기서 또 다른 어려움이 어둠과 함께 짙게 내 앞을 드리운다.


이때는 정말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울컥울컥 올라온다. 뒤죽박죽 한꺼번에 몰려온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포기를 하면서 좌절감을 느낀다. 하지만 가끔은 포기만큼 세상을 살아가는데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포기를 딱 하는 순간 생각이 정리되면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비 오는 날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눈뜨기도 힘든 아침이지만 비가 온다고 해서 출근을 안 하지는 않으니까. 


그렇다. 비 오는 날.

우리는 그날을 막을 수 없다.


그저 하늘에서 비가 오면 비가 오나 보다 하고 우산을 챙겨 빗속으로 나갈 뿐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출근을 하고 퇴근할 때는 접은 우산을 들고 좋아하는 맥주를 사서 우리는 우리의 집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 마주하는 우기(雨期)도 잘 지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내리는 비를 애써 피하지 않고 맞았을 때 그저 그 시간을 잘 걸어갔을 때 혼란스러웠던 마음은 맑게 개인 하늘처럼 놀랍도록 개운해지니까.

오랫동안 폭풍처럼 나를 휘몰아쳤던 시간은 잠깐 휩쓸고 지나간 짧은 순간이었다고 생각할 만큼 훌쩍 커버린 ‘나’를 마주하게 된다.


세상은 인생의 날씨는 항상 맑을 수 없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어려운 시간을 잘 걸어왔을 때 우리는 그 시간을 보상받는 것처럼 시원한 날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되도록이면 그런 힘든 시간은 인생에서 자주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 마음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우기(雨期)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회피하고 도망가려 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돌이켜 본다. 


그 비는 맞아도 된다는 것을 우리는 가려진 우산에 너무도 당연히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우산도 없이 인생에 내리는 세찬 비를 피하지 않고 맞았던 적이 있다.

그날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한다.

우리 쌍둥이네 집에도 이런 우기(雨期)가 찾아온 적이 있다.

그건 바로 우리 쌍둥이가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을 때인데 지금도 가장 살아가면서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우리는 고민도 없이 한 목소리로 뉴질랜드에서의 시간을 꼽는다.


아오테아로아 길고 흰 구름의 땅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인생의 긴 우기(雨期)를 만나고 말았다.


철없던 중학생 둘은 크나큰 어려움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2시간의 비행에도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신이 나 있었다.

하지만 인생의 위기는 늘 생각지도 못할 때 찾아오는 법이니까.

우리는 그 위기를 하필이면 그것도 낯선 땅에서 맞이해 버렸지만 말이다.


뉴질랜드 학교 첫날. 우리는 신나는 마음으로 등교를 했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다니! 다른 나라 친구들도 많이 사귈 거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학교에서의 첫날을 마주해 버렸다. 첫날부터 아주 다사다난했다.

교실도 매시간 옮겨 다녀야 해서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고 점심시간에는 교실 앞 아스팔트 바닥에서 친구도 없이 차가운 도시락을 먹었다. 학교 복도를 지나다니면 모두가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수근 거리는 말들 속에서 영어도 잘 못하는데 “아시안! 아시안!” 하면서 킥킥대는 그 소리는 유독 크게 들렸다. 학생증을 신청하러 간 학교 상담실에서는 쌀쌀맞은 선생님의 영국식 악센트를 알아듣다 지쳐버렸다.

잔뜩 추켜올려서 묶은 머리와는 다르게 고개는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모두가 신나게 수다를 떨고 뛰어노는데 우리만 동 떨어진 섬이 된 것 같았다.

이 이국적인 풍경과 우리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검은 머리 외국인은 우리 둘 뿐이었으니 말이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고 집으로 가는 길 우리는 반나절동안 내뱉지 못했던 한국말로 이렇게 서로에게 되물었다.

“우리 어떡해? 우리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살지?”

둘 다 이 낯선 환경과 함께 몰려온 막막함을 온몸으로 느낀 것 같아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뉴질랜드에서의 첫날밤.

온돌이 아닌 차가운 카펫 방에서 담요를 얼굴까지 끌어안고 눈을 감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차가운 공기, 낯선 환경보다 더 춥게 느껴졌던 건 사람에게서 처음으로 느낀 낯설고 차가운 반응이었다.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 친구도 많이 사귈 수 있겠지 하면서 잠자리에 들기 전 열심히 희망회로를 돌렸다.

그래봤자 그건 그냥 우리의 희망사항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는 다르게 우리의 학교생활은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지?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이 긴 우기(雨期)를 우리는 잘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매일 밤잠을 설쳤다. 외딴섬 같이 떠도는 생활이 1달을 넘어가자 처음으로 공포감까지 밀려왔다.


결국 우리 쌍둥이는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포기하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포기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답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 같았다. 우리의 영어실력이 하루아침에 현지인 수준으로 상승하거나 아니면 그들과 비슷한 금발과 파란 눈을 가지지 않는 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포기하고 우리 인생을 힘들게 적시는 그 비를 맞기로 했다.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다고 해서 학교생활이 덜 힘들어지지도 않았다. 하루하루 열심히 고군분투하며 학교를 다닐 뿐이었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지만 놀랍게도 학교를 가는 것만큼은 더 이상 무섭거나 싫지 않았다.

포기를 한 순간 마음이 개운해지니 몸도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는 것 같았다.

학교 가기 전날에도 두려움에 잠을 설치지 않았고 학교에서 눈을 찢는 행동을 하며 아시안이라고 놀리는 친구를 만나도 예전처럼 움츠려 들지 않았다.


비를 맞는 게 더 이상 힘들지 않았다.

그냥 맨 몸으로 쏟아지는 비를 맞았다.

뉴질랜드에서는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우산을 쓰지 않으니까.


우산 쓰기를 포기하고 우리는 당당하게 우리에게 일어나는 하루하루를 마주하기로 했다. 


기분 나쁜 상황이 생겨도 “그래 우리 동양인이다! 그렇지만 그런 차별적인 행동은 하지 마!”하면서 당당하게 넘겼다. 푹 숙였던 고개도 들고 그냥 우리답게 행동했다.

우리는 포기를 했으니까 더 이상 움츠려들 지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하지도 않았다.

그랬더니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친구들이 우리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대해주기 시작했다. 말도 걸지 않던 친구가 어느새 우리를 보고 쌍둥이냐면서 관심을 보이고 같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눈을 보면서 얘기하니 선생님들도 우리를 조금씩 더 배려해주려 하시는 것 같았다.

이런 변화는 아주 크고 대단하지 않았지만 그냥 우리 자신이 당당해지니 우울함에서 벗어나 행복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괜히 이 낯선 학교와 낯선 나라 낯선 음식도 점점 아름답고 맛있게 느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포기한 순간 훨씬 나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의 긴장을 풀고 포기라는 단어와 함께 무너져 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이 지긋지긋한 하루의 승리자가 된 기분이 드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 혹시 독자분들 중에도 우리 쌍둥이처럼 인생의 힘든 우기(雨期)를 만나신 분이 있다면 이 말을 꼭 해드리고 싶다.

끝없이 내리는 비도 맞아도 괜찮다고.

포기해도 괜찮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비를 막아주는 우산 속에 너무도 당연히 우리 몸을 보호하려 한다.

그래야 이 세찬 비를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우산이 없이 빗속을 걸어가는 사람을 이상하게 볼 정도다.

우리 쌍둥이도 예전에는 그랬다. 어려움이 생기면 그 어려움을 회피하고 도망가려고 했다. 그것도 안 될 것 같다면 이 어려움을 대신 막아줄 누군가라도 찾으려 애를 썼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이곳.

낯선 땅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알게 되었다.

아무도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아도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도 우리는 다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둠속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마음을 세차게 할퀴는 이 빗방울을 막아줄 존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없어도 괜찮다는 것을 우리는 맨몸으로 비를 맞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누구나 인생의 한 번쯤은 우기(雨期)가 찾아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날이 당신 앞에 왔을 때 우산이 없어도 앞이 보이지 않아도 당당하게 걸어가라고 응원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는 그 빗속을 우산 없이 충분히 걸어갈 수 있다.     


인생에 내리는 비는 맞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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