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빠와 결혼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딸들이 있다.
우리 쌍둥이가 그랬다.
아빠가 “신랑은 1명인데 신부가 2명이라서 어떡하지?”라고 농담 삼아 놀리기라도 하면 우리는 서로가 아빠랑 결혼해야 한다면 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태어나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 아빠였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아빠 사랑은 정말 대단했다.
이제는 아빠의 서재 책상 위에 그 증거가 먼지 쌓인 사진으로 쓸쓸히 남아있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면 엄마 없이 아빠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여행이었던 것 같다.
우리 유치원은 매년 7살 졸업여행을 용인민속촌으로 갔다. 그것도 엄마 없이 아빠와 단둘이 말이다.
그리고 그 졸업여행에서 아빠와 함께 재밌는 코스프레 옷을 준비해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이 하나의 연례행사였다. 그래서 엄마들은 그날을 위해 해외 직구도 마다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옷을 준비했다.
열정이 많으신 우리 엄마도 어떻게 우리를 셋을 꾸며줄지 고민을 많이 하셨다. 유치원 졸업 전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 주겠다는 엄마의 열정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는 우리의 주제를 신랑 신부로 정해주셨다. 당시 아빠가 합창단 활동을 하셔서 나비넥타이가 있고 우리가 매일 입버릇처럼 아빠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니 딱이라면서 말이다.
대신 한 명은 꼭 화동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졸업 여행 마지막 날 밤.
캠프파이어 시간 우리는 신랑 1명 신부 2명으로 아빠의 양쪽 손을 잡고 무대에 입장했다.
꼭 한 명은 화동 옷을 입고 꽃가루를 뿌리기로 엄마랑 약속했는데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화동을 한 사람한테만 인형을 사주겠다는 엄마의 달콤한 유혹도 우리의 아빠 사랑을 말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빠의 양쪽 무릎에 앉아 부케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모습처럼 우리는 아빠와 함께할 때 정말 행복해했다.
아빠를 하도 좋아해서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손도 씻지 못하고 양쪽 팔로 우리를 1명씩 안아주셔야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게 매일매일이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일 것 같았다.
그건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영원히 언제나 말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사진 셔터가 터지는 짧은 시간. 그 짧은 몇 초의 순간처럼 빨리 끝나 버렸다.
아빠와 결혼하고 싶다고 울만큼 아빠를 좋아했던 꼬마 신부들은 그렇게 점점 아빠의 품을 떠나갔다.
젊은 아빠와 어린 우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마지막인 것처럼 그건 우리에게 아주 오래된 일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아빠와 우리가 함께해서 좋았던 날들은 이제는 사진처럼 꺼내보아야 하는 추억거리가 된 것이다.
우리 쌍둥이는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갈수록 아빠를 어려워하고 불편해했던 것 같다.
이제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 왠지 모를 어색함에 서로 자리를 먼저 뜰 정도로 멀어져 버렸다.
요즘 아빠와 딸들의 사이를 보면 친구같이 다정한 경우가 정말 많은 것 같은데 말이다.
서로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아빠와 딸들을 보면 부러움과 함께 어릴 적 우리의 아빠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가까웠던 아빠.
왜 우리 쌍둥이에게 아빠는 이렇게 멀어져 버렸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도 아빠를 정말 좋아했는데 말이다.
학교에 들어가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빠가 무섭고 불편할 때가 많았다.
자라오면서 늘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하시는 엄마와 다르게 아빠는 우리 쌍둥이에게 늘 엄하셨기 때문이다. 다른 집은 엄마가 무섭고 아빠는 딸에게 한없이 다정하다는데 우리 아빠는 왜 이렇게 호랑이처럼 무서운지 불평불만을 한 적이 많았다.
우리가 서로의 신발주머니를 대신 들어주려고 하거나 모르는 수학 문제를 대신 알려주려고 하면 아빠는 무섭게 혼냈다. 아무리 울고 예전처럼 어리광을 부려도 아빠는 절대 받아주시지 않았다.
항상 단호하게 각자 할 일은 각자가 스스로 해야 하니까 도와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아빠가 솔직히 너무 원망스러웠다.
“언제는 가족은 항상 함께하는 거라면서 각자 스스로로 하라니! 정말 자기 맘대로야!”
그렇게 우리는 세트로 아빠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비가 와도 우산 없이 걸어가라는 아빠.
아빠는 우리를 강하게 키우고 싶어 하셨다. 그런 아빠의 모습과 행동이 솔직히 정말 밉고 싫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찬 비가 우리의 인생에 내릴 때
기대서 펑펑 울고 싶을 때
왜 우리 아빠는 젖은 어깨라도 내어 주시지 않는지 하고 말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아빠’란 존재는 항상 뜨거운 여름 같았는데 이제야 아빠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아빠와 함께 했던 모든 계절을 되돌아본다.
아빠는 쌍둥이 아빠로서 우리가 각자 한 명씩 스스로 잘 독립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각자의 인생에 내리는 비도 혼자서 잘 툴툴 털고 걸어갈 수 있게 하고 싶으셨던 마음. 강인한 모습 뒤에 숨어있던 아빠의 따뜻한 진심이 이제는 조금 보인다.
얼마 전 길을 가다 어린 딸에게 다정히 안아주는 아빠를 보며 “아빠도 좀 저렇게 해주지 그랬어!”하면서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결과는 “너희도 한 명이었으면 저렇게 해줬어.”라는 변명 같은 말 밖에 들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자꾸 다정한 아빠와 어린 딸을 쳐다보는 아빠의 눈빛에서 후회와 아쉬움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도 아빠는 쌍둥이를 키우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성인이 되어서 보니 정말로 아이가 잘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의 많은 노력과 사랑이 필요한 것 같다.
쌍둥이를 키우시느라 두 배로 더 어렵고 힘들었을 아빠. 그 시간에 가려져있던 아빠의 사랑이 이제는 조금 보인다.
왜 아빠가 우리를 키우시면서 그렇게 항상 뜨거운 여름 같을 수밖에 없었는지 말이다.
또 반대로 조금은 못되게 굴었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아빠에게 너무 차갑게 굴지는 않았는지 매서운 말들을 쏟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해본다.
어쩌면 늘 우리에게 따뜻한 봄이고 싶었을 아빠의 마음을 모르고 우리가 아빠에게 너무 차가운 겨울은 아니었는지 하고 말이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아빠와 함께 맞이하는 모든 날들은 항상 봄날처럼 따뜻했으면 좋겠다.
멀어져 버린 아빠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함께여서 행복했던 그 따뜻한 봄날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지나간 시간만큼 굳어져 버린 말투와 성격을 바꾸기는 아빠도 우리도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씩 노력 중이다. 아빠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핑계를 삼아 좋아하시는 빵이라도 사서 “아빠도 먹을래?”라며 말을 붙여 본다. 그러면 아빠도 못 이기는 척하시면서 우리와 식탁에 같이 앉아 빵을 드신다.
우리 쌍둥이처럼 아빠와 조금 멀어져 버린 딸들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먼저 용기 내 말 한마디를 건네 보셨으면 좋겠다.
빠르게 지나간 계절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따뜻한 진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은 가족이어서 더 서로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또 마음과는 반대로 나오는 말과 행동 때문에 원치 않는 오해를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진심을 알 수 있는 능력이 가족에게는 있다고 우리는 착각을 하기도 하는 것 같다.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남보다 더 멀어져 버릴 수 있는 것이 가족과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여러분들도 잠시 잊고 있었던 가족의 끈을 다시 단단히 당겨 묶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좋겠다.
바쁜 일상과 함께 풀려 있었던 그 거리의 끈이 다시 좁혀질 때 끈끈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일수록 사랑할수록 더 표현을 해야 그 진심이 닿을 수 있다는 것을 몇 십 번의 계절이 지나서야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다.
가족은 오랜 시간을 함께해도 계절과 함께 변하는 잎의 색처럼 빨리 서로의 진심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그 마음을 모르고 지나친 시간을 아쉬워하고 후회를 하게 되기도 한다.
후회 없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계절이 당신에게는 남아있기를
가족의 진심을 알게 되는 계절이 당신에게는 조금 더 빨리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앞으로 우리가 가족과 맞이하는 모든 계절에는 서로의 숨겨놓았던 따뜻한 마음들이 예쁘게 꽃 피웠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가정의 날들이 항상 따뜻한 봄날이기를 바랍니다.
꾸밈없이 진심을 담아 서로를 사랑했던 따뜻했던 그 계절처럼.
마지막으로 우리 쌍둥이를 키우시느라 치열하게 열심히 사셨던 아빠.
봄처럼 따뜻한 딸들이 못되어드려서 죄송해요.
이제는 우리 같이 손잡고 꽃길만 걸어요.
항상 존경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