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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끌 Sep 23. 2021

사내들만의 미학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책끌#13

사내들만의 미학


최근 TV에서 <삼국지>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대해 비교하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어떤 점이 실제 역사와 같고 어떤 점에서 소설과 다른지에 대해 짚어주어 흥미로웠다. <삼국지연의>처럼 적어도 한 번은 읽어야 할 것 같은 명작들도 오래전에 봤다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데, 이번에 읽어 본 <사내들만의 미학>에서는 처음 읽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내들만의 미학>은 이문열 작가가 25년 전에 펴낸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시리즈를 세월의 변화에 맞춰 새롭게 선보인 개정판이다. '사랑의 여러 빛깔' 편과 '죽음의 미학' 편에 이은 세 번째로 소개된 책으로, <삼국지연의>처럼 사내들의 강인함이 돋보이는 10편의 작품들로 추렸다고 해서 더 궁금해졌다.


이번 개정판에 소개된 중단편 소설은 프로스페로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 모리 오가이의 <사카이 사건>,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우상숭배자들>, 헤르만 헤세의 <기우사>, S. W. 스코트의 <두 소몰이꾼>, 두광정의 <규염객전>, 러디어드 키플링의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에르난도 테예스의 <그냥 비누 거품>, 조셉 콘래드의 <무사의 혼>, 가산 카나피니의 <가자에서 온 편지>까지다. 


이 책에서 관심 있게 읽은 소설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였다. 프로스페르 메리메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역사가로, 우리에게 익숙한 비제의 오페라로 널리 알려진 [카르멘]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 드 모파상과 더불어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단편 작가로, 낭만적 고전주의자로 불린다. 


사내들만의 미학


이 작품은 코르시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한낱 은시계의 유혹에 넘어가 사나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리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10살 된 아들을 처형하는 비정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은 비열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에서도 비정한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물론 일부겠지만) 여전히 비열하고 비정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 경종을 울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즘도 요르단, 이집트, 예멘 등 이슬람권 나라에서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죽이는 관습인 '명예살인(honor killing)'이 자행되고 있어 전 세계인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아무튼 메리메 작품의 특징은 아버지가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처형하는 장면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17세기에 형성된 프랑스 고전주의의 전통을 계승한 낭만적 고전주의자답게 강렬한 문체로 이 장면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비롯해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성, 정의와 용기, 도덕과 규범 등 다양한 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p.45

"아, 아버지, 자비를!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자네토를 풀어주도록 카포랄 아저씨한테 열심히 간청할게요."

아이는 계속해서 말했다. 마테오는 총을 장전하고 아이에게 겨누며 말했다.

"하느님, 저 아이를 용서하소서!"



이 책에서 관심 있게 읽은 또 하나의 소설은 초판에는 없었던 <가자에서 온 편지>였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 무스타파에게'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미국 혹은 유태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팔레스타인 지역의 이야기를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가산 카나파니는 팔레스타인의 저항문학 소설가이자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의 대변인 겸 주간지 <알-하다프>의 편집인으로, 1972년 베이루트에서 그의 차에 설치된 폭탄이 터져 사망했다. 암살된 것이다.

 

사내들만의 미학


이 소설의 제목에 등장하는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남서부,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지중해 해안을 따라 길이 약 50km, 폭 5~8km에 걸쳐 가늘고 길게 뻗은 총면적 약 362km2에 이르는 지역이다. 인구 대부분이 팔레스타인으로 오랫동안 대이스라엘 저항세력의 중요한 거점이 돼 왔다. 팔레스타인과 유대인 정착민이 서로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 출처: 시사상식사전)  


<가자에서 온 편지>는 친구 무스타파에게 가자를 버리고 함께 캘리포니아에 정착해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던 자신을 반성하는 이야기다. 특히 사랑하는 조카 나디아가 폭격으로 잘려나간 다리로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며, 자신은 이곳에 남기로 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편지 말미에는 친구에게도 이곳으로 돌아오라고 재차 요구한다.





p.417

나의 친구여...... 나는 결코 나디아의 다리를, 허벅지 위쪽에서부터 잘려나간 나디아의 다리를 잊지 않으려네. 결단코 잊지 않으려네! 나는 나디아의 얼굴에 새겨진 깊은 슬픔을, 영원히 각인되어 나디아 특유의 표정으로 남게 된 바로 그 깊은 슬픔도 결코 잊지 않으려네.


<사내들만의 미학>에서는 이 외에도 8편의 작품들이 더 실려 있다. 각 작품의 말미에는 이문열 작가의 해설이 담겨 있다. 현대 미술에서도 작가가 어떤 의도를 담아 그렸다고 해도 관객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에 실린 단편도 시험을 보지 않는 한 정답은 없다. 각 작품들을 직접 읽어보고 작품마다 어떤 점들이 지금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의미가 있는지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 포스팅은 무블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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