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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끌 Jul 23. 2022

불편한 시선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01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년 동안 온라인, 비대면이 일상적인 모습이 되면서 디지털 혁신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AI(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 그리고 메타버스 등 차세대 미래 혁신을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주요 요소들은 이미 전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욕구를 크게 확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의식 수준은 어떤가? 시대가 변한 만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변화하고 확장하고 융합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가? 물론 과거에 비해서는 남녀를 바라보는 의식 수준은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이 뿌리 깊고 넓게 퍼져 있다.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이라는 표제어가 눈에 띄는 <불편한 시선>은 명작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미술 작품들을 훔쳐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감동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작품에서 여성들이 강제로 납치되는 장면을 아름답고 박진감 있게 그리고 있거나, 보란 듯이 누워 있는 어린 소녀들의 에로틱한 누드들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p.16

나혜석이나 프리다 칼로는 그들이 남긴 작품에 대한 평가보다 처절했던 삶의 면면으로 위인의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닐까 싶다. 그들은 대단히 극적인 인생 역정으로 세간에 잘 알려진 여성 화가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의지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낸 여성 예술가들이니, 그들을 위인이라 불러도 크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p.21

왕립 아카데미의 창립 회원으로 이름을 올린 두 여성 화가가 왜 조파니의 그림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초상화를 그리던 날 두 사람이 소풍이라도 갔던 것일까? 아니면 이 그림을 그린 요한 조파니가 영광스러운 왕립 아카데미에 여성 화가도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한 것일까?



이 책은 여성인 작가가 과거의 거장들이 그린 그림들을 소개하기 위해 전시 기획을 하고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느꼈던 불편함의 원인을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이라는 10가지 키워드로 뽑아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미술관이나 미술책에 보면 여성의 누드를 그린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고전 명화를 그린 작품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 성경 속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들 속에서도 벌거벗은 여성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무심코 혹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던 문제에 제기된 의문들을 조금은 더 진진하게 들여다보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데생 공부를 하던 시절에 크로키(움직이는 동물이나 사람의 형태를 빠르게 그린 그림)를 몇 차례 그린 적이 있다. 당시 수업 시간에는 누드모델이 참석했는데, 남성 모델은 본 적이 없다. 별다른 의심도 고민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 속에는 불편한 시선들이 담겨 있었다.


p.25

대중적인 성공을 이루었고 아카데미를 통해 더 높은 최고의 경지에 오르려 했던 18세기 여성 화가조차도 반드시 거쳐야 할 누드 교실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그 이전 시대는 들여다볼 필요도 없지 않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p.68

고대 비너스상은 인간이 만든 최초의 포르노이다. 이 말을 들으면 '아름다움의 신 비너스가 포르노라니 이런 불경한 말이 있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비너스 신상이 누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탓하기에는 다른 누드 작품도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남성 누드가 훨씬 더 많았다.



저자는 미술 영역에서 여성이 어떻게 표현되어 왔는지, 여성 미술가들은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역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왜 존재하지 않았을까?', '미술관에는 왜 그리도 여성 누드화가 많을까?'를 이야기하며 10가지 키워드를 통해 여성의 시선으로 미술의 역사를 되짚고 있다.


<불편한 시선>은 역사적으로 미술 작품 속에서 여성이 표현되는 방식을 지적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부터 중세의 교회 건축 조각,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뿐만 아니라 근현대 작가들의 회화, 퍼포먼스 작품까지 고루 담아 소개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편견 등에 대해 의문을 품고 날 선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다양한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하지만 미술사에서 오래도록 전해지고 있는 작품들 속에는 담긴 여성의 모습과 역사적으로 미술계에서 여성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들, 그리고 현대의 여성 미술가들은 이를 어떻게 반전의 기회로 삼고 있는지,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p.82

바버라 크루거는 그림 속 여성이 일방적으로 구경거리가 되어 왔던 역사에 의문을 제기한다. 크루거의 1981년 작 <너의 시선이 내 빰을 때린다>는 사진과 텍스트로 이루어진, 계몽 포스터 같은 느낌의 작품이다. 바버라 크루거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광고와 잡지의 그래픽 디자인을 제작했던 경험이 있었다.


p.98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누드로 그려지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이다. 신이 두 남녀를 창조하는 모습이나, 선악과에 유혹당하는 장면 그리고 금기를 어긴 아담과 이브가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고 나뭇잎과 손으로 몸을 가리는 장면 등은 신체의 아름다움 여부와 관계없이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종종 그려 왔다.



이처럼 수많은 명작들에서 여성 누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건, 미술의 역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주 관객층과 이를 제작하는 미술가들이 대부분 남성이었다는 점에서 저자는 그 이유를 찾고 있다. 미술품 시장이 남성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이 남성 관객의 취향과 선호를 따라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왜 여성 누드에 대한 수요가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고대의 누드 조각상부터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누드 작품을 비교하고 있다. 저자는 남성 누드 작품은 당당하게 묘사되는 반면, 여성 누드 작품은 옷을 살짝 걸치고 부끄러워하는 시선 처리로 되어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한편 역사적으로 늘 대상화되었던 여성의 모습을 현대 여성 미술가들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불편한 시선들에 관심을 기울여 보시기 바란다.



이 포스팅은 아날로그(글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


https://blog.naver.com/twinkaka/222824686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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