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끌 Jul 29. 2022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02


가끔 불안한 생각이 들 때면 잠 못 이룰 때가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개인적으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꽤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큰 실망감을 느꼈고, 한꺼번에 많은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심신에 피로가 쌓여 병가도 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약이란 말처럼 깊게 패고 곪아 터졌던 상처에 새살이 돋듯 조금씩 몸도 마음도 회복되고 있다. 누군가를 잃었을 땐 온몸으로 상실감이 스며든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반복되는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진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지나고 나면 한 단계 더 성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의 현요아 작가는 여동생의 죽음 이후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회복 과정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p.16

불행은 저마다의 속도로 찾아온다. 전조 없이 갑작스레 방문하기도, 기분 나쁜 소리를 천천히 존재를 내세우기도 한다. 나는 전자와 후자를 모두 겪어 봤으니 그들이 동시에 온다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p.18

나와 아빠가 울지 않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부고를 알리자마자 엄마는 울지 않고 바로 가겠다고 답했다. 막내도 울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가 칫솔을 챙겼다. 수화기 너머로 아빠가 경찰에게 사망 추정 날짜를 전달받는 동안 항공편을 예약했다.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인 현요아 작가의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는 가족의 죽음으로 자살 사별자가 된 한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불행 울타리를 벗어나는 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죽음이란 단어는 해서는 안 될 금칙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인생에서 삶과 죽음을 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작가는 이 책을 읽은 후 모든 내용을 잊어도 괜찮다며, 시간이 지나 친구들이 울던 장면이 꿈처럼 옅어졌듯, 책을 읽은 모든 기억을 흐릿하게 둬도 좋다고 말했다. 다만 책을 덮고 나서 스스로의 아픔을 면밀히 해석하고 해독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작가가 동생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한 때가 스물여섯이라고 했다. 나는 스물여섯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취업 준비생이었던 시절을 되돌아보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시절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때 만났던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p.63

세상을 직접 끊어 낸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봤으니 세상 모든 일이 부질없었다. 심지어 밥을 먹는 일조차 무의미했다. 친구와 연락하여 사소한 농담에 웃음을 터트리는 일도 잠깐일 뿐 다시 무료해졌고 재밌다는 영상을 봐도 짜증만 났다.


p.99

비교에는 끝이 없다. 타인에게 찾아온 불행과 행복을 내 것과 견주며 잠시 만족감을 느껴도 결국 내 손톱에 난 거스러미가 가장 아픈 법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아프다고 하더라도 불행과 행복을 경쟁하는 것을 부질없다. 몸을 바꾸지 않는 한 완벽히 타인의 아픔과 기쁨을 누릴 수 없으므로 서로가 겪는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과거에 글쓰기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주어진 주제가 '자신의 세 가지 터닝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라'였다. 그때 내가 썼던 단락 중 하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대한 이야기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시기였지만 돌아가신 분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간다는 건 쉽지 않았다.


작가가 마주했을 동생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작가는 죽음 뒤에 가려진 남겨진 이의 상처와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해주고 있다. 개인적인 고통이나 슬픔이 남의 일과 비교해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이다. 작가는 어떤 아픔이든 회피하지 않고 면밀히 해석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괴롭히던 불행의 울타리를 깨고 나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생은 쉽지 않지만 여전히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p.130

경찰은 동생이 저녁 여덟 시에 떠난 것으로 추정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한동안 전과 같은 여덟 시를 맞이할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각 나는 막내와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고, 그건 휴대폰을 꺼 뒀다는 얘기임과 동시에 전원을 꺼 둔 몇 시간 동안 혹시 전화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p.159

절룩거리면 사람들이 쳐다볼까 세 걸음 걸으면 끈을 묶는 척 허리를 굽히며 신발 끈을 만지고 또 만지셨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경이로워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주말이면 취미로 수영부터 등산까지 하시는 분의 사연이라 미처 짐작하지 못해서였다.



살다 보면 가족 외에 친구, 직장동료, 동호회 등 다양한 모임에 구성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가족에게나 친구에게조차 자신의 불행이나 슬픔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기도 한다. 특별히 숨기고 싶어서는 아닐지라도.


언제부턴가 우리는 수많은 경쟁과 남과의 비교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의 우울함 속에 살고 있다. 공허함과 허무함에 스스로를 옥죄고 고립된 삶을 살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의 울타리를 과감히 깨고 나와야 한다.


작가는 말한다. 


내 사랑이 여기 적혀 있다. 담겨 있다. 쓰여 있다.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사랑을 흡수한다. 내가 세상과의 연이 끊겨 떠난대도 지금 건넨 나의 사랑은 당신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 포스팅은 허밍버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

https://blog.naver.com/twinkaka/222833548726






작가의 이전글 불편한 시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