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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끌 Mar 06. 2020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

'책끌(책에 끌리다)' 서평 #17

세상에 이런 책이 있을 줄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향한 정쟁은 과거는 물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은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에 나온 타인을 모함하는 지침서인 <나직경(羅織經)>을 새롭게 해석하고 풀이한 책이라고 한다. 중국 고전 전문가인 마수취안(馬樹全)이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모략서로 불리는 <나직경>의 자료를 수집해 새롭게 정리해 펴냈고, 우리말 번역서로 출간됐다.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



나직경은 혹리(혹독하고 무자비한 관리)로 악명이 높았던 내준신(來俊臣)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을 새롭게 풀이한 마수취안은 책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탓에 읽는 사람의 정신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좋은 책을 읽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남을 모함하는 간계와 속임수를 알려주는 책이라니... 이 책 읽어도 괜찮을까?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은 혼돈의 시대일수록 자신을 지키고 적을 제압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며 권력을 손에 넣고 활용하는 법에 대해 소개했다. 총 12가지 비책에는 권력을 다루는 법을 시작으로 적을 제압하는 법, 전략을 세우는 법, 세력을 지키는 법, 자신을 보호하는 법, 간신을 찾아내는 법, 사람을 간파하는 법, 윗사람 섬기는 법, 아랫사람 다스리는 법, 적을 처벌하는 법, 상대를 죄로 엮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첫 번째 비책인 '권력을 다루는 법'에서는 권력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높은 욕망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했다. 혼란하고 불안한 시대에는 유능한 사람을 쓰고 천하가 안정되면 이들을 죽여 후한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권력은 얻기가 쉽지 않지만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이에 대한 예로 전국시대 말, 초나라 말단 관직에서 진나라 때 정치가로 성공한 이사(李斯)의 일화를 소개했다. 낮은 관직에 낙담하며 살던 이사는 훗날 진나라로 가 진시황(始皇帝)을 도와 육국(六國)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진나라 승상(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천자를 보필하던 최고 관직)에 오른다. 하지만 권세에 대한 탐욕이 도를 넘은 이사는 진시황이 죽자 환관인 조고(趙高)와 모의해 황제의 장자를 자결하게 만들고 호해(胡亥)를 황제로 세운다. 하지만 결국 조고의 모함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일곱 번째 비책인 '사람을 간파하는 법'에서는 사람들이 해를 입는 까닭은 대개 사람을 잘 살피지 않은 탓으로, 사람의 마음에는 속임수가 너무 많으니 겉모습만 봐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다른 사람을 믿느니 차라리 자신을 믿고 다른 사람을 경계할 때는 요행을 바라지 말라고 경고했다. 


인간 사회의 끊임없는 환란은 인간의 과욕과 이기심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재주도 변변찮고 학식이 낮은 소인배라도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풍파를 일으킬 수 있어서 얕볼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 당 고종(唐 高宗) 시대에 재상을 지냈던 이의부(李義府)를 일화로 들었다. 


좌천될 위기에 놓였던 이의부는 말단 관리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황후 왕(王) 씨를 폐하고 무측천을 새 황후로 삼자는 상소를 올려 당 고종의 마음에 들고 관직도 오른다. 이 일로 그를 싫어해 한직으로 좌천시키려던 장손무기를 비롯해 황후 폐위를 반대하던 무리는 죽임을 당한다.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은 제목처럼 자신을 제거하려는 적에게 선수를 친 셈이다.


비책 9에서 제시한 '아랫사람 다스리는 법'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재능이 있어 쓸 수 있는 사람은 크게 해롭지만 않으면 넌지시 용인하라면서 굴종시킬 수 없는데 재능이 출중하다면 죽여야 한다고 했다. 봉건시대에 씌여진 책이라 과격한(?) 말투지만. 예전에 일했던 직장 상사 중에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후배들만 예뻐했던 안 좋은 기억이 남아 있다.


윗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뜻에 무조건 따르고 온갖 재능을 다 갖춘 아랫사람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윗사람이 마음에 드는 사람만 골라 쓰면 다른 사람들이 그 아랫사람에게 의지하게 되므로 권력을 독점할 기회를 아랫사람이 갖게 될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예로는 청나라 건륭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화신의 일화를 소개했다. 화신은 용모가 준수하고 말재간이 뛰어났으며 사람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봐 건륭의 심사를 정확하게 짚어내 무슨 일이든 먼저 헤아려서 말끔하게 처리했다. 건륭의 신임을 크게 얻은 화신은 사실 무척 탐욕스럽고 음험한 자였으니, 백 년 동안 일군 강희, 건륭의 성세가 화신으로 인해 기울기 시작했다.


'아는 게 병이다'라는 말이 있다. 차라리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수많은 권모술수와 모략에 대해서도 모르고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의 저자인 마수취안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계략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는 눈을 키워야 하고, 간계와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유익한 것만 취하라고 조언했다. 이 책에서 제시된 12가지 책략은 저자의 말처럼 모두 취할 것이 아니라, 유익한 것만 골라내 옥석(玉石)을 가려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처세술 #정적을제거하는비책 #보누스 #트윈카카 #twink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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