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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끌 Nov 04. 2019

가상현실(VR)로 만난  파키스탄 <탁티바히> 불교사원

IT 이슈로 보는 디지털 트윈카카

‘아시아 스투파 로드 : 탁티바히’는 ‘불탑(스투파)’의 전래 길을 따라 교류하고 융합된 아시아 문화를 조망하고, 파키스탄의 대표적인 불교사원인 탁티바히의 현재 모습과 복원된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가상현실(VR) 콘텐츠다. 10월 22일부터 11월 24일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특별부스에서 전시되고 있다. 탁티바히 가상현실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박진호 문화재디지털복원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진호 문화재디지털복원가

[약력]

2006~2013년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선임연구원

2014~2015년 광주과학기술원 문화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

2015~2017년 서울대학교 융합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지난 20년(1999~2019년) 동안 우리나라 디지털 헤리티지(Digital Heritage) 분야를 일군 국내 첫 연구가이자 개척자





Q. '문화재디지털복원가'란 타이틀은 어떻게 달게 됐나?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문화재 디지털 복원'이라는 개념을 주창했는데, 문화재 디지털 복원은 워낙 미개척 분야이다 보니 국내 언론사에서 기사로 많이 다뤘다.  '문화재 디지털 복원 전문가'라는 명칭은 동아일보 이광표 기자가 처음 써주었다. '문화재디지털복원가'라는 직업군은 2014년에 와서야 정부에서 정식으로 공표한 바 있다.


Q. 국립광주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진행 중인 <탁티바히>는 어떤 전시회인가?

VR 문화유산 체험전 ‘아시아 스투파 로드 : 탁티바히’ 전시회는 파키스탄의 대표적인 불교사원인 ‘탁티바히’를 VR(가상현실) 콘텐츠로 제작한 것이다. VR 체험자는 아시아 불탑의 기원과 생성 과정을 이해하고 사라져 버린 탁티바히 불탑의 복원 과정을 가상공간(假想空間)에서 경험할 수 있다.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파키스탄의 ‘탁티바히’ 불탑을 3D 스캔 기술을 이용해 확보한 데이터를 VR 콘텐츠로 제작해 이번에 전시하게 됐다.


이번 전시회는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과 VR/AR개발사인 매니아마인드, 그리고 전시 전문업체인 타라스페이스가 공동으로 기획, 제작해 만들었다. 전시회 개최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 아시아문화원(Asia Culture Institute),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3개 기관이 참여했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외부 안내 패널에 올려진 ‘스투파 로드, 탁티바히’ VR 전시 안내문




Q. ‘스투파 로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이번 ‘탁티바히 사원 가상현실’은 거대한 ‘스투파로드 프로젝트’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스투파 로드 프로젝트(Stupa Road Project)는 학술적인 용어다. ‘스투파’는 무덤의 기능을 하는 토루를 말한다. 토루는 일종의 봉분으로 기원은 선사시대까지 올라간다. 왕을 매장하며 만든 거대한 봉분은 반구형의 모습을 띠고 있다.


상당히 이른 시대부터 이런 분묘는 일반적인 기념물로 변화되었다. 불교도들은 이것을 불교의 주된 상징물이자 종교건축의 중심으로 받아들여 왔다. 따라서 불탑은 단순하게 쌓아진 것이 아니다. 불탑 안에는 우주적 체계와 생명력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아시아의 모든 스투파(탑: 塔)를 가상공간(假想空間)에서 체험시키자는 것이 ‘스투파 로드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다.


Q. 그렇다면 ‘스투파’는 어떻게 시작됐나?

한자어인 ‘탑(塔)’은 영어로 ‘스투파(Stupa)’라고 표기한다. 탑의 시작은 얼핏 보기엔 단순하게 시작됐다. 처음에는 그저 흙이나 돌, 혹은 나무 등을 쌓아 올린 게 그 시작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인도에서 석가모니 즉 부처가 등장해서야 비로소 ‘스투파(탑)’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다시 말하면 부처 이후 탑은 부처처럼 살고 싶은 이들의 정신과 미래지향적 염원까지 깃들여 있다고 보면 된다. 그 후 동서양을 걸친 인류의 위대한 정신문화인 ‘불교 문명’이 생성되었고, 본격적인 ‘스투파(탑)’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렇게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기원 전후 ‘간다라 지방(현재의 아프가니스탄)’에 전파된다. 이곳에서 인도 불교는 그리스 문명과 만나게 되고, 이후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까지 전해진다.


중국이라는 대륙문화를 만난 불교는 또 한 번의 새로운 문명과 융합한다. 특히 각 지역을 거치며 독창적인 문화를 이루어낸 불교의 ‘탑’ 문화는 한반도에 이르러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되니, 명실공히 당시 불교문화는 세계의 4대 문명이 융합된 문화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아시아 영토를 보더라도 이슬람교든, 기독교든, 힌두교든. 모든 아시아 국가의 영토에는 과거 불교의 영향으로 스투파가 건립되지 않았던 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전 세계 문명권의 가장 보편적인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불탑(佛塔)’은 종교와 상관없이 아시아의 모든 국가에서 아주 오랫동안 확고히 자리 잡았던 문화로, 이것이 바로 ‘스투파(Stupa)’다.     

 

Q. 스투파의 역사적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에 자리 잡은 ‘스투파(Stupa)’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시아 문화유산의 대표적인 ‘브랜드(Brand)’라고 생각한다. 스투파(Stupa), 즉 탑(塔)은 고대뿐만 아니라 21세기를 대표하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오늘날에도 국력의 상징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류 문명의 기원인 인도에서 출발한 스투파(Stupa)의 기원이 실크로드를 거쳐 아시아 각국에 전파되었다. 스투파는 아시아의 역사 문화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고, 스투파라는 물질문명뿐만 아니라 스투파에서 파생된 정신문명 또한 아시아에 널리 퍼졌다. ‘탑(塔)’은 아시아의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관통하는 물질적 유물이자 문화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 현재 남아있는 단일 ‘탑’ 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불탑(佛塔)’을 4K UHD 대형 스크린에서 본 모습 *이미지 제공 : 문화유산기록보존연구소 HDAC

    

Q. 스투파 로드에서 보면 ‘탑(塔; Stupa)’의 의미가 절대적으로 보이는데?

스투파는 어떻게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원초적(原初的)인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 상에 일찍이 인류가 생겨난 이래, 사람이 죽으면 무덤을 만들었다. 단순히 땅에 시체를 파묻는 거에 벗어나 흙을 둥그렇게 쌓아 올리는 ‘분묘(墳墓)’ 형태가 생겨났다.


이러한 형태는 점차 반구(半球)나 원추(圓錐), 피라미드 모습의 방추형(方錐形)과 같은 거대한 구조물이거나 입방체로 만들어졌다. 주로 성인들의 유물이나 사후세계를 위한 물건들을 매장하고 있는 형식으로 발전되었다.


고대 인도에서는 성자인 부처가 열반(涅槃)하자 인도의 전통 장례풍습에 따라 사체를 화장하고 수습된 사리, 즉 불신골(佛身骨)을 모신 분묘를 만들었다. 이 기념비적인 분묘는 후세에 불탑, 즉 스투파(Stupa)로 불렸다. 2500년 전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죽자, 이 분의 뼈를 탑에 보관하게 된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본격적으로 ‘불탑(佛塔)’이 생겨나게 된 시초다.


다시 말해 불탑이란 부처, 즉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성스러운 무덤이다. 특히 불탑은 처의 몸으로 불리는 ‘신골(身骨)’이라는 불사리를 보관한 곳으로, 불교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부처의 상징이자 지극히 성스러운 건조물이다.     


Q. 불교와 ‘스투파 로드’는 어떤 관련이 있나?

인류 역사상 불교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 동북부로부터 아시아 동부의 광대한 지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모든 중생들의 제도(濟度)를 목표로 하는 보편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이는 철학과 윤리를 바탕으로 인류에게 삶의 진리와 지식, 예술을 널리 전하게 된다.


불교 철학과 더불어 ‘불탑(佛塔)’ 역시 각 나라에 전파된다. 불교가 아시아의 각 나라에 퍼지는 것과 때를 같이 했다. 불탑이 아시아 각 나라에 전파되는 것이다. 불교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존재하는 풍부하고 창의적으로 서로 다른 문화적인 전통들을 연결시켜 주며 거대한 정신적,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인도에서 출발한 스투파(塔)가 실크로드와 중국,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이르게 된다.      


한마디로 스투파(Stupa)는 아시아의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관통하는 물질적 유물이자 문화적 자산(資産)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본다면 탁티바히 사원은 하나의 불교사원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거대한 아시아적 담론에 포함시키고자 한다면 탁티바히 사원의 불탑 (佛塔) 외에도 아시아에 산재해 있는 거의 모든 불탑(佛塔)들까지. 다시 말해 스투파들을 종적·횡적으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 스투파 로드의 루트. 각 나라에 존재하는 독특한 ‘탑’ 문화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종적·횡적으로 연결해 아시아 ‘탑’들의 변화상을 추적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불탑(佛塔)’이 전파된 흐름이 나올 것이고, 이를 묶으면 탑(塔)으로 본 문명의 교류상이 드러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교 전파를 통해 ‘불탑(佛塔)’이 갔던 길 ‘스투파 로드(Stupa Road)’가 성립되는 것이다.


‘스투파 로드’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은 탁티바히를 시작으로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탑’의 데이터를 디지털화한다는 계획이다. 불탑(佛塔)의 원천 소스 데이터를 이용하여 3D, 4D, VR, AR, MR, 홀로그램 같은 콘텐츠로 다양하게 제작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목표를 추진 중이다.

첫 번째는 인도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아시아 스투파 로드 3차원 VR 지도’를 개발하는 것이다. 인도에서 파키스탄을 거쳐 종국적으로 한반도에 이르는 ‘아시아 스투파 로드’ 지도 개발이 목표다.


두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파키스탄 탁티바히 스투파의 원형을 디지털 복원하게 되는 것이다. 탁티바히 사원의 원형을 가상공간(假像空間)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탁티바히를 시작으로 아시아 전역에 위치한 불탑(佛塔)에 대한 디지털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Q. ‘스투파 로드 프로젝트’에서 파키스탄 탁티바히 사원을 첫 번째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불탑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 나라의 랜드마크(Landmark) 형 불탑(佛塔)을 하나로 묶어내는 융합체험형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탁티바히는 ‘스투파 로드’ 프로젝트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 파키스탄 지역에 있었던 간다라 ‘탑(塔)’은 인도와 중국으로 넘어오기 직전에 아시아 탑의 변화상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탁티바히 불탑(佛塔)이 디지털 복원의 그 첫 번째 대상지로 선정된 것이다.

▲ 간다라 불상은 우리나라와 연관성이 있다. 신라 석굴암도 탁티바히 사원과 같은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아 조성되었다. 경주 석굴암 모습(문화재전문사진작가 윤동진 촬영).
▲ 석굴암 내부에서 발견된 ‘탑(塔)’ 파편의 모습(중앙). 원래 초창기 석굴암에도 파키스탄 탁티바히 사원과 같이 ‘탑’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석굴암 본존불상의 앞과 뒤에 각기 1


또한 파키스탄의 탁티바히는 대표적인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우리나라의 문화유산과 연관성도 중요한 이유였다. 탁티바히는 우리나라 경주 석굴암과도 연관된 '간다라 미술‘ 양식의 문화유산으로 간접적인 중요성도 한몫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동(東)·서(西) 문화의 최초 융합을 시도했던 간다라 유적지에 위치한 스투파(Stupa)를 디지털 복원 작업의 첫 번째 대상지로 삼게 됐다. 아시아 스투파 로드의 일환으로 전시된 파키스탄 탁티바히 불교사원은 아시아 모든 나라들이 불탑(스투파)이 존재한다는 모티브에서 출발했다. 

▲ 아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탑’들을 가상공간에서 만나게 하자는 것이 ‘스투파 로드’ 프로젝트의 모티브가 되었다. 익산 미륵사 석탑을 VR 공간에서 체험 중인 모습.


디지털 가상공간에서 아시아 모든 탑들을 VR로 만들어 그것을 가상체험으로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처음 이러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은 2012년이다. 그로부터 10여 년 만에 결실을 맺게 된 탁티바히는 디지털 가상공간에 만들어졌다. 아시아의 모든 불탑(佛塔)들을 하나로 엮는 출발선이 시작됐다.


Q. 파키스탄 현지에서는 어떤 작업을 진행했나?

우리의 디지털 헤리티지(Digital Heritage) 팀은 2019년 4월 25일부터 10월 2일까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파키스탄의 ‘탁티바히’ 사원을 현지답사했다. 이 팀은 유적지를 답사하는 역사팀이 아니다. 옛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팀도 아니다. 유적의 현재 모습을 디지털화하고, 없어진 원형의 모습을 가상공간에 연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   

▲ 파키스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탁티바히 사원 전경
▲ 탁티바히 가상현실(VR) 작업을 위한 파키스탄 현지 작업 모습들


먼저 3D 디지털 복원 및 VR 제작을 위한 원천소스를 확보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원천소스 확보를 위해 탁티바히 사원의 현재 모습을 3D 스캔 작업으로 데이터를 확보했다. 탁티바히 현장에서 드론을 띄워 탁티바히 유적의 생생함을 4K UHD로 담았다. 이러한 데이터 확보 방식은 탁티바히 유적을 디지털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 탁티바히 사원 위로 드론을 날리는 모습
▲ 탁티바히 사원의 3D 스캔 작업 모습


파키스탄 '탁티바히' 사원 촬영 일지


1. 촬영 기간 : 2019년 4월 25일 〜 5월 2일

2. 촬영 인원(총 8명) : 총괄 PM과 부PM 2명

스투파 전문가(전남대 천득염 교수) 및 대학원생 2명

문화재 전문 촬영 사진작가 1명

드론 촬영 및 3D 스캔 전문가 1명

탁티바히(Takht-i-Bahi) 사원 3D모델러 1명

파키스탄 현지 전문가(Dr. Tufail Muhammad: 울산과학기술원 박사) 1명


3. 촬영 장비

4K·8K 촬영 장비

드론을 통한 항공 촬영 장비

3D 스캔 장비


4. 촬영 장소

탁티바히 사원 내부 및 주변

페샤와르 박물관 내부

탁실라 유적 및 주변




Q. 탁티바히 현장 사진에는 불탑이 다 허물어지고 남아있는 게 거의 없던데?

이 탁티바히의 대탑(大塔)은 지난 2001년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불 복원 당시에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이주형 교수 연구실에서 처음 보았다. 그때 바미안 석불에 대해 자문을 받았다. 기왕이면 이웃한 간다라 문명인 탁티바히 사원과 불탑도 복원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탁티바히 사원이 그렇게 대단한 줄 몰랐다.

▲ 파키스탄 카라치 박물관에 전시 중인 2천 년 전 탁티바히 사원 복원 모형(정길선 박사 사진 제공)
▲ 파키스탄 카라치 박물관에 전시 중인 2천 년 전 탁티바히 사원 복원 모형(정길선 박사 사진 제공)


그 후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탁티바히 사원의 원형 복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래, 지난 10년 동안 탁티바히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하지만 막상 파키스탄 탁티바히 현장에 와서는 ‘이 사원과 불탑의 원형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탁티바히 사원이 전성기를 구가했을 당시, 대탑의 기반부 위에는 찬연히 빛나는 탑(塔)의 상륜부가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국 학자 퍼시 브라운(Percy Brown)이 세계 최초로 탁티바히 대탑과 주위의 감실상을 재현한 복원도를 100년 전에 선보인 적이 있다.


이것은 탁티바히 ‘탑(塔)' 원형 디자인의 모습을 밝혀 낸 최초의 학술적 이론이다. 중앙아시아 전문가인 정길선 박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카라치 박물관의 탁티바히 모형을 통해 2천 년 탁티바히 대탑의 원형을 추론할 수 있었다.

▲ 파키스탄 탁티바히 사원 불탑 복원도 일러스트


영국 학자의 복원도나 정길선 박사가 제공한 탁티바히 모형도 사진 역시 어디까지나 상상도이기 때문에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디지털 복원을 위한 거의 유일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탁티바히 복원도는 탁티바히 전성기를 구가했을 당시의 대탑(大塔)의 모습과 그 탑을 둘러싼 주위의 상황을 가장 그럴듯하게 보여준다.

 

퍼시 브라운의 복원도는 100년 전에 연필 드로잉으로 그려졌다. 대탑(大塔)과 감실(龕室)의 윤곽만 그렸을 뿐 아주 디테일한 복원도 형태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탁티바히 복원 자료는 현재로서는 퍼시 브라운의 복원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복원을 위한 보다 디테일한 자료는 탁티바히 인근에 있는 3∼5개 비슷한 유적지를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탁실라, 모 라모라도, 쥴리안, 자말갈리 등에 있는 탁티바히와 비슷한 시기의 불탑(佛塔)을 보고 탁티바히 기단 위에 있었을 대탑(大塔)의 모습을 상정해 보았다.  

▲ 왼쪽 4K UHD TV에 사각형 기단(基壇)의 모습이 보이고, 오른쪽 패널 이미지는 이 사각형 기단 위에 있었던 원추형의 ‘불탑(佛塔)’을 디지털 복원한 모습이다.


Q. VR 작업에 필요한 소스는 어떻게 확보했나?

지난 4월 25일부터 5월 2일까지 1주일 동안 파키스탄 탁티바히 유적을 직접 답사했다. 현지에서 4K‧8K 고해상도 촬영과 드론 촬영, 유적지 3차원 3D 스캔을 실시했다. 이렇게 획득한 자료를 바탕으로 6개월 간의 작업을 거쳐 가상현실 콘텐츠로 만들었다.     

▲ 탁티바히 사원을 가상현실 콘텐츠로 만들기 위한 첫 여정으로 파키스탄 현지답사를 추진했다. 2019년 4월 26일 당시 팀원들과 현지인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탁티바히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적용해 왔던 가상현실 기술을 세계문화유산까지 확대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파키스탄까지 가는 과정은 무척 험난했다. 우리 팀은 페샤와르시를 약 50km 정도 이동한 후 탁티바히 유적으로 향했다. 탁티바히 유적에 오기 전에 간다라 유적지 중 하나인 줄리앙과 시르캅유적부터 보고 왔다. 이 유적들도 탁티바히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넓은 평원지대를 한참 달리니 눈앞에 돌산 하나가 저 앞에서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탁티바히 유적이다. 탁티바히와 가장 가까운 도시인 마르단 시(市)의 혼잡한 도심 시장통 길을 간신히 빠져나와 평원지대를 달리는데 갑자기 짙은 수목으로 우거진 큰 산이 나타났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VR전시실에 마련된 UHD-TV에서 상영 중인 탁티바히 사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진호 문화재디지털복원전문가


평야 지대였기 때문인지 탁티바히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매우 높게 보였다. 이 지역에 절이 있다면 저런 곳에 있을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팀을 태운 두 대의 버스는 어느덧 탁티바히 주차장에 정차했다. ‘탁티바히’라는 발음도 잘 나오지 않는 명칭에 걸맞게 황량한 돌산의 정상에 위치한 사찰은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수직 구조의 힘을 느끼게 했다. 특히 입구에서부터 첩첩히 쌓아올린 벽은 중국의 만리장성을 보는 듯했다.


150미터 높이의 산악을 오르자 벽돌 크기의 납작한 흑갈색 돌로 쌓아 올린 요새 성벽과 같은 담벼락이 막아섰다. 그 사이로 난 문을 지나 승원에 들어서니 우측 산 아래쪽으로 사면에 칸칸이 반 평 남짓의 개인 방들이 딸린 승원(僧院)이 있었다, 좌측으로 산 위쪽에는 대탑(大塔)이 놓였던 사각형 큰 기단과 탑원(塔院)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였다. 이 대탑 아래 사각형 기단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현재 모습과 2천 년 전의 모습은 정말 많이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Q. 어떻게 VR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로 복원했나?

2천 년 불탑의 원형을 찾아가는 일은 대단한 모험이자 수많은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복원은 원형 그대로 100%를 찾아내긴 불가능하다. 다만 현재 남아있는 자료를 근간으로 얼마나 원형에 가깝게 접근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 탁티바히 사원 불탑의 원형을 3D MAX에서 재현한 모습


복원을 위한 자료가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원형 접근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반대로 원형 복원을 위한 자료가 빈곤하다면 엄청난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상상력에만 의존한다면 상상으로만 끝날 소지가 분명했다. 탁티바히 대탑(大塔) 복원 역시 100년 전 퍼시 브라운이 발표한 복원 자료를 근간으로 다른 자료를 덧대는 형식으로 원형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국내 최고의 불탑(佛塔) 전문가인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부 천득염 석좌교수와 파키스탄 현장을 답사했다. 페샤와르의 간다라 문화전문가인 나와즈 딘(Nawaz Ud-Din) 박사의 자문을 통해 탁티바히의 원형에 한 발자국 더 접근할 수 있었다. 탁티바히 사원은 2천 년 간의 외침과 풍파로 인해 현재는 전혀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 앞서 말했던 빈약한 자료지만 나름대로 추론하여 탁티바히 원형의 모습에 접근해 보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파키스탄의 탁티바히 대탑(大塔)의 원형은 가상현실 공간 속에 재현시키는 것이 우리의 주요한 목표였다.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을 적용했다.

▲ '탁티바히' 사원 불탑 현재 모습(왼쪽)과 가상공간에 디지털 복원한 모습(오른쪽)
▲ 탁티바히 사원을 가상공간에서 체험 중인 관람자 모습


디지털 복원된 탁티바히 대탑(大塔)이 100%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진보된 연구가 나온다면 디지털 복원의 가능성은 점진적으로 더 높여갈 수 있을 것이다. 100년 전 퍼시 브라운의 2D 드로잉 복원이 그 시작이었다면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복원의 양상을 달리해 본 것이다.  


Q. VR 제작은 누구와 어떤 역할 분담으로 진행했나?

VR 콘텐츠 전문기업인 매니아마인드에서 프로그램, 엔진 매니징, 이펙트 등과 같은 작업을 진행했다. 스투파 로드의 3D 모델링 작업은 전시디자인 전문회사인 타라스페이스에서 진행했다.  처음부터 목표를 ‘디지털 헤리티지 어트랙션’ 개발에 두었고, VR 콘텐츠에 적합한 ‘초광대역 하이퍼 리얼리티(Ultra-wideband-Hyper-Reality)’를 구현함으로써 ‘융복합 콘텐츠 체험 리얼타임 VR전용 어트랙션’ 개발이 최종 목표였다.   

▲ 탁티바히 가상현실(VR) 시나리오 콘티의 주요 장면
▲ 탁티바히 작업을 위한 현지 박물관 촬영 모습과 불상 3D 스캔 데이터(오른쪽 하단)


Q. 어떤 가상현실 기술들이 적용됐나?

탁티바히를 준비하던 중 외국 사례에 대한 벤치마킹을 찾았다. 영국 가상현실 사례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았다. 영국 Virtual Reality CGI VMI Studios에서 제작했고, 영국 노팅엄대학 믹스드 리얼리티 랩(Mixed Reality Lab)의  믹스드 리얼리티  프로젝트인 ‘Thresholds’라는 가상현실 체험 프로젝트였다.


이것은 1839년 당시 영국 사진가가 수집한 박물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가상현실 사례였다. 실제 영국에 19세기 존재했던 박물관을 가상공간에 재현해 여러 명(3명)이 2백 년 전에 실존했던 박물관 내부를 체험하는 식으로 구성됐다. 스토리텔링이 매우 뛰어난 가상현실 작품이었다.


여기에 사용된 기술은 백팩을 멘 유선형(有線形) HTC-VIVE 방식의 워킹 가상현실 시스템으로, 탁티바히 가상현실에 이 기술과 유사한 방식의 기술이 적용됐다. 탁티바히 ‘탑’의 벽면 촉감을 형상화한 ‘벽면 스탠드’ 실제 공간에서 이 벽면을 만지면, VR 공간에서는 ‘탑’ 외피를 만지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식이다.      

▲ 영국 노팅엄 대학 믹스드 리얼리티 랩(Mixed Reality Lab)의  믹스드 리얼리티  프로젝트인 ‘Thresholds’ 가상현실 체험
▲ 탁티바히 ‘탑’의 하단부 벽면(왼쪽)과 유사한 느낌의 촉감을 형상화한 ‘벽면 스탠드(오른쪽)’ 모습. 실제 공간에서 이 벽면을 만지면 VR공간에서는 ‘탑’의 기단부 벽면을 만지


Q.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탁비바히’ VR 전시를 진행하게 된 배경은?

지난 2016년부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부터 디지털 헤리티지 전시를 도입하고 싶다는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를 위한 준비단계로 불교문화에 탑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디지털 헤리티지를 어떻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심화연구로 ‘디지털 헤리티지 기반 융복합 콘텐츠 체험 모델 개발(연구책임자 김상헌 교수)’라는 선행연구가 먼저 진행됐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내 '탁티바히' 사원 가상현실(VR) 전시 모습


이 연구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처한 현재의 환경에 근거해 디지털 헤리티지를 어떻게 도입하고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심화연구를 하였는데, 여기서 제시된 콘텐츠 중의 하나가 ‘스투파 로드’였다.


그리하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VR전시 활용하자는 취지 하에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체험형 융복합 사업에 광주에 소재한 VR개발사인 매니아마인드와 전시디자인 전문업체인 타라스페이스가 컨소시엄으로 응모하여 탁티바히 가상현실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그렇게 첫 번째 디지털 콘텐츠 결과물로 ‘가상현실 탁티바히’가 태어나게 되었고, 이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하게 된 것이다.


Q. 가상현실 탁티바히 프로젝트를 끝낸 소감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중동지역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처음 접했다. 스투파 로드는 한 국가에 한정된 게 아니라 아시아 모든 나라에 걸쳐 있는 공통의 문화유산을 고양하자는 프로젝트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 첫 대상지로 파키스탄 문화유산 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앞으로 스투파 로드 프로젝트는 30년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나와 우리 세대에서 다 끝낼 수 없는 우리 후손들까지 영속적으로 지속되야할 100년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 파키스탄 탁티바히 사원 현장에 서 있는 박진호 문화재디지털복원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파키스탄 탁티바히는 시작점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인생에서 얻어갈 수 있는 행복의 여러 요소가 있지만 올해 파키스탄 탁티바히는 2019년 내 인생 최고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올해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준 프로젝트였다. 평생토록 기억에 영원히 남을 것 같다.


* 인터뷰어 : 박경수 기자

* 인터뷰이 : 박진호 문화재디지털복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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