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낀 것들의 이야기_1_영화 '코코'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고 했다. 우리가 만약 전생을 기억한다면, 아픈 기억들이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고 그 기억들이 전생과 현생, 다음 생까지 수백 년을 이어진다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기억을 품고 자신을 소멸시켜 줄 단 한 명의 신부를 기다리는 도깨비의 심정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하지만 반대로 나 자신의 존재가 영원히 기억에서 잊힌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 또한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을 이가 얼마나 있을까. 드라마를 보며 그 상반된 두 입장 사이에서 나는 잊지 못한 도깨비의 편도, 잊히고 싶은 저승사자의 편도 들지 못해 혼자 그렇게 애가 탔었다. 잊지 못하는 것도 두렵지만, 영원히 잊혀지는 것 또한 상상만으로도 두렵긴 마찬가지니까.
픽사가 내놓은 또 하나의 걸작 영화 코코. 내가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볼 때마다 떠올리는 영화 속 이미지는 물결치는 오렌지색의 금잔화 꽃잎 길이다. 요새 흔히 '꽃길만 걷자'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그 표현을 그림으로 그대로 옮겨놓은 듯 너무나 예쁜 그 꽃길. 하지만 이 꽃길은 우리가 모두 이미 알고 있듯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이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일 년에 오직 단 하루, 이생에 남겨진 누군가의 기억과 사진 속에 살아있는 사람만이 밟아볼 수 있는 길이고, 새벽이 오면 사라져 버리는 길이다. 헥터가 그토록 밟아보고 싶어 한 그 꽃길의 빛깔은 그래서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슬프고 애잔하다.
영화 코코는 기억과 망각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는 헥터와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매년 죽은 자의 날이 되면 화려하게 흩뿌려진 꽃길을 사뿐사뿐 걸어가는 다른 영혼들을 바라보며 헥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의 딸이 자신의 존재를 잊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조차 자신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는 분노했을까, 슬퍼했을까. 부질없는 일인걸 알면서도 프리다 칼로의 변장을 하고 꽃길을 건너려고 하는 그의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나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허물어지는 꽃길의 끝자락이라도 잡고 늘어지고 싶던 그의 심정이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애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점점 코코가 자신을 잊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단 한 장뿐인 자신의 사진을 잃어버리면서 자신의 영원한 소멸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알고 절망한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헥터는 자신의 딸로 하여금 아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한 가지 선물을 이생에 두고 왔다. 바로 그가 직접 만들어 딸에게 불러준 노래, 이 영화의 메인 OST인 'Remember me'가 바로 그것이다. 그 노래는 미구엘의 기타 선율을 타고 이제는 파파 할머니가 된 딸 코코의 오랜 기억에 다시 가 닿는다.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헥터의 간절한 바람은 다행히 미구엘의 노래를 통해 빛을 보게 되고, 딸의 기억에서 다시 살아난 그는 그토록 걷고 싶었던 꽃길을 처음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밟게 된다.
이 행복한 영화에서 나는 아주 작은 흔적만으로도 살아나는 기억의 생명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쉽게 잊히기도 하지만 그만큼 쉽게 살아나기도 하는 기억의 생명력. 우리는 처음 본 이의 명함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 준 과자 한 봉지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자신의 지나간 옛 남자 친구들을 향으로 기억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완전히 잊는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네가 있다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한 두 가지 감각에 기대어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우리의 대부분은 비록 아무리 힘든 삶이었어도 잊혀지기보다는 그렇게 작은 불씨에 기대어 아주 잠깐이라도 기억되고 싶지 않을까. 헥터에겐 코코가 있고, 우리에게도 언젠가 기억의 꽃길을 함께 걷고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