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by 알파카

오랜만에 모인 동기들 사이에서 언니는 무지하게 신나 보였다. 이제는 엄마가 된 언니는, 늘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던 예쁜 아기를 남편에게 맡겨두고 나와 오롯이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숨쉬듯이 맥주잔을 비워내는 주당이었던 언니 앞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차가운 생맥주가 놓였지만, 정작 맥주잔을 든 언니는 눈이 글썽글썽했다.


"이런 시간 너무 오랜만이야. 아기 낳기 전에는 얼마든지 남편이랑 같이 술 마시고 밖에서 데이트도 하고 너네도 만나고...... 그런데 아기 태어나고 나서는 그게 안되잖아. 내가 놀려면 남편이 독박 육아를 해야 하고, 반대로 남편이 좀 쉴라치면 나는 또 혼자 아기를 봐야 하니까. 둘이 같이 뭔가를 할 수 없다는게 속상해."


그 술자리에 모인 인원은 총 네 명. 나를 포함한 둘은 아직 아기가 없는 유부녀, 막내 하나는 아직 미혼, 그리고 언니는 그 모임에서 뿐만 아니라 4년 전 입사한 스무명의 동기들 중 유일한 아기 엄마였다. 이제 막 엄마라는 이름표를 단 언니는 아직 어린 한 생명에게 때 맞춰 밥을 먹이고, 도닥도닥 잠을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가며 약 300여일을 무사히 키워 냈다.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일찍 나와 언니 맘을 졸이게 했던 아기는 이제 이른둥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아주 건강하고 예쁘다. 아기는 요새 한참 이유식을 먹고 있다고 했다.


"아기는 정말정말 예뻐, 새롭게 느끼는 행복이야 정말. 그런데...... 난 아직도 오빠랑 둘만 있었던 때가 그래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했던 것 같아. 난 엄마 자격이 없는 걸까?"


물론 우리는 결코 아니라고 대답했다. 언니는 지금까지 너무나 잘 해 오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육아는 힘든 것이니 그런 맘이 드는건 당연하고 우리 또한 나중에 똑같이 느낄 것이라고 말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언니 또한 우리의 위로에 담긴 진심을 알아주리라 믿는다. 하지만 아직 육아라는 테두리 저 밖에서 그저 구경꾼으로 서 있는 우리의 위로가 고단한 언니의 마음에 깊이 가 닿을 수 있었을지, 진심을 담아 얘기하고 나서도 나는 자못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스물 두 살까지만 해도 평생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을 거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다녔었다. 당시의 많은 여대생들이 그랬듯 십대와 이십대 초반까지 나의 롤모델은 바로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인 한비야씨였다. 그런 일을 하려면 결혼과 출산은 걸림돌이 될거라는 막연한 불안감과 함께, 연애나 하고 살지 뭐, 하는 근거도 없는 자신감에 휩싸여 지냈던 것 같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그 사람과 결혼이 하고 싶어졌고, 실제로 결혼을 하고 보니 연애 때 와는 다른 크고 작은 즐거움들이 있었다. 결혼에 대한 안개처럼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은 남편이라는 좋은 상대을 만나고 나서 쉽게 걷혀졌다.


하지만 출산은 또 다른 문제. 갓 태어난 신생아가 인큐베이터로 급히 옮겨지는 과정에서 아기를 안은 의사가 넘어지며 아기가 바닥에 떨어져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미끄러운 바닥에서는 넘어지기도, 물이 든 유리컵을 손에서 떨어뜨려 놓치기도 한다. 깨진 유리잔은 까짓 조심조심 치우면 그만, 엎어진 물은 닦아내면 그만. 하지만 그 손에 들린 것이 다름 아닌 숨쉬는 생명이라면? 그 기사 속 아기의 부모도, 의사도 그 누구도 그런 아찔한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을 가벼이 다루는 일은 그것이 실수일지라도 결코 용납되지 않는 문제니까.


나와 남편을 닮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에 선뜻 그 길을 가기엔 아직은 겁이 난다. 우리는 전혀 미래를 알 수 없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니까. 내 미래도 요원한데 전혀 새로운 생명을, 그 생명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오로지 나와 남편의 필요에 의해 세상에 내어놓고 앞으로 어찌 될 지 알 수없는 미래를 물려준다는 것,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질문에 정답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정답 비슷한 말이라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아직도 이 질문 주위를 뱅뱅 돌고만 있는 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꽃길을 건너온 코코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