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0
D+100
어릴 때 똘똘이 인형이라는, 당시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아주 인기였던 인형이 있었다. 배고프다고 빽빽 울 때는 장난감 젖병을 물리면 꿀꺽꿀꺽 우유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당시로는 혁신적 기능이 더해진 장난감이었다. 육아 초반, 심심이에게 우유를 먹이면서 종종 그 인형이 생각났다. 물론 심심이는 사람이지만 몇 가지 이벤트들을 제외하고는 심심이를 키우는 일이 인형을 돌보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신생아 티를 벗고 깨어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심심이는 울음으로 다양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갈아라, 맘마를 달라, 재워달라 끊임없이 일방적인 요구사항으로 나를 지치게 했다. 나와 심심이 사이 소통의 유일한 방법은 심심이의 빽빽거리는 울음소리였다.
50여 일이 지나고, 심심이는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신생아 때 희미하게 보였던 알쏭달쏭 의미 없는 웃음이 아닌 진짜 감정이 담긴 웃음이었다. 아침에 처음 얼굴을 마주했을 때, 손을 잡고 춤추며 노래를 불러줄 때, 심심이는 작은 입을 활짝 벌리고 웃어줬다. 터널처럼 어두웠던 시간에 햇살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표현이라고는 우는 것 밖에 몰랐던 아이가 웃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게 시작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80일째 되던 날, 혼자 담요 무늬를 보며 놀고 있는 심심이에게 다가가 손을 살며시 잡았는데 심심이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도 같이 눈을 마주치고 통통한 볼을 쓰담 쓰담해 주었더니 내 엄지손가락을 작은 주먹에 가득 쥐고는 맑게 웃었다. 마치 엄마 마음을 다 안다는 것처럼. 심심이의 까만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육아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두 개의 마음이 맞닿았다. 그리고 그제야 심심이가 울음으로, 웃음으로, 몸짓들로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어가 아닌 표정과 몸짓에 기댄 심심이의 표현을 이해하게 되는데 3개월이 걸렸다. 물론 아직도 다 알아듣지는 못한다. 여전히 심심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울음으로 나를 당황하게 하고, 갑자기 까르르 웃어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똘똘이 인형과는 전혀 다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내게 자신의 기분과 필요한 것을 표현한다.
심심이와 내가 살 부대끼며 지나온 100일의 수확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심이는 우는 것 외에 다른 표현 방법을 배웠고, 나는 심심이가 다양한 표정과 몸짓으로 전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조금 열린 마음으로 듣게 되었다. 빽빽 울어대는 아기 인형과 주인이 아닌 사람 대 사람의 관계로 심심이를 마주하게 되는 데 이렇게나 긴 시간이 걸렸다. 심심이가 만약 자라서도 이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지난 100일간 거쳤던 엄마의 눈물겨운 시행착오들을 이해해 줄까? 자기가 그때 왜 울었는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건지 그때는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