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집밥이야기_4
아마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금은 부부가 된 우리 둘의 연애시절 데이트 코스는 늘 밥과 술이 주를 이뤘다. 그래서인지 신랑과 갔던 데이트 장소들은 대부분 그 장소 자체보다 거기서 먹은 음식과 맛집으로 기억된다. 두근두근 설레던 연애 초반, 우리 커플이 유독 인사동을 자주 갔던 이유도 바로 지금은 사라진 수제비 맛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좁은 골목을 한 번 꺾어 돌아가면 ○○○수제비라고 쓴 작은 간판이 있고 그 앞에 사람 몇이 줄을 서 있곤 했다. 좁은 입구와 달리 안은 꽤 넓었는데, 수제비를 담는 작은 항아리들이 빽빽하게 앉은 선반과(기억이 정확한지 알 수 없지만 그랬던 것 같다) 복조리나 짚신 등 예스러운 장식품들이 누런 흙벽에 걸려있는 친근한 식당이었다.
사람이 늘 많았던 그 집 수제비를 우리가 유독 좋아한 이유는 바로 푸짐하게 들어간 굴 때문이었다. 뜨끈한 국물 사이에 숨은 탱글한 굴을 발견한 나와 남자 친구는 단박에 그 집의 단골이 되어 매년 겨울이면 인사동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연애 초 아직 살금살금 서로를 살펴가던 우리 커플에게 서로가 굴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깨닫게 해 주고, 서로의 그릇에 굴을 덜어주며 살뜰히 나눠먹던 그 수제비의 뜨거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굴은, 마니아인 나와 남편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음식이지만 싫어하는 누군가에게는 뱉은 가래침....이라는 충격적인 시식평을 남기게 할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다.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인터넷에서 '굴'이라고 검색한 적이 있는데, 웬 글에서 읽은 굴에 대한 한마디가 나와 남편이 배를 잡고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싱싱한 굴'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간다. 굴은 전부 상한 것 같다.
내가 맡는 신선한 냄새가 누군가에게는 상한 음식의 비릿함 같기도 한 모양이다. 굴을 싫어하는 사람을 워낙 자주 봐서 취향을 타는 식재료인 건 진즉 알고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본 굴에 대한 불호의 시식평들은 재미있고도 충격적이어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에게는 겨울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이유 중 한 가지이기도 한 굴. 굴은 날 것을 잘 먹지 않는 서양인들이 날로 먹는 몇 안 되는 식재료 중 하나이기도 하다. 떡국을 끓여도 굴을 한 바가지 쏟아 넣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하는 얘기겠지만, 서양에서는 굴이 매우 매우 비싼 식재료라고 한다. 유럽에서 온 셰프들이 우리나라의 굴 가격을 들으면 다들 농담인 줄 알거나 언빌리버블을 외친다고 하니 나는 진정 굴의 축복을 받은 나라에 사는 셈이다.
기온이 뚝 떨어진 지지난 주, 드디어 이번 겨울의 첫 굴밥을 하기 위해 퇴근길에 굴 한 봉지를 사 왔다. 불려둔 쌀을 안쳐 밥을 하는 동안, 무는 길고 도톰하게 채를 썰어 한쪽에 두고 남은 무 자투리를 모아 믹서기에 위잉 갈아 준다. 간 무즙을 넣고 굴이 뭉개지지 않게 조심조심 섞어 잠시 놓아두면, 굴에 있는 시커먼 이물질들이 무즙에 배어 나온다. 무즙과 이물질을 털어낸 굴은 소금을 엷게 푼 물로 두어 번 헹궈 물기를 빼 준다. 굴은 수돗물을 써서 씻으면 고유의 맛과 향이 사라진다고 하니 씻을 때는 반드시 소금물을 써야 한다. 밥이 센 불에 한번 끓으면 약불로 줄인 후 아까 채 썬 무를 밥 위에 깔아준다. 밥이 거의 다 되어갈 때쯤 씻어둔 굴을 무채 위에 놓아주고, 2~3분 정도 후 불을 끄고 뜸을 들이면 굴밥이 완성된다.
누룽지가 자작자작한 밥은 고소하고 잘 익은 무채는 달큼하다. 양념장과 함께 잘 비벼진 밥 사이에는 살캉한 굴이 군데군데 숨어있다. 밥을 냄비째 식탁 가운데에 놓고 굴이 뭉개지지 않게 살살 섞은 뒤 숟가락을 들고 애타게 기다리는 남편의 그릇에 덜어 준다. 잠시 먹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보면 한 움큼 밥이 사라져 있다. 또 먹다가 고개를 들어 보면 다시 한 움큼, 한번 더 보면 냄비는 벌써 바닥이다. 냄비 바닥에 붙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주걱으로 살살 저으며 끓이면 굴 향이 솔솔 올라오는 맛있는 숭늉까지 덤으로 먹을 수 있다. 양념장과 김치 외에 다른 반찬이 일절 필요 없어 상차림은 간소하지만 입이 즐겁고 배는 부른 푸짐한 겨울 한 상. 우리 부부는 진심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한다. 그 뒤 며칠 간격으로 굴전과 굴 떡국까지 해 먹으며 우리 부부는 굴이 오른 밥상으로 코끝 시린 이 겨울을 아주 즐거이 맞았다. 추위와 함께 먹는 굴은 더 맛있고, 겨울은 길어서 우리 둘은 겨우내 오래오래 행복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