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신혼, 새콤한 레몬청 이야기

시시콜콜한 집밥이야기_3

by 알파카

신혼의 꿈은 거창했다.

너무 흔하고 뻔한 상상이라 이제는 구식같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앞치마 두르고 도닥도닥 칼질을 하는 내 옆에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는 모습을 쉽게 상상하곤 했다. 부부가 되어 함께 맞는 아침은 상쾌하고, 내 요리들은 나의 설레는 마음을 감춘 채 시치미를 떼고 각각의 그릇에 단정하게 담겨 있을 거라는 상상. 상상은 쉽지만 그것을 현실에 옮겨 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는 데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남편은 늘 내 자는 얼굴만 쳐다보고 나가기가 일쑤였고, 회사가 가까운 덕에 뒤늦게 일어난 나는 침대 위에 덩그러니 앉아 잠이 덜 깬 채로 남편이 없는 빈 집을 온몸으로 느끼곤 했다. 내가 꿈꾼 따끈하고 신혼 냄새 폴폴 풍기는 아침 같은 건 정말 딱 결혼하고 사흘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전날 저녁에 미리 끓여 놓은 국에 밥을 말고 김치만 대충 얹어먹고 나가는 것 만도 호사였다. 저녁 시간은 아침보다는 느릿하게 가지만 그 느린 템포에 맞춰 저녁식사를 준비하기에도 우린 이미 지쳐있었기에 결국 삼시세끼 모두가 굶거나, 바깥 음식이거나, 혹은 인스턴트인 셈이었다.


인터넷에 나오는 신혼 레시피들은 죄다 뻥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죄다 회사 집 회사 집 왔다 갔다 하느라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하는 판에 뭔 놈의 신혼 요리? 따라 해 볼 엄두도 못 내던 지난여름 어느 날, 남편과 주말 데이트 겸 들른 코스트코에서 쌓여있는 레몬 더미를 보았다. 저 많은 레몬을 사 가서 누가 다 먹나 생각을 하다가,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서 자주 보았던 레몬청이 생각이 났다. 나는 레모네이드도 달달한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샛노란 레몬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약간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마치 홀린 듯 한 봉지에 팔천 원 하는 레몬 봉지를 사 들고 오는 길, 차 안에서 유리병들을 잔뜩 주문하고는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레몬청을 담는 날. 껍질도 채 까지 않은 레몬에서 이미 새콤한 향이 났다. 레몬을 준비하기 앞서 유리병을 깨끗이 씻어 팔팔 끓는 물에 병 주둥이가 바닥을 향하도록 세워서 잠시 담가 준 후, 뜨거운 유리병을 집게로 집어 건조대에 말리면 뜨거운 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싹 말라 잘 살균된 유리병이 된다. 레몬은 뜨거운 물에 몇 초간 데굴데굴 굴려주면서 겉에 묻어 있는 왁스를 제거한 후, 큰 볼에 담아 베이킹소다와 함께 박박 문질러 깨끗이 씻어낸다. 씻은 레몬을 원하는 두께로 썰고 씨는 꼭 하나하나 빼내야 한다. 이 과정이 가장 귀찮은데, 씨앗을 빼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는 레몬청이 쓰고 텁텁해질 수 있다고 하니 귀찮아도 결코 걸러서는 안 된다. 레몬과 설탕은 동량으로 준비해 레몬 한 겹, 설탕 한 겹 층층이 쌓아준 후, 공기가 들어가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장 위에 설탕을 가득 덮어 주면 끝. 이대로 상온에 하루 정도 두었다가 냉장 보관하면 겨울 내내 즐기는 레몬청을 만들 수 있다.


완성된 레몬청이 냉장고 한편에 자리 잡고 나자 이내 가을이 왔다. 쌀쌀한 날씨에 레몬을 넣은 따끈한 차는 더없이 좋은 온기가 되고, 가끔 생선을 구울 때 위에 올려주면 비린내를 잡고 음식의 풍미를 돋우는 유용한 식재료가 되었다. 레몬의 맛과 향기가 길을 지나치던 나를 사로잡았던 것처럼 레몬청은 그 만드는 과정도 신혼 초의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 흔한 레시피가 그토록 자주 눈에 띄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방의 모든 게 서툰 신혼부부에게도 그다지 만들기 어렵지 않고, 만드는 내내 상큼한 레몬 향기가 진동을 하며, 유리병을 소독하고 레몬을 뽀득하게 씻는 과정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일 테니까. 처음 따라 해 본 신혼의 레몬청 만들기는 아주 성공적이었고 이후에 그걸 부모님에게 나눠드리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우리 부부를 즐겁게 했다. 달달한 신혼에 새콤한 포인트를 얹어 주는 레몬청 만들기, 한 번은 해 볼만 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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