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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그녀 Nov 09. 2023

마조히스트, 글쓰기의 고통

브런치 초보 작가의 고군분투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초등학교 1학년, 내 꿈은 서점 주인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엄마와 서점에 가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책을 읽었다. 서점을 나설 때 고르고 고른 책 한 권을 품에 안으면 다 가진 기분이었다. '한 권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서점이 내 것이라면!' 반드시 서점 주인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직시하고(서점 주인은 가지는게 아니라 남에게 주면서 돈버는거였다니 상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다른 길에 들어섰지만 그 정도로 책을 사랑했다. 늘 좋아하는 과목은 국어였다. 교대도 국어교육과, 석사도 국어교육과, 그림책에 관심이 생겨 이곳 저곳에서 수업도 많이 듣고 자격증도 취득했다. 평소 한 달 1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읽는 시간이 좋다. 


요즘 읽고 있는 책, 틈독의 달인



하지만 언제나 글쓰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이쯤 읽으면 잘 써질법도 한데 의무적인 글쓰기의 기회가 와도 늘 부담이었다. 그런 내가 브런치에 도전한건 참으로 즉흥적이었다. SNS에서 평소 존경하는 이은경 선생님의 브런치 작가 프로젝트 모집 글을 본 것이다. 처음에는 넘겼다. '책쓰고 강연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런 프로젝트도 하시는구나!'하며 감탄하고 지나쳤다. 그러다 우연히 모집을 독려하는 다른 피드를 보게되었다. 


글 쓰면 떡이 나오냐고 묻는 역풍에
당당히 맞서시도록 조언해드릴
단단한 이야기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인생은 결국 역풍과의 눈치게임인듯 합니다.
내가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이는 거의 없거든요



'내가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이는 거의 없다. 글쓰면 떡이 나온다.' 글에 대한 내 욕망을 툭 건드렸다. 죽기 전 책 한 권 제대로 써 보고 싶다는 꿈도 떠올랐다. 대학시절 지갑 얇을 때의 스타벅스 커피처럼 나를 위한 선물 같은 마음으로 신청했다. 들뜬 마음으로 수업을 듣고, 브런치 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동안 막연하게 구상해온 것들이라 목차 구성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글이었다. 한 편의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해 펼친 순백의 종이가 두렵게 느껴졌다.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작 종이에 적어보니 허수같이 느껴졌다. 종이는 '그래서 하고 싶은말이 뭔데?'라며 나를 추궁하는데 횡설수설했다. '내가 이리도 글을 못 쓰는 사람이었나?' 



백지를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이란 (출처: Unsplash)




유튜브에 '글 잘쓰는 법'을 검색했다. 설거지를 하며 유시민, 강경국 작가님의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구체적으로 쓰고, 비유와 예시, 비교를 통해 설득적으로 쓰며 너무 설득하려들지 말고 독자의 이익을 강조하라! 하나같이 단전으로부터 감탄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치원생이 중학교 수학을 맛보듯 내 초보 글에 담긴 어려웠다. 더불어 어찌나 글쓰는 자리로 궁둥이 붙이기가 싫던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반항하고 싶었다. 공부하기 싫어서 화장실 가고, 물 마시고 싶다고 계속 공사가 다망한 우리집 아이 같았다. 



최인아 작가님 (출처: 유퀴즈 온 더 블럭)


문득 삼성그룹 최초 여성 임원이었고 현재 '최인아 책방'을 운영하시는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의 최인아 작가님 말씀이 떠올랐다. 그녀는 23년 4월 써낸 책의 내용과 이후 인터뷰에서 줄곧 이렇게 말했다.


아니 어렵다고 다 안하나요?
힘들고 어려운게 나쁜건가?
다들 왜 피하고 꽃길만 가려 하죠?


그렇다. 힘들고 어려운게 나쁜가? 이렇게 생각하니 글쓰기의 고통이 값지게 느껴졌다. 종이를 펼쳐들 용기가 생겼다. 쓰고자 했던 주제에 관해 생각나는대로 종이에 나열하고, 노트북에 정리했다. 출력해서 연필로 끄적끄적 퇴고했다. 버퍼링 걸리듯 뇌가 정지하기도 했고, 분명 이상한데 어떻게 고쳐야할 지 모르겠는 순간이 계속 되었다. 쉴때마다 브런치 유명 작가님들 글을 보며 부럽고 오징어 같은 내 글을 열면 좌절했다. 그런데 글쓰기의 고통이 썩 나쁘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 내 모습이 살짝 근사했다. 출력한 글에 연필 자국으로 많은 문장들을 전사시키며 퇴고했다. 글 한 편을 겨우 완성했다.


글쓰기의 고통을 즐겨라! (출처:unsplash)


브런치 작가 합격 소식에 "너 좀 괜찮으니 계속 해봐!"라고 인정받은 듯 했다. 요즘 난 달라졌다. 다이어리에 글쓰기 일정이 추가하고, 휴대폰 메모장에 글감을 수집한다. 동트기 전 한 시간 글과 씨름한다. 누구에게 말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감정이 들 때도 종이에게 하소연 한다. 여전히 글쓰는 자리로 가는 것이 부담이지만 기꺼이 '고통을 즐기는 사람'으로 살아보겠다. '자발적 글쓰기'라는 말이 참 마음에 든다. 은경쌤이 종종 하시는 말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글쓰기라는 험준한 길에 올라탄 내 모습이 좋다. 분명 브런치 작가로서의 길은 글과의 씨름일테다. 그래서 글쓰기의 고통을 당분간 즐겨보기로 했다. 글쓰기 마조히스트. 고통을 지긋이 밟아가보면 글써서 떡나오는 때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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