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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듦의 기준

누가 더 힘든가

by 커피콩

유튜브로 김창옥 교수의 강연을 보았다.

해병대에 다녀오니, 어떤 힘든 일이 생겨도 별로 힘들지 않게 느껴졌다고 했다.

본인의 삶에서 힘듦의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강의를 듣고, 내가 평소 듣던 말들이 생각이 났다.

애(딸, 아들) 둘 엄마 :

야, 하나는 힘든 것도 아냐, 둘 키우면 얼마나 힘든 지 아니? 일이 두 배야! 아프면 또 같이 아프다. 너는 편한 줄 알아.

애 셋 엄마 :

언니는 편한 줄 아세요. 애 셋 정말 힘들어요. 또 학교라도 가 봐요. 챙길 게 얼마나 많다고요.


아들 하나 낳아서 키우고 있는 나는, 그들 앞에서 어느새 편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일이 배로 많을 테니, 그들의 말이 맞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내 삶에서 비교할 수가 없다. 그저 한 아이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둘째를 낳을 계획은 없지만, 사실 그래야만 정확히 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갑자기 항변하고 싶어졌다. 나는 둘, 셋을 키워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나한테 편하다 말하지 말라고!



어쨌거나 그러다 보니, 아이 하나 키우는 엄마들과 함께 있을 때만, 나의 힘듦을 겨우 말할 수 있었다.

반면, 나의 절친 등, 몇 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들 둘 키우는 나의 절친은,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가 둘이라서 내가 너보다 더 힘든 건 없어. 다 자기 삶의 힘듦이 있으니까. 그건 비교할 수 없는 거야."

나는 감동해서 대답했다. "일이 더 많은 건 사실이지, 두 배니까."

"그래도 둘이 놀 때도 많으니, 내가 편할 때도 많을 거야. 그러니까 어쨌거나 비교가 불가하지."

이렇게 서로 힐링이 되는 말이 오간다. 오는 말이 고우니, 가는 말도 곱다.



실제로 이 친구는 다른 지인들 모임에서, 아들 키우기가 딸 키우기보다 더 힘들다 등등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아들 같은 딸도 있고, 딸 같은 아들도 있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애가 많아서 너보다 힘들다 말하면 "첫째만 낳고 키울 때는 그럼 안 힘들었냐, 혹시 그때를 잊은 거는 아니냐."라고 묻는다고 한다.



나의 힘들다는 말에 내 절친처럼 말해준다면, "당연히 네가 더 힘들지."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너는 힘든 것도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나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사실 몇 번을 반복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 앞에선, 속으로 누가 많이 낳으라고 했냐고 묻기도 했다.

각자 본인이 감당하려고 낳은 아이들 아닌가...

(실제로 나는 하나만 감당이 되었다. 늙어 애를 낳기도 하였고, 내가 사형제 북적북적한 사이에서 커서인지, 그저 하나만 낳아 잘 키우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갑자기 나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 넘어 애 낳아 봤어요? 나이 어려서 애 낳으니, 나보다는 힘이 덜 들 거예요."

혹시나 이런 말하는 사람이 안 되어야겠다고. (실제로 주위에 나보다 열여섯 살이나 어린 엄마가 있는데, 사실 속으론 너무 부럽기는 하다.... 애 둘을 케어하는데, 감탄이 나올 정도록 파워풀하다.)


사실은 사실이다. 하나보다 둘, 둘보다 셋, 셋보다는 넷. 그리고 나이가 어릴 때의 파워와 나이 들어서의 힘의 정도. 그러나 우리가 어디 사실을 비교하려고 말 시작할까.... 그저 공감을 얻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가.




비교하는 말은 꺼내서 득이 별로 없다.


힘들다면 공감해 주고, 응원해 줘야 서로 오래갈 수 있다.


모두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모두가 조금씩 혹은 많이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말을 꺼내는 이유, 대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모두 공감이 필요해서니까.


말을 예쁘게 하는 것, 상대를 배려해서 하는 것, 그것이 매우 매우 중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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