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플러스할 일
어린이집 선생님에게서 동영상이 도착했다.
줄넘기를 처음 사 주고 난 뒤, 두 번을 연속해서 줄을 넘기지 못해 짜증 내던 아이를 본 게 엊그제 같은데, 한 두 달 사이 서른 번 이상을 줄을 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내 눈이 커졌다, 진심으로 놀랐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얼굴에 '뿌듯'이 써졌고, 줄넘기 실력을 바로 보여준다.
"우와, 이모도 보면 정말 놀라겠다."라고 하니, 멀리 사는 이모에게 바로 영상통화를 연결하자 한다.
'감탄'이라는 단어를 마주했다.
뒤집기 시절, 반쯤 뒤집었을 때,
뒤뚱뒤뚱 두 번 발걸음을 떼었을 때,
엄마라는 발음을 가장 비슷하게 내뱉었을 때,
그때의 나의 환호성을 기억한다.
작은 일들에도 매번 감탄을 하던 엄마,
지금 나의 환호성이 얼마나 줄었을지, 살짝 반성을 하게 되었다.
줄넘기처럼, 작은 일 하나하나 성취해 가는 일들, 아직도 아이에게 처음인 것들 투성일 텐데,
내가 처음처럼 감탄하고는 있는지, 혹은 반응이 작아지지는 않았는지.
아직도 어린아이인데, 키가 컸다고, 일곱 살이나 되었다고 해서 어른처럼 하기를 바라면서
감탄을 줄이고 있는 건 아닌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직도 받을 감탄이 많을 나이, 일곱 살의 어린이에게
규칙을 중시하느라, 감탄보다 야단이 더해졌는지 뒤돌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분명 최근에는 따뜻한 시선보다, 부릅뜬 눈을 더했을 것이다.
아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엄마의 사랑을 '감탄'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나이, 엄마의 감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청년이 되어 홀로 서서 갈 때도 든든한 마음 영양분이 될 수 있도록
감탄이라는 사랑을 더 표현해 주기로 했다.
완벽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다.
완벽은 완벽하게 허상이지만,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에는 완벽이라고 쓸 수 있다.
그 마음을 표현하는데, 감탄만 한 것이 있을까.
완벽한 것 없는 세상에서, 어쩌면 딱 하나 적용되는 완벽과 어울리는 단어,
내 아이를 완벽하게 사랑하는 나의 마음,
그리고 감탄으로 표현, 요즘 나의 새로운 다짐이다.
요즘 꽃만 보고 감탄했음을 고백한다.
핸드폰에는 꽃 사진이 가득.
(물론 너의 사진이 더 많긴 하다.)
꽃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게
나이는 속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