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물려줄 것은.
"엄마, 나랑 먼저 이야기하고 있었으면서 왜 아빠랑 이야기해?"
"아니, 식당 어디 갈지 먼저 정해야 하니까. "
"그래도 나랑 먼저 이야기하고 있었잖아."
울기 시작한다.
"너, 배 고프지?"
"아니야! 엄마는 내가 그 말 싫어하는 거 알면서 왜 또 그 말을 하는데?"
"아니, 너 배고플까 봐 빨리 음식점을 정해서 가려고 한 거지."
이쯤 되면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든다.
조금 후에 음식이 입으로 좀 들어가야 상냥한 아들의 모습이 나온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엄마, 왜 도로로 걸어?"
"아니, 길거리에 담배 피우는 사람도 있고, 음식물 쓰레기통도 많잖아."
"엄마는 담배 냄새 안 맡는 게 중요해, 차에 안 치이는 게 중요해?"
"........"
골목도로 주차선 안에 주차를 하고, 시간이 늦어 치킨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빨리 차에 태우려다가 벌어진 상황이다.
배고프거나 졸릴 때 떼쓰는 것은 알겠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도 요즘 말대답이 아주 어마무시하다. 가끔은 규칙대로 살아가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말하므로, 아이가 옳은 경우도... 꽤 많다.
말대답? 말대꾸?
어른의 눈높이에서 본 그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에 대해, 나는 저지하거나 억압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일단 예의에 어긋나지만 않게 말하면, 모든 대화가 가능해야 한다고 믿는다. 심지어 따지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무척 찬성이다. 일단 어떤 상황에 대해 따지기 시작하면, 아이의 머릿속에 뭔가가 자리 잡는 느낌? 그래서 들어보고 "네 말도 옳다."라는 인정의 말을 자주 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감정을 읽어줄 생각은 없다.) 그리고 가끔 대화중 발견하는데, 나도 모르게 틀에 박힌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또 가끔은 나이를 훨씬 더 먹은 내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서 반복해서 말해주지 않아서 납득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고 생각하고, 좀 더 인내심을 있는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다.
아이일 때 기억, 어떤 것은 기억조차도 없지만, 어떤 것은 큰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된다.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은 많은 부분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부모라는 자리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 집은 소위 말하는 '있는 집'은 아니므로, 더더욱 "태도"는 남겨주고 싶다. 또한 체력의 한계로 여행이나 체험으로 보여주는 것들이 많지 않으니, 또 다른 따스한 기억, 내 말을 경청해 주는 부모의 태도, 그런 것들은 충분히 채워주고 싶은 것이다.
잘 모르니, 육아서의 도움이 또 필요한 순간이다.
배려는 좋으나 또 지나친 것은 좋지 않으므로, 부모의 권위도 중요하므로.
중용, 적당한 것이 늘 제일 힘들다는 것을 오늘 또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