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나랑 40살 차이야?
"엄마, 몇 살이야??? 아... 그럼 엄마랑 나랑 사십 살 차이야?"
그렇다 네가 스무 살이 되면, 나는 육십, 그러니까 예순이 될 것이다.
너희 아빠는 예순여섯 더 심하지..... (아빠는 의문의 1패)
"하지만 우리는 동안이야. 밖에서는 비밀을 유지해라."
나이를 자꾸 묻는 아이에게 당부하였다. 물론 안 지켜질 것을 안다.
서른 중후반, 내 나이가 어느새 마흔을 향해 가고 있구나를 느꼈을 때 즈음이었다.
막 중국 파견 1년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매우 자유로웠지만 또 무척 외로웠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고 했지만,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나는 '여유 시간이 많아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면 안 된다'라고 판단하였고, '시간을 없애자! 바쁘자!' 계획했다.
그래, 혹시 모를 '실업'에 대비하여, 바리스타자격증을 따자.
커피를 못 마시던 내가 그때 왜 커피를 배우고자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수업료도 지불했으니, 나는 열심히 커피콩을 들여다 보고, 콩을 고르고, 원산지마다 다른 원두의 맛도 느껴야만 했다.
"OOO 씨, 이 커피에서 군고구마 맛이 안 느껴져요?"라는 선생님 물음에 당당하게, "네. 안 느껴집니다!"라고 대답했던 기억도 난다. 무식하고 당당했다.
이렇게 나는 맛도 모른 채, 필기와 실기를 거쳐 커피 수업을 무사히 마치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손에 쥐게 되었다.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커피수업에서 핸드드립만은 제대로 배워, 이제는 아침마다 내 손으로 커피를 내려 향까지 마시는 홀로 커피 전문가가 되었으니 '그때 그 수업료 값'은 했다 싶다.
그리고 아침 필사와 더불어 커피는 이제 내 삶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문득 그 과정에서 '내 나이와 관계된 불쾌한 일'이 기억이 나고야 말았다.
정말 어찌하다 보니 커피와 함께 한쪽 기억을 차지하는 부분이 되고 만, '그 일'은 이렇다.
그 당시 같이 수업을 듣던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꽤 있었고, 그중 카페 사장님이 세 분이나 계셨고, 젊은 예비 창업자들도 몇 명 섞여 있었다. 나는 모임에 나이 있으신 분들이 과반 이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유인즉슨, 모임이 조금 더 정숙? 해지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받을 줄은 정말 몰랐다.)
수업이 반쯤 흘렀을 때였을까, 반장님 카페에 우리 모두 초대되었고,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어느 순간 이야기의 흐름이 '나의 나이'에 집중되었다.
노처녀. 나이 든 어른들 입장에서 나는 '노처녀'였고, 당시 남자친구가 없었으므로 더욱 노처녀의 이미지가 씌워졌다. 불편했지만, 모두의 생각이 다르니까 '그럴 수 있다' 정도였는데, 노산을 이야기하며 '기형아'에 대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누구는 몇 살에 아이를 낳았는데....로 시작하여, 계속하다가는 온갖 장애가 다 나열될 판이었다. 그리고 '어서 선 봐서 조금이라도 어릴 때 결혼하는 게 좋을 거'라는 권유가 이어졌다. 결국 이 이야기는 반장님(미혼 남성, 이 분이 듣기도 너무했었나 보다.)의 "이제 그만 좀 하시죠."로 정리되었던 기억이 난다.
외국에서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느낌이어서, 나는 지금도 외국살이를 가끔 꿈꾼다. 나이를 묻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런데 한국생활에 다시 적응하려던 나에게, 가족도 친구도 아닌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니 황당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당황하여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할수록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이로 인해 함부로 불행한 미래를 예측당하는 일을, '순전히 나이'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스스로도 말로 꺼내어 놓지 못하는, 불안한 나의 미래는 나의 것이다. 당연히 당사자가 가장 불안해하는 바이다. 어쩌면 나도 불안했던 부분을, 예의 하나 없이 '말로 꺼낸 그분들'을 생각하니, 나중엔 어이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때,
'나는 역시 한국사회와는 맞지 않아.' 하면서
다시 도피를 꿈꾸는 '나이 든 여자'가 되고야 말았고, 실제로 한 번 더 도피?를 감행하고 말았다.
마흔 후반이 된 지금, 이 정도 살아보니, 남이 나를 규정할 수 없고,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알지만, 나의 마음이 흔들리고 건강하지 못할 때는 온갖 것들이 부정적으로 아프게 와닿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쨌거나 과장된 부분 거의 없는 저 일화에서, 그 어른들이 조금의 친분이 쌓였다고 판단해 꺼낸 이야기라도, 나를 위한다는 명목이라도, 확실하게 '잘못했다'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마흔에 결혼, 마흔 하나에 출산을 경험했다. 노산이라고 산부인과에서 하는 검사도 추가되었고, 그 검사에서 재검사가 나와서 마음 졸이던 날들도 분명 있었다. 다행히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를 낳는 복을 누렸으나, 아이를 품고 있는 내내 마음이 온전히 편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지금이야 마음이 편해져서, 이제 저 일화를 떠올려도 "나는 그 누구에게도 감히 저런 원하지도 않는 충고를 하는 어른, 그런 할머니로 늙지는 말아야겠다. 평균을 따져 비교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만 할 뿐이지만, 그땐 참 불쾌했었지라는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다.
개개인의 상황은 다 다르며, 비교는 쓸모없으며, 나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는 시대로 점점 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나도 모르게 '나이 때문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허리를 두드려가며, 체력이 나날이 소진되어 가는 것을 느끼지만, 마음만은 늘 '즐거운 책임, 육아'를 기록하면서, 괜찮은 어른, 그런 할머니로 늙어갈 것을 오늘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