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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란다.

결혼하자마자 할머니, 너는 태어나자마자 삼촌

by 커피콩


나는 마흔에 결혼을 하고, 마흔 하나에 아이를 낳았다.


결혼해 보니 조카들 일곱, 거의 반은 결혼도 하여 아이들을 낳았고, 심지어 조카의 아이들 중 우리 아이보다 형인 아이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하자마자 할머니가 되고, 우리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삼촌도 되고, 매형도 되고 형수님도 갖게 된 것이다. 호칭 참 복잡해졌다.



여하튼, 그리하여 지금 나를 "할머니"라 부르는 아이가 다섯, 아니 곧 하나가 더 늘 거라는 기쁜 소식을 듣기도 했으니 이제 여섯이 된다. 머리 희끗희끗 할머니가 아니다 보니, 아이들은 나를 만나면 종종 '이모'라고 부른다. 호칭이 뭐가 중요해라고 생각해서 그냥 두지만, 손자손녀들이 몰려와 이모라고 부를 땐, 가끔 '나는 할머니란다'라고 정정해 준다.


나에게는 온통 새로운 가족, 늘 북적북적한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그날, 온전히 마음에 새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우리는 큰 일을 겪어 낼 때 하나가 된다.


아버님은 얼마 전 아흔 넘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가 늦게 결혼한 탓에 하나뿐인 친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 장성한 외손주들의 깊은 애도로 삶을 마무리하셨지만, 나는 하나뿐인 친손주라고 하시면서 우리 아이만 보면 헛웃음 치시던 모습이 생각나서, 장례를 치르던 내내 늦게 결혼한 것에 죄송한 마음이 더해지고 더해졌다.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이 길었던 장성한 조카아이들은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그 사이에서도 다정함을 잊지 않고, 본인의 슬픔도 버거울 텐데 '외숙모 함께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라면서 나를 안아주는 큰 조카를 보면서, 나는 슬픔 속에 사랑을 느꼈다. 또 그 조카들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돌아가신 왕할아버지를 위해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족 그림을 그려 올려놓기도 하고, '왕할머니가 슬퍼 보여요.'라는 말도 한다. 예쁜 마음이 그리고 예쁜 말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염되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너희들은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자랐니, 너희들은 정말 다 예쁜 사람들이구나.. 나는 그 가족 안으로 들어왔구나. 할머니지만, 이 아이들의 할머니인 게 좋고, 또 내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챗지피티 고마워

장례식장에서도 유일하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저 조그마한 존재들인 아이들, 뛰고 노는 아이들로 인해 우리는 잠시 슬픔을 잊었다. 그리고 이렇게 빈자리가 생겨도 서로 의지하며 그리워하고 의지하고 그러면서 삶을 이어감을 배웠다.




결혼도 생각하지 않았던 남편은, 장례식장에서 형제자매가 많아 의지가 크게 되었는지, 먼 훗날 우리의 부재를 혼자 감당할 아이가 걱정되었나 보다. 며칠 뒤 슬며시 끼어들어온 '동생'이라는 단어, 그 단어에는 바로 선이 그어졌으나, 미안한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우리 '어른의 마음'이 끼어들어간 거겠지, 너는 너대로 잘 살 거라 믿고 응원하는 게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을 수정한다.



따뜻함과 다정함, 살다 보니 그게 전부 같다.

다정한 건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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