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음이 시발점?
한참 일이 바쁠 때, 나는 시간 조정이 수월한 아이 아빠보다 퇴근이 늦었다.
거의 매일, 아빠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왔고,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둘이 책을 읽고 있는 풍경이 일상이었다.
책을 얼마나 많이 읽어주는지, 그저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흐뭇한 장면이었다.
사실, 책 육아를 하자! 하고 시작한 거창한 목표는 아니었을 거다.
공놀이? 장난감 놀이? 아니지. 따라다니기? 아니지.
그저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게 최고였던 것이다.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면 몸도 쉴 수 있고, 따스한 체온도 나눌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게다가 아이 아빠는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목소리까지 성우급이라 그 감정을 담아 읽는 솜씨가 대단하다.
보통 엄마들이 감정을 실어서 잘 읽는데, 나는 몇 번 시도해 봐도 그만큼 잘 되지 않았다.
동물 흉내 내기까지 달인이 된 남편.
책 읽어주는 일을 마음 편히 넘겨주니, 내 능력은 점점 줄어들고 아이 아빠의 능력은 날이 갈수록 발전했다.
(뭐든 잘하면 일복이 터진다. 어쨌거나 나에겐 잘 되었다.)
시간이 지나니, 아이는 스스로 혼자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글자를 모르니, 외운 내용일 거다.)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두었는데, 지금 봐도 정말 감동적이다.
덕분에, 보통 남자아이들은 말이 늦다고 하는데,
아빠가 매일 읽어주는 책과 매일 불러주는 동요 덕분에, 보통 여자아이들보다 더 빨리 말을 시작했다.
그래서 여자아이와 단짝이 되었고(말이 통한다는 이유),
말을 잘하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어서 몸으로 의견을 표현하며 힘을 쓰는 일도 거의 없었다.
또한, 아빠가 수준을 가리지 않고 읽어주는 책 덕분에,
선생님들께는 똑똑한 박사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이대로 잘 키워 봅시다."라는 선생님의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그 시절 나의 육아일기장에는 아이 아빠에 대한 칭찬만 가득했다.
“너는 이런 아빠를 가진 게 행운이다, 감사해라.” 이런 기록이 거의 매일이었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많은 아빠의 나이 덕분이다. (체력 탓)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황소가 뒷걸음질 쳐서 쥐를 잡는 것처럼....
체력으로 인해 생각지 못한 책육아가 시작된 것.
나이 들어 결혼하면 이런 좋은 점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 싶다.
이래서 늦둥이가 잘 크나....? 싶기도 하다.
며칠 전에도 일곱 살 꼬맹이에게 내리 책 13권을 읽어주는 것을 보고, 감탄한 엄마다.
이 때는 진정 남편에게 하트가 발사된다.
나는 내 책 읽고, 아빠는 아이 책 읽어주고, 매우 감사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