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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Feb 12. 2020

영업 22년 엄마가 알려준 인간관계의 황금률

나는 상대방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일까?

내가 다닌 초등학교 맞은편에는 회색 기와를 얹은 허름한 집이 하나 있었다. 그 집 지붕에는 길고 가는 막대가 꽂혀 있었다. 그 막대에는 천이 두 장 매달려 있었는데, 한 장은 빨간색이고 다른 한 장은 흰색이었다. 만신집. 사람들은 그 집을 그렇게 불렀다.


24년 전, 엄마가 그 만신집을 찾아갔다. 무엇을 알고 싶었던 것일까? 만신집의 무녀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무렵, 그 무녀는 엄마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이 말을 던졌다. "영업을 하면 참 좋겠는데." 엄마는 그 말에 깜짝 놀라 손사레를 쳤다. "제가요? 저는 못 해요... 저는 사람들이랑 말도 잘 못하고... 여기 동네에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걸요." 그 무녀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날카롭고 깊은 눈으로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리고 2년의 시간이 흘렀다. 1998년, IMF가 몰고 온 폭풍이 온 나라를 덮친 직후였다. 아버지가 직장을 잃었다. 집에는 세 명의 아이가 있었다. 막내가 이제 갓 돌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엄마는 사회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키 169cm에 50kg이 채 되지 않는 가녀린 몸에, 기술도 근사한 졸업장도 없는 젊은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엄마는 M사의 영업사원이 되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어린이용 교구와 책을 파는 일이었다.


아는 사람도 찾아갈 곳도 없었던 엄마는 길 위에서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나 임신부를 만나면 자신을 소개하고 연락처를 받았. 그리고 이후에 전화를 걸어 집으로 찾아뵈어도 괜찮을지 물은 뒤, 허락을 받으면 약속을 잡고 집으로 가 제품을 설명해 주는 식이었다.


길에서 모르는 이에게 말을 걸고 연락처를 알아내는 일을 쉽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더구나 엄마는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영업에도 서툴렀다. 길 저편에서 임신부가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면, 그 순간부터 심장이 쿵쾅, 쿵쾅 뛰었다. 제발 이쪽으로 오지 않았으면, 길 저편으로 돌아 갔으면 하고 기도하곤 했다. 바짝 마른 목에 침을 꿀꺽 삼키고 용기를 쥐어짜 말을 걸면 열에 아홉은 거절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실은, 포기할 수 없었다. 올망졸망 조그만 아이 셋, 바로 우리 삼남매가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절도 자꾸 당하니 아무렇지 않게 되고, 말도 자꾸 걸어보니 자연스러워 지더라." 엄마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 때는 참 서툴렀지. 영업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고."




엄마는 끊임없이 더 잘 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회사에서 나눠준 영업 멘트를 달달 외우고, 제품의 특징을 계속 공부했다. 찾아갈 집이 없다고 가만히 있지 않고 매일 매일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사근사근하면서도 똑똑한 엄마를 좋아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엄마에게서 물건을 샀다.


몇 년이 지나, 보험회사에서 일해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계속되는, 보험 설계사로서 엄마의 삶이 시작되었다. H사에서 S사로, 그리고 다시 프리랜서로, 엄마는 20년을 보험 업계에 몸담았다. 그 사이 엄마가 관리하는 고객은 총 8,000명을 넘어섰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고객을 찾으러 다니지 않는다. 기존 고객들이 소개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보험이 필요하다고 불러 주는 고객들의 연락에 부응하기에도 24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오늘의 "영업 고수" 엄마가 있기까지 집에서 몰래 흘린 눈물과 밤새 잠을 뒤척이던 고민의 시간들을. 비록 내가 엄마처럼 영업에 몸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세상이 어렵고 인간관계가 어려운 나는 마치 엄마가 지나갔던 터널을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랑 보험 계약을 체결해?" 엄마의 답은 명쾌했다.


"내 이익을 위해서 보험을 권유하지 않으면 돼"




"이익을 얻기 위해 남에게 접근하지 마". 엄마는 말했다. "사람들은 다 알아"


엄마는 자신이 파는 물건, 보험에 대한 명료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보험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필요없는 보험을 가입하면 큰 손해를 안겨주지만, 필요한 보험을 가입하면 삶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고객들이 보상을 청구할 가능성이 낮은 상품일수록 더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설계사에게 가장 큰 수당이 떨어지는 것은 사람들에게 필요할 가능성이 낮은 보험이다.


그래서 엄마는 수당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보험을 권유한다고 했다.


"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일까. 엄마는 그걸 고민하거든"


처음부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고객이 늘고, 그래서 한 건당 수당이 적어지더라도 많은 사람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되면서 수당에 대한 염려를 조금 벗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내가 팔고싶은 보험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필요한 보험을 보여주니까 계약을 하게 되는거야. 그리고 나면 고객은 나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나를 신뢰하게 돼. 그렇게 고객이랑 엄마랑 계속 같이 가는거야."



엄마는 누구를 만나든, 어떤 영역이든 다 똑같다고 생각해.
앞으로 지은이도 살면서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떤 이익을 얻어낼 수 있을까보다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항상 먼저 생각하도록 해



영업 22년, 긴 터널을 지나고 눈부신 햇빛을 맞이한 엄마가 딸에게 속삭여 준 인간관계의 황금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에 돈이 좀 많나 보구나"라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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