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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Oct 29. 2021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와 화해할 수 있을까요?

공감도 능력이다.


"상처는 그것을 어떻게 이겨나갔느냐에  따라 삶의 훈장이 될 수도 있고, 감추어야 할 부끄러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조개가 진주를 품기 위해서는 우선 몸에 상처가 나야 합니다. 그 상처를 감싸기 위해 조개는 계속 어떤 물질을 분비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뭉쳐서 아름다운 진주가 됩니다.
또 한 가지,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주는 상처를 최소화하는 것과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처 받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겠죠. 인생의 한 과정으로 상처를 이해하고 상처 받은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김혜남  '오늘을 산다는 것'중에서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아프고 힘든 대부분의 인관관계는 먼 오지에 있는 타인이 아니다. 대부분 보면 가까운 가족이거나 친구나 직장동료일 경우가 대분분이다.  자주 만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 서로 인정과 존중을 원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가족관계에서의 상처가 가장 깊고 아프다. 우리는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가족이기 때문에 그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부모 자녀관계에서 어린 시절 상처를 많이 입는 쪽은 자녀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부모는 자녀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자이자 사랑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상처를 잘 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또 가장 잘 회복시킬 수 있는 사람도 부모이다. 부모의 무지 때문이던 실수이든 간에 부모는 알게 모르게 자녀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회복하지 못해서 아픈 자녀들은 너무 많다. 그러나 대부분  그렇게 상처 받아도 부모와 화해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사랑의 품에 들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강력하고 기본적인 욕구는 부모에게 사랑과 인정받는 자녀가 되는 것이니까.




부모 자녀관계를 천륜이라 끊을 수 없다고 하지만 많은 정신질환의 시작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어긋난 경우가 많다. 그만큼 부모는 아이에게 절대적 영향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성인이 된 부모들이  성숙한 어른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위의 김혜남 박사님의 말씀처럼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고 공감하려고 하는 것은 능력이고 실력이다. 그리고 많은 어른들 중엔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아무리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에게 가서 " 엄마 아빠 때문에 힘들고 아팠다" 고 소리치고 울어도, 꼼짝도 하지 않는 부모들이 정말 많다. " 나는 그때 할 만큼 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혹은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자녀의 아픔을 외면하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화해를 시도하는 자녀들을 더 절망과 고통으로 빠뜨리는 경우를 정말 많이 보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만 먹고 돈을 버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 되고 성숙해진다는 것은 나의 경험과 지식은 매우 한정적이고 제한적이었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다.  그 당시 최선을 다했으나 그것이 자녀에게 최선이 아녔음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나의 미성숙함으로 인하여 많이 아팠을 자녀를 감정와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 당시 부모의 진심어린 최선과는 상관없이 그때 상처 받은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다.  그러나 이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력, 공감능력 그리고 포용력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가능하지 않는다. 그래서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어른들 중에 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때론 그분들이 부모라 하더라도.


그래서 가족 간에 틀어진 관계가 잘 풀어지지 않는다. 이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이해가 되지 않으면 관계는 잘 회복되지 않는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의 인간관계가 다 내 맘 같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상대가 나보다 아무리 나이 많은 어른이라도 내면은 아직 성장하지 못했을 수 있다.  세월의 무게만큼 성숙해지지 못하고 그냥 굳어진 사람들의 경우엔 나이가 든다고 절대로 성숙해 지거나 지혜로워지지 않는다. 또한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단점과 약점이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분들이 아무리 내가 화해하고  사랑받고 싶은 부모님들이라 하더라도. 


내가 어린 시절 힘들고 아팠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표현해야 한다.  부모가 듣던지 안듣던지 살아계시던지 돌아가셨던지.. 나의 성장을 위해서 그 마음을 건강하게 전달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부모가 내 마음을 받아주고 진심으로 사과하길 바라는 욕심이나 기대는 내려놓아야 한다. 그건 부모의 마음이니까.




혹여 부모와 화해하고 싶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관계만 더 나빠졌다면, 내 마음도 부모님의 마음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자금 사과하고 용서할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상대도 동일하게 그 능력이 있는지 제대로 보아야 한다. 한쪽이라도 그 능력이 없다면 진정한 화해와 소통은 사실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의 만남과 대화는 서로의 갈등만 더 키우고 상처만 남기게 된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서로가 화해할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세월이 더 필요할 수도 있고, 혹은 서로가 더 상처 주지 않는 선에서 거리를 두고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안타깝게나이가 드신 부모님들은 잘 변하지 않는다. 간혹 교육이나 책으로 자기 성찰을 하신 분들 중엔 자신의 과오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자녀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공감능력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부모들은 그 당시 나름 자식을 사랑했고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자신의 진심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들은 죽어도  잘못한 것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 자녀가 원하는 만큼의 사과를 받거나 화해를 하는 것은 대부분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성인이 된 자녀 중에 용서되지도 않는 부모를 용서하거나 화해하려고 지나친 에너지 낭비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 그러면 애쓰면 쓸수록  자녀의 실망과 상처는 커지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를 진정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들 곁에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이다.  자신의 상처로  자신의 내면의 성장을 막고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서 배우지 못한 제대로 사랑받고 사랑 주는 법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혹은 교육으로라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도 성장할 수 있고 또한 나도 모르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모 자녀관계는 세상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 소중한 관계이다. 하지만 그 수준이 내가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고 너무 안달 내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다. 모든 인간관계는 쌍방향이고 한쪽에서 마음을 열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대신  그 관계에 얽매여 다른 소중한 관계를 잃어버리거나 내 마음과 삶이  침몰되지 않도록 잘 돌보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성인이 된 지금의 내 마음은 이제 내가 책임지고 관리하기에 달려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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