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것은 주도적으로 사는 것
진정한 자기 사랑은 자기 성장이고 참자아 (True-self)의 발현이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독립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독립된 사람이 되는 것은 자기 주도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누군가 혹은 어딘가에 의지하는 사람은 참자아를 발현하기 어렵다. 물론 우리가 어릴 때는 부모와 주변의 도움으로 성장해야 하는 시기가 있지만 모든 인간의 삶은 각자가 책임지고 사는 것이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따라서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삶을 의미한다. 소위 말하는 건강한 자존감의 시작은 자기 신뢰이고 확신이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없다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는 삶은 궁극적으로 행복하지 못하다.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고 있는 삶이 즐거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히 인생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 부모와 사회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에서 선택하는 것이고 그것을 끝까지 책임지며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성장하는 삶이고 어른의 삶이다.
그러나 이런 자기 주도성과 자율성은 부모의 양육태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한국은 모든 상황에서 부모의 선택이 언제나 옳다라는 암묵적 약속이 되어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성장하는 시기엔 옷을 선택하고 학원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라서는 대학 전공도 직업도 부모가 원하는 길로 가는 아이들이 많다. 심지어 결혼도 부모가 반대하면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된다면 이 자녀들은 자신에 대한 신뢰감도 책임감도 생기지 않는다. 잘 되어도 부모탓이고 못 되어도 부모탓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나 확신은 생길 수없다. 자신에 대한 존중이나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인간의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독립을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이 있다. 아이들의 사춘기가 그렇고 직장생활과 결혼 등이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게 되는 역할을 한다. 그럴 때 부모의 심한 반발이 있을 수도 있고 부모와 가족에 대한 심한 죄책감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의 아들, 딸, 누구의 누나, 오빠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나의 삶이 있고 그분들은 그분들의 삶이 있다. 그 사람의 원하는 삶을 살아주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결정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부모형제 가족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살다 보면 부모의 의견과 맞지 않을 때도 있고 가족들의 반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의 마음이고 내 결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 결정과 선택에 후회가 없게끔 노력하는 것이 성숙한 삶이다.
이런 이유로 때로는 서로 소원해질 수도 있고 멀어질 수도 있으나 스스로 선택한 결정에 책임을 지는 연습을 하면서 자신의 참 자아를 확장시키는 것이 자기 사랑이다. 그렇게 자신이 건강하게 성장하다 보면 주변의 관계도 오히려 제 자리를 찾을 때가 훨씬 더 많다. 스스로 성장하고 건강해지면 오히려 그때 누군가를 이해하고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는 포용력이 생긴다. 그렇게 나의 사랑이 타인에게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진정한 이타심은 건강한 자기 사랑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일상에서 주도적으로 사는 연습이 필요하다. 타인에 의해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고 성공시키는 경험이 많아야 한다. 그것이 자존감의 기초가 되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때론 자기 사랑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자신의 선택을 성실이 지켜나갈 책임감이 필요하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