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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Nov 16. 2021

사랑하는 사람 떠나보내기

애도하기

사랑하는 지인을 자살로 떠나보낸 지 거의 2주일이 다 되어 간다.   나는  마흔이 넘게 살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이렇게까지 가깝게 실감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어린 시절 돌아가신 할머니와 큰아버지는 너무 어려서 죽음을 인지 하지 못했고 몇 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나이도 있으셨고 지병이 있으셔서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번 계기로 나는 내 삶이 큰 사건사고가 없었던 어찌 보면 굉장히 평안한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친했던 언니를 그렇게 떠나보내고 한동안은 죄책감과 미련이 나를 힘들게 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미국에서 이렇게 오래 알고 가깝게 지낸 지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 언니를 우울증과 불안 그리고 자살을 지켜주지 못했던 나를 나는 무척 자책했다. 물론 상담가로서 언니를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지나고 보니 언니도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내가 그 신호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에 그녀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설마 언니가 그런 선택을 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아프지 않았을 때의 언니 모습만을 기억했던 나의 착오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후회와 죄책감이 나를  많이 괴롭혔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다.  어린 시절 허례허식이라 느꼈던 장례식은 애도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3일장이니 5일장이니 하는 장례식도 어쩌면 모두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장례식은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미안해하고 또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였다.


 그러나 미국은 3일장이니 5일장 같은 것이 없다.  사망이 확정되고  장의사가 시신을 인수하고 나면 장례식을 할 때까지 사실 유가족들이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냥 장의사에서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 시간들이 참 괴로웠다. 차라리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한바탕 울었다가 또 그녀와의 좋은 추억을 나누고 미련을 나누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들과 함께 만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 같은 자책과 후회가 있었다. 그렇게 나 또한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아.. 이래서 3일장을 했구나.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슬퍼하며 추억을 나누고 위로를 하는 모든 행위는 떠나간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지만 남은 유가족을 위로하는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장례식 또한 시끌벅적해야 하는 것도 떠난 사람보다 남아있는 유가족을 향한 애도의 과정이라는 것을 참 많이 느꼈다.


그래서 나도 일부러 언니를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한바탕 울고 또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시 웃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만의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엄마를 일찍 떠난 보낸 이가 한 말이 참 오래 기억에 남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사람들이 자신이 있는 자리에선 엄마 이야기를 일부러 피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아마도 그들은 어린 나이에 혼자된 딸이 안타까워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참 서운하다고 했다.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를 기억하고 싶은데 아무도 먼저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고


때로는 너무 슬플까 봐 힘들까봐  일부러 말을 안 하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진정한 애도는 같은 추억을 나누며 함께 울어주고 함께 웃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언니를 떠나보낸 남편과 딸도 눈물을 흘리고 슬퍼할 때도 있었지만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을 때도 있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안도가 되었다. 그렇게 울고 웃으며 언니를 천천히 건강하게 보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또한 남은 가족 곁에서 그렇게 그녀와의 추억을 오래오래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것이 정말 그녀를 잘 떠나보내 주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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