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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Dec 09. 2021

배우자가 떠난다면.

 한 달 동안 내 주변의 누군가는 아내를 잃었고 또 누군가는 남편을 잃었다. 두 사람 모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남겨진 배우자는 그저 황망함, 슬픔, 분노, 어이없음을 경험해야 했다. 이런 심리적 공황과 더불어 남겨진 배우자에겐 또 다른 삶의 무게가 남았다. 배우자는 떠나도 남은 사람은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 남겨진 아이를 데리고 살아야 하기에 재정적 책임이 남아있었고 아이에게 떠난 부모의 역할까지 감당해야 하는 몫도 남아있었다. 그 모든 것을 이제 홀로 감당해야 하는 남은 그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그저 참담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나 두 가정의 예후는 너무 달라 보였다. 아내를 떠나보낸 집은 딸과 함께 싱글대디가 되긴 했어도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언니의 부재는 그 가정에 심리적 정서적 타격만 있을 것이다. 언니가 보고 싶고 언니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들과  그녀가 해준 따뜻한 음식들이 많이 그리울 것이다. 그러나 언니의 부재로 인해 그 가정은  심각한 재정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편을 잃은 동생은 달랐다. 가정의 주 경제권을 남편이 제공하고 있었던 동생의 경우 이제 그녀는 하루아침에 가장이 되어 버렸다. 나도 동생의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의 남편이 떠난 슬픔보다 이제 막 40을 넘긴 동생이 두 아들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스러움 먼저였다. 그녀도 늘 직장을 다니며 가계에 보탬이 되던 알뜰한 아이여도 가정의 실질적 가장이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도 나를 돌아보았다. 가끔 남편이 먼저 떠나는 것을 상상한 적이 있기도 하다. 그때마다 나의  결론은 그냥 후회 없이 많이 사랑해 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현실은 더  냉혹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이 떠나도 매달 집세는 내야 하고, 보험료도 내야 하고, 전기세도 내야 하고 아이들 밥도 해주고 학교도 보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과부가 되면 정말 순식간에 가정이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그래서 오랜 세월동안 고아와 과부는 늘 사회적 약자였던 셈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정말 무능력한 아내였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돈 버는 일에 재능도 관심도 없었던 나는 농담으로 " 당신이 떠나면 나는 할아버지에게 팔려가야 할지도 몰라"라며 건강을 잘 챙기라 남편을 독려하기만 했지만 살고 죽는 것이 인간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낀 요즘 나는 나를 더 돌아보게 되었다.


남편이 먼저 떠난다면... 나는 우선 정말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나에게 남편은 남편 이상의 사람이다.  나를 그대로 품어주는 부모 같은 사람이고, 나의 모든 것을 잘 아는 가장 친한 친구이고, 나를 항상 웃게 해 주는 개그맨이고, 나를  나되게 해주는 조력자인 남편이 없다면 그야말로 인생의 반쪽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아마 나의 영혼은 사라지고 가죽만 남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나 세 아이의 엄마로 또 나는 남편이 없어도 살아야 한다. 아이들을 키워야 하고 그 아이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남편 없이 혼자 해야 한다면 죽을 만큼 힘들 것 같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어쩌면 나는 지금보다 더 독립적인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꿍짝이 잘 맞는 삶이었지만 그건 어찌 보면 내가 남편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이 떠나게 된다면 그가 편안히 눈감을 수 있는 아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남편이 없어도 아이들과 잘 살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아내가 되는 것도 어쩌면 남편을 사랑하는 길이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은 책임지는 거니까. 그리고 그가 없어도 내가 나답게 행복하게 사는 것을 그가 더 원할 테니까. 그렇게 남은 인생을 책임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 내 몫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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