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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금이 아니다

by 원정미

어릴 때 자주 듣던 말 중에 침묵은 금이다 말이 있다. 하고 싶은 말 다 표현하고 수다스러운 사람보다 할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하고 진중한(?) 사람이 우대를 받던 시기가 있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담을 공부하고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공부하고 나서 느낀 건 침묵이 금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침묵이 금이 되는 순간은 상대에게 쏟아내고 싶은 비난이나 욕 혹은 자리에 있지도 않는 남의 험담 등을 참는 순간이다. 그때 침묵은 정말 금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쏟아내는 분과 화 그리고 비난과 정죄는 마치 밥상을 시원하게 엎어버리는 것과 같다. 그 순간은 짜릿하고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엎어버린 밥상을 결국 치워야 하는 사람도 본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의 자신의 혀를 조절하지 못한 자신을 나중에 두고 두고 후회하는지 모른다. 따라서 이런 순간의 침묵은 금보다 소중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침묵해야 할 때는 침묵하지 못하고 침묵하지 말아야 할 때 침묵할 때가 너무 많다. 하지 말아야 할 비난, 정죄, 경멸은 너무 쉽게 표현하고 상대에게 표현해야 할 감사와 사랑, 인정 그리고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때 우리는 침묵한다. 이런 침묵은 상대방과 높은 벽을 만들 수밖에 없다. 불통인 것이다.


이런 인간관계의 불통이 우리에게 마음의 상처와 병을 만든다. 부모와 자식, 부부 직장이나 공동체 나아가 자신과의 관계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은 서슴없이 내뱉고 꼭 나눠야 할 말들은 내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고 상대방이 언젠가 알아주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현하지 않은 마음을 상대가 알 방법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인관관계의 문제의 시작과 해결의 실마리는 어찌 보면 똑같다. 대부분의 문제가 소통의 부재와 대화 단절로 시작된 것이라면 그 문제 해결의 시작도 대화뿐이다. 심지어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이미 세상에 없거나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되더라도 내 마음의 상처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고 회복의 첫걸음이다. 그것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함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하고 표현해 봐야 달라지는것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내가 나의 서운함과 섭섭함 혹은 애정을 표현한다고 해도 관계가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대화와 소통은 모두와 사이 좋게 지내고 한마음이 되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내 감정을 책임지고 나를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못하고는 상대방의 책임이다. 모든 관계의 책임지려고 하거나 평화롭고자 하는 것도 어찌보면 우리의 욕심일 때가 많다. 따라서 아무리 내 마음을 표현해도 화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 감정을 적절히 표현함으로 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울수 있다. 이것이 표현을 해야하는 이유이다.


소통되지 않고 억눌러 있는 감정의 찌꺼기가 많은 정신질환의 원인이다. 그 감정의 찌꺼기는 감추고 숨길수록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마치 쓰레기를 꽁꽁 숨기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악취가 나듯이 말이다. 그렇게 내 안의 열등감을 키우고 누군가 그 열등감을 건들릴 때마다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감정은 표현해야 한다. 때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마음을 글이나 그림, 노래로 라도 표현해야 한다. 절대 침묵한 내 상처와 아픔이나 표현하지 못한 진심은 절대로 금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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