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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Jan 25. 2022

섭섭 귀신(?) 퇴치법

 가끔 이유 없는 섭섭함과 우울함이 몰려올 때가 있었다. 아니 지나고 보면 나름의 이유들은 다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를 겪기 바로 하루 전날도 딱 그랬다. 아침부터 나도 모르게 짜증과  서운함이 일어났다. 그리고 하루 종일 우울 모드로 남편과 아이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남편에게 싸움을 붙이던 아이들에게  대판 화풀이를 하고도 남을 기분이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집안에서 시빗거리 찾기란 정말 식은 죽먹기이니까. 하지만 이젠 내 감정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제 시비거리를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을 섭섭 귀신이라 명명 지었다. 귀신이라 이름 붙인 건 생각보다 이 섭섭한 마음은 떨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귀신처럼 쫓아내려는 노력이 좀 필요하다. 안 그러면 이 섭섭한 마음에 내 마음을 뺏길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 마음뿐만 아니라 주변 관계도 매우 어려워진다. 억울한 시비를 끝까지 참아줄 사람들은 많이 없기 때문이다.


 40년을 넘게 나를 데리고 살고 보니 이제 이 섭섭 귀신이 언제 들어왔다 언제 나가는 줄 보인다. 보통 젊었을 땐 한 달에 한번 마법에 걸리기 전에 그랬다. 호르몬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할 때쯤  내 기분 또한 그랬다. 그래서 평소엔 무던하고 평온한 내가 갑자기 작은 일에 서운해지고 남편에게 싸우자고 달려들곤 했다. 그리고 마법이 사라지면 나는 다시 평온해졌다. 사실 이 현상은 여성들에게 흔히 있는 "생리 전 증후군"이라는 전문용어도 있다. 어떤 여성들의 경우 이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도벽 같은 충동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걸 알고 미리 경고를 날리거나 스스로 가족들과 거리를 두었다. 가까이 있으면 부딪히는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마법의 마술에서 좀 자유로워진 지금은 오히려 아무 일 큰일 없는 평온한 날에 섭섭 귀신이 들어온다. 딱히 급하게 내가 해야 할 일이 없거나, 주변에 큰 일도 없고 그저 잔잔하고 고요하게 지나가면 갑자기 " 난 뭐 하고 있지? 왜 이러고 살지?"라는 마음이 들어온다. 특별히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내 기준에서 크게 성취감을 많이 주지 못할 경우 더 그랬다.


 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있는 일들도 나름 꾸준히 하며 성실하게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보상이나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인 것 같았다.  사실 주부들이 하는 식사 준비나 청소 살림 등이 하지 않으면 티가 팍팍 나는 일이지만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차리 밥상의 숫자만큼 포인트가 쌓이거나 청소를 한 만큼 월급을 받는다면 모를까.. 정말 보상 없는 쳇바퀴도는 일상이다. 거기다 나름 글을 쓴다고 꾸준히 하고 있으나 내가 노력하는 만큼 피드백을 받기는 정말 힘들다. 마치 허공에다 외치는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허허벌판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한 삽씩 옮기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굳이 왜? 이러고 생고생을 하고 있나?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이런 섭섭 귀신이 든 것은 지금 내가 너무 평안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급하게 닥쳐서 해결할 일이 없고 큰 걱정이 없고 모든 것인 순조로운 순간에 나는 오히려 사실 다운이 된다. 그건 내가 어찌 보면 이전까지 무척 목적지향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목표를 가지고 있진 않았어도 미국으로 유학 온 후 늘 학업과 아이들 육아를 함께 하다 보니 한 학기 한 학기를 잘라가며 작은 목표를 이루고 살던 게 습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매년 허들을 넘듯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으로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고 살았던 것 같다.


늘 시험과 숙제 그리고  아이들 셋을 15년 정도 도돌이표 육아를 하면서 지금처럼 평안하게 있어본 적이 드물다.  생계와 학교 공부 그리고 육아만으로도 넘치게 바쁜 생활이었다. 얼마 전 까지도 나는 국가 시험공부에 매진해 있었으니까. 사실 그럴 땐 오히려 섭섭 귀신이 들어올 틈이 없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마음적으로 여유가 생길 때 사람이 안 하던 비교도 하게 되고 내 삶의 부정적인 면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면서 오히려 마음이 낙심이 된다.


그러니 나는 이 섭섭 귀신이 나가는 때도 알고 있다. 사실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누가 아프거나 사건사고가 생기면 이 섭섭한 마음은 온 데 간데 없어진다.  나 또한 그 섭섭하고 우울했던 마음들은 며칠 오한과 근육통에 다 날아가 버렸다. 몸이 아프면 사실 낫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들 쉽게 죽고 싶다 말하고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정말 죽을 만큼의 육체적 고통이나 노동을 하게 되면 그런 마음은 싹 사라진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고 싶어 한다. 이런 이유로 적당한 운동이나 육체적 노동이 정신건강에 특효약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오히려 고난과 역경 가운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삶의 열정이나 오기가 넘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면 너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그건 힘든 노동이나 일 이후의 쉼이 될 때 이야기이고 무위도식하는 인간에게 사실 진정한 평안이란 없다. 삶에서 어느 정도의 고민이나 문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주고 나를 샛길로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에서 특별한 문제나 고민이 없다면 스스로 더 섭섭 귀신이 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어도 스스로 상처받기 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이 섭섭 귀신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 된다. 상처는 타인이 주는 것도 있지만 스스로 받는 경우도 많았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에서 상대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일어난 서운함과 섭섭함으로 관계를 꼬이게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정말 많다. 그리고 이렇게 쉽게 작은 일에 서운하고 섭섭해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사실 매우 피곤한 일이다. 


자신의 마음의 상태와 감정 변화 그리고 행동변화를 잘 지켜보면 언제 이 섭섭 귀신이 들락거리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사람을 찾기 전에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달래주는 것이 먼저이다. 나 같은 경우엔 목표가 상실되거나 존재감이 사라진다고 느낄 때였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기도로 토로하기도 하고 남편과 나누고 글을 쓴다.  그렇게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왔다가 자연스럽게 가도록 내버려 두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마 내 인생에 앞으로 더 많은 섭섭 귀신이 들락거릴 것 같다. 왜냐하면 이제 곧 갱년기도 올 것이고 아이들은 내 품을 하나둘씩 떠날 것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보다는 그렇지 않은 곳이 훨씬 많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과정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순서이겠지만 서운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섭섭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내 마음과 감정을 끝까지 책임지며 다스리며 살고 싶다. 섭섬함보다는 감사함 만족함 충만함을 더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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