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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Feb 19. 2022

시작은 미약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기독교 상담학 관점에서 부부관계에 대한 원고를  쓰고 있었다. 사실 나는 내가 책 원고를 쓰게 되리라고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어쩌몇 달 전 내 브런치 북을 보고 어느 출판사의 제안으로 초고라는 것을 써 보면서 책 원고를 처음 쓰게 되었다.


사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달랐다.  늘 부부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꼭 기독교 출판사에서 내고 싶었다. 그러나 누군가 연락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원고 투고라는 것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독교 신문에 매주 올리던 칼럼들과 일 년 넘게 부부관계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써 온 블로그에 글들을 모아 모아 다시 재구성하고 편집하고 수정해서 두 번째 원고를 완성했다.  더불에 생전 처음으로 출간 획서라는 것도 써봤다. 그리고  어제 내가 좋아하는 기독교 출판사 9군데에 원고 투고를 했고 새벽에 바로 2군데에서 바로 답장이 왔다. 출간 의향이 있다면서..


사실 원고 투고를 보낼 때 나의 마음은 결과보다는 도전에  의미를  두었고 나의 투고에 거절과 무시의 답장을 으며 마음의 집을 키워보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 내 글에 피드백을 준다면 다음에 다른 글을 쓸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나의 용기를 키우게 위한 것이 첫 도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답장이 올 줄 몰랐다. 그래서 너무 기쁘고 흥분되어 새벽에 자다가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기쁨과 흥분은 내 책이 출간될 수도 있다는  사실보다 " 아.. 내 글이  출판사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어느 정도 읽을 만 하구나'  하는데서 오는 안도감과 기쁨이 훨씬 컸다. 마치 전문가에게 제대로 된 인정을 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글 쓰는 것이 아직도 나에게 낯설고 전문분야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자라면서 그다지 문학소녀도 아니었고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글을 제대로 배운 적도 더더욱 없다. 다만 미국 대학원을 다니며 4년 내내 숙제 때문에 주야장천 써낸 에세이와 페이퍼의 효과와 마지막 대학원 논문 때문에 배운 논문쓰기 수업이 다였다. 그러니 글을 쓰는 일에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출판사와의 인연들은 나에게 자신감과 확신을 주는 듯했다. "그래.. 이젠 정말 나도 써도 되나 보다" 라며.


어떻게 이 일이 이렇게 까지 되었을까? 한 번도 살면서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어쩌다 원고를 쓰고 투고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가장 강력한 방아쇠가 된 것은 1년 전 남편이 노래를 부르던 세계여행을 미주 캠핑카 여행으로 합의를 보고 나서이다.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외향적인 남편은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고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세계여행 소리에 극 내향형인 나는 늘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늘 나의 꿈과 소원을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던 남편의 꿈을  그냥 모른 척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합의안을 제안했다. " 세계여행은 못할 것 같고 당신이랑  나~~중에 캠핑카 타고 미주 여행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고 남편은 그 제안을 아주 기쁘게 덥석  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에게 책을 쓰라고 강요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뜬금없이 책이라고 했더니 부부관계  혹은 자녀교육 책을 써 놓으면 후에 여행을 다니면서 가게 되는 지역 교회나 한인회를 통해서  세미나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나는 그의 아이디어가 매우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육아서적이나 상담 서적도 넘쳐나고 유튜브만 쳐도 수만 가지 콘텐츠가 쏟아지는데 이름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을 누가 강사로 불러주겠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남편은 일단 무조건 써보기나 하라고 했다. 아무도 안 내주면 자기돈으로 내줄 테니라며.


그러나 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내가 꾸준히 기독교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글들만 잘 정리해도 책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리고 이 기독교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된 이유도 내가 블로그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전혀 하고 싶지 않았던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도 코로나 때문에 계획했던 부부/육아 관련 세미나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읽은 책들과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고자 하는 아주 소박한 꿈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 블로그에 매일매일 글을 성실하게 올린 것이  알아서 차곡차곡  글감으로 저장이 된 셈이다.  


사실 그렇게 차곡차곡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어찌보면 내가 오래전부터 꾸준히 읽어온 책 읽기 때문이다. 대학시절부터 시작된 책 읽기가 사실 어쩌면 글쓰기와 출판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책을 써볼요량이나 작가가 되는 것을 꿈으로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주제를 파고드는 성향 때문에 정말 순전히 지적 호기심으로 인한 취미생활이었다. 그러나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공통점이 보이고 생각과 분별력이 생기고, 그래서 아마도 그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욕구, 글쓰기까지 온 게 된 것 같다. 누군가 많이 읽게 되면 언젠가 쓰게 된다더니 딱 그 말처럼 된 것이다.


그래서 나의 출판 계획의 시작은 순전히 취미로 시작된 책 읽기다.  요즘이야  인문학 바람이 불어서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열풍이 뜨겁지만  1990년대 말 독서는 그야말로 가벼운 취미생활이고 시간 많은 학생이나 하던 쓸데없는 짓에 불과했다. 더더군다나 책은 아무나 낼 수 없는 그런 분야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그러니  그 시간에 토익 공부하고 자격증 공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세대였다. 그래서 독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었다. 어른들에게서 얻을 수 없는 정보와 지혜가 책에 있었고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할 때도 책을 보았고 해결 못할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어도 책을 읽었다.  그 당시엔 너무 답답한 마음에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그리고 때로는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었다.   그 그 책 읽기가 10년이 넘어가고 20년이 넘어가니 이렇게 나를 이끌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당시는 내가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 수많은 책들이  나를 여기 까기 오게 만들어 준 것 같기도 하다.


내 인생에서 전혀 예상하지도 않은 길을 가게 되면서 요즘은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시작은 정말 미약했으나 그 작은 시간들의 합은 전혀 미약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책을 꾸준히 읽지 않았다면.. 그리고 대학원 과정이 너무 힘들다고 중도에 포기했다면.. 매일매일 일 년 넘게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올리는 신문 칼럼 쓰기를 포기했다면 나에게 이런 기회는 없었을 것 같다. 그 작은 일들이 합이 이런 큰 일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앞으로는 더욱더 내게 주어진 작은 일을 소홀히 하지 못할 것 같다. 이 미약한 일이 십 년 이십 년 후에 어떤 큰 일을 만들어 낼지는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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