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t therapist Mar 15. 2022

돈이 좋은 건..

"벌써 나왔어? 나는 아직 거기 있을 줄 알았는데.."

남편과 함께 막내 신발을 사러 갔다가 남편은 우리를 쇼핑몰 앞에 내려주고 차를 주차하러 갔다 오며 한 말이다.


이제 만 8살인 에너지 넘치고 활달한 막내는 늘 밖으로 나가 뛰고 굴리고 달리고등등의 활동적인 놀이를 많이 해 운동화를 1년도 채 신지 못한다. 지난 여름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가을학기 학교로 돌아갈 때 새로 산 운동화가 거의 찢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래서 막내를 데리고 신발가게를 찾았다. 막내는 자신이 원한 브랜드가 있었고 거기서 자신이 원한 신발을 바로 사 주었다. 고가 브랜드는 아니어서 가격이 비싼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격이 세금 포함 60불이 넘었다.


평소 엄마가 아이들의 옷이나 장난감 등에 비싼  돈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막내는 사실 처음에 고르기를 주저주저했다. " 엄마 이거는 거의 60불인데 너무 비싼데.."라고 하는 것이었다. " 그래도 네가 원하면 그거 사. 엄마가 그 정도는 사 줄 수 있어^^"라고 말했더니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자신에 맞는 사이즈를 가지고 나왔다. 이렇게 신발을 고르니 사실 쇼핑이 15분도 안 걸렸다.


사실 십여 년 전만 해도 나는 이렇게 하지 못했다. 그땐 첫째 딸과 세 식구가 한 달 한 달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달 나가는 정기적인 지출 외에 남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식비나 아이 의류나 장난감 등등에서 무조건 아껴서 써야 했다. 정말  운동화를 하나 사려고 하면 아이를 데리고 신발을 파는 모든 가계를 돌아다니며 세일 품목에서만 골랐다. 그러니 당연히 쉽지 않았다. 가격이 맞으면 아이 발에 맞는 사이즈가 없고 사이즈가 맞으면 딸아이가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날은 하루종일 여기저기 발품을 엄청 팔고 다니다가 겨우 고를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돌아다닌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모른다. 이제는 사실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땐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막내딸이 좋아하는 신발을 그냥 꼭 집어 계산하고 나오는데 기분이 좀 묘했다. 젊은 시절엔 난 언제까지 이렇게 싸고 괜찮은 물건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하나 싶은 적이 있었다. 앞으로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새 세월이 흘러 아주 풍족하지는 않아도 그런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젠 그런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딸아이가 자신이 원하던 신발을 사서 행복해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돈은 쓸데없이 발품을 팔러 다닐 시간을 줄여주고 인생에서 분명히 선택을 쉽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사실 쇼핑이 늘 어려운 이유는 늘 돈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출한도내에서 괜찮은 물건을 사려고 하다 보니 고민도 많아지고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한다. 나도 예전에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너무 부담스러웠다. 우리 형편에 쓸 수 있는 돈은 정해져 있는데 챙겨야 할 가족과 지인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하루종일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마음만 복잡해 그냥 돌아온 날도 많았다. 값싼 선물을 고르자니 아예 선물을 안 하는 것이 나을 것 같고, 좀 괜찮은 걸 고르자니 돈이 너무 부담되었다. 그러나  만약 그때 내가 돈이  많다면 이런 고민 따위는  사실 없을 것이다. 그냥 필요하고 원하면 사면되니까.


사실 나는 돈을 버는 것을 삶의 목표나 목적을 두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그 이유는 돈이란 존재는 한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놓치게 하는 요물 같은 놈이기 때문이다. 마치 사탕과 같아서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어 진다. 그러다 아차 싶을 때 돌아보면  썩은 치아밖에 남겨주지 않는 것처럼 돈도 비슷하다. 돈을 벌고 모으기 시작할 땐 신나고 재미있지만 거기에 너무 몰입하게 되면 정작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다 놓치게 만들고 사람을 방탕하게 한다. 그래서 늘 돈에 너무 몰입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편이다.  


하지만  누군가 말한 것처럼 돈은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도와준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휘감거나 으리으리하게 좋은 집과 좋은 차를 타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은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이나 때때마다 필요한 옷과 신발 정도 고민 없이 사줄 수 있는 경제력은 확실히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 경제적 여유를 가진 지금에 감사하는 하루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에 살아서 쫌 억울한 것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