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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성숙을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 포기

by 원정미

상담의 궁극적이 목적은 개인의 정신건강의 회복이다. 그 이유는 마음이 건강해야 사람은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개인의 마음이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성장하려고 하는 원동력과 힘이 생긴다. 상담과 정신치료의 목적은 이렇게 한 개인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담자의 내적 힘이 자랄 때까지 상담자는 때로는 경청자가 되기도 하고 교육자가 되기도 하고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 상담자는 내담자가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나 오해와 착각하고 있는 영역에 대해 새로운 시작을 보여줘야 할 때가 많다. 나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착각과 오해에서 헤매고 있음을 많이 발견했다. 그리고 그 부분을 보여주고 깨닫게 해 주는 일을 하기도 했다. 사람과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서 마음에 대한 많은 오해와 착각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나의 역할인데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이 인생에서 포기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낮은 자존감, 걱정과 근심 그리고 불안과 강박 그리고 여러 인간관계의 문제 중의 시작이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통제하고픈 욕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포기가 안되어 안달복달하거나 전전긍긍하는 경우였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별이 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날씨를 자신의 맘대로 어쩌지 못해 안달내는 것과 같다. 자신이 좀 더 노력하고 애쓰고 열심히 하면 달라지리라 착각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전전긍긍하거나 고민하는데 다 써버려 금방 지치고 넘어지는 것이었다.


성숙한 인생을 위해서 포기하지 않는 끈기도 배워야 하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포기할 것은 깨끗이 포기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것에 대한 분별력과 선택을 키우지 못하면 마음은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욕심이 내려놓지 못한 마음은 번민과 갈등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 이상 같은 음식을 먹지 못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음식을 과도하게 많이 하거나 쟁여놓지 않는다. 어차피 두세 번 이상 안 먹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첫아이를 낳고 정말 한 달 내내 삼시세끼 냉면 그릇에 담아주는 미역국만 먹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보는 자신이 더 지겹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별 불평 없이 매끼마다 미역국을 먹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내가 다른 음식을 먹기를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는 " 지금 내가 이 세상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밥과 미역국밖에 없다"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랬기 때문에 미역국을 매끼 한 달 동안 거의 100그릇에 가까운 미역국을 먹을 수 있었다. 만약 그 당시 이 음식을 산후조리 때문에 억지로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구역질이 났을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내 취향이나 비위를 생각해 주지 않고 미역국만 만들어준 친정엄마에게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땐 다른 음식에 대한 나의 욕심이나 욕구를 모두 포기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런 포기와 결단이 마음의 평안과 적응력을 높여줄 때가 훨씬 많다. 포기를 하고 나면 그때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이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장애를 가진 경우도 이제 나는 이전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과거의 나의 평범했던 삶을 포기해야 그때부터 장애인으로 무엇을 새로 배워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 인정과 포기를 얼마나 빨리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재활의지와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한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나 학대를 받고 자란 어른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어떻게든 다시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자녀가 되고 싶은 경우 많다. 그래서 과도하게 효자효녀 노릇을 하거나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부모는 내가 아무리 그렇게 해도 나를 제대로 사랑해주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회복이 일어난다. 한마디로 그런 부모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포기해야 거기서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많은 워킹맘들이 직장일도 완벽히 하고 싶고 살림도 야무지게 하고 싶고 아이도 똑 부러지게 키우고 싶어서 힘든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일에 완벽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그 욕심이 마음을 힘들게 한다. 그 마음을 내려놓으면 정말 해야만 하는 일이 보인다.


많은 아내들이 무심하고 다정하지 못한 남편에게 불만이다. 그래서 남편을 뜯어고치고 싶어서 잔소리를 한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시작은 나의 남편은 예민하거나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렇게 포기가 되면 아내의 기대치는 낮아지고 남편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민하고 다정하진 않아도 무던하고 진중한 것이 장점으로 보이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공부에 관심도 재능도 없는 자녀를 바라보며 한심해하고 안달복달하기보다는 자녀를 통한 대리만족이나 자랑 따위를 포기하면 비로소 아이가 보인다. 비록 공부엔 소질이 없어도 다른 것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 그대로의 아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처럼 포기하고 나면 그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한 방송에서 독일 유학 중에 박사 연구도 잘하고 싶은데 독일로 함께 유학을 간 아내가 이민생활로 인한 우울증으로 힘든 시절을 보낸 한 과학자가 말했다. 그 두 가지 모두 자신의 삶에서 너무 중요한 것이라 놓치고 싶지 않았어 그 당시 마음이 참 힘들었다고 했다. 그때 자신을 지도한 교수가 좋은 남편이 될 것인지 노벨 과학자상을 받고 싶은 연구자가 되고 싶은지 선택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고. 두 가지를 다 가질 수는 없다고. 그때 그분은 좋은 남편을 선택함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과 그래서 포기하는 법도 배웠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이 번민과 후회 혹은 고민으로 가득 찬 것은 때론 모든 것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고 채우고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괴롭다. 인생에서 때론 포기도 배워야 한다. 이쪽 길로 가기로 선택했다면 저쪽 길은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더 나아가 코로나와 같은 상황은 살면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예상하지도 원하지 않은 일은 우리를 늘 따라다닌다. 그럴 때 자신의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분별해서 포기할 것을 빨리 포기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일 때가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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