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일주일의 삶은 일주일에 한 번 남편 직장에 가서 일을 도와주는 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주로 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밥을 하는 가정주부의 역할을 하고, 가끔 선교단체의 요청으로 들어온 상담 요청을 봉사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외에 남는 시간에 RV (Recreational Vehicle) 소위 말하는 캠핑카를 구경하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왜냐하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남편과 미주 캠핑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내가 원하는 캠핑카로 가고 싶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세계여행을 소원이라 부르는 충동적이고 호기심 많은 남편과 극 내향형에 순도 100% 집순이인 나의 합의점이 캠핑카를 타고 하는 미주 여행이다. 사실 이런 합의점이 도달하기 까지도 오랫동안 고심하고 고민했다. 낯선 곳을 싫어하고 한식을 꼭 먹어야 하고 집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나였기 때문에 여러 번 남편의 여행 이야기에 손사래를 쳤었다. "나는 알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별로 없다. 요즘은 TV에서 세계 구석구석 다 보여주는데 왜 길바닥에서 고생을 해야 하냐?" 라며 한동안 극구 반대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나중에 혹시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든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남편의 소원을 거절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것이 내 인생에 한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내린 나의 결론이 캠핑카 여행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날 더러 " 그러면 여행하는 동안 00가 너무 불행해지는 거 아니냐? 남편을 위해 불편한 상황을 다 참아야 하지 않냐?"라고 반문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참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오해하는 것 같다. 그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기에 마음이 힘들고 어렵기도 한 것이다. 참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참는 것은 상대방과 여러 환경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희생하고 참고 있는 것이다. 불편하고 화나는 감정을 억지로 참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과 에너지가 무척 많이 소모되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희생했다는 피해의식도 함께 남게 된다. 그래서 어느 한계점에 오게 되면 더 이상 참아주지 못하게 되고 상대를 향하여 원망과 분노를 쏟아놓게 된다.
사실 많은 가족관계에서 이런 양상 드러난다. 대부분 평생을 자식과 남편을 참아주고 맞춰준 아내들이 수십 년이 지나 폭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대체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 하냐!"며 분노하는 것이 이런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상담을 할 때 억지고 참지 말라고 한다. 사람이 감정적으로 누군가를 참는 데는 언제나 한계가 있고, 그렇게 자신이 양보하고 희생한 대가는 절대로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참아준 상대는 그런 희생과 양보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곤 한다는 말이 " 누가 참으라고 그랬냐? 너만 참았냐? 나도 참았다"라고 나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개인의 마음과 관계에 좋은 결과를 주지 못한다. 참다 참다 자신의 몸에 병이 생기기도 하고 또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바라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기에 후에 원망과 분노만 남아 관계를 더 꼬이게 만든다.
대신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참지 않아도 된다. 받아들이는 수용은 자신이 희생한다는 마음이 없어진다. 내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차피 남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남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선택했다면 여행은 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여행을 가서 불편하고 힘들어질 일을 생각하고 괴로워하는 것보다, 어차피 가야 할 여행 어떻게 하면 나도 최대한 편안하게 즐겁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최대한 내가 원하는 조건의 안락한 캠핑카를 찾아보고 생각하지 않았던 여행의 유익과 즐거움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것이 받아들임이다.
십여 년 전 미술수업 중 페인팅 수업을 들을 때 정말 가르치는 것이 별로인 교수가 있었다. 비싼 사립학교 수업료를 내고 내가 그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함께 수업을 듣던 한국 학생들의 불만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나는 받아들였다. 그렇게 매주 불평불만을 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이 수업에선 배울 게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냥 나 혼자 6시간 그림을 그릴 조용한 시간을 가진다고 마음을 바꿨다. 그렇게 받아들이니 교수가 어떻게 나와도 별로 맘이 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은 그러지 못했다. 매주 수업에 나와서 툴툴거리고 돈이 아깝다는니 뭘 배우는지 모르겠다느니 하는 불만을 학기가 끝나도록 했다. 이런 태도는 사실 개인에게 가장 손해가 크다. 그 6시간 동안 그런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사는 것은 스스로가 제일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외로 사람들은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배우자가 변하지 않는다고 왜 나만 이렇게 참아야 하냐고 외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찌 보면 아직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경우이다.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배우자의 성향이나 행동을 단점으로 보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양보하고 조율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단점이 고쳐질 때까지 자신이 참는다고 생각하니 부부생활이 힘이 들고 고달프다. 하지만 배우자의 고질적인 성향은 고쳐지지 않는다고 인정하고 받아 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럼 이 사람과 내가 어떻게 적절히 조화롭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고 더 이상 감정적으로 참아주느라 애쓰는 나의 에너지를 더 긍정적인 관계 발전에 쓸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받아들임엔 분별이 필요하고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 문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끝까지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서로의 유익을 위해 받아들여야 한다면 한쪽 문을 완전히 닫아야 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닫힌 문은 미련 없이 떠나버리고 열려있는 문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원치 않는 상황이 생길 때가 비일비재하다. 인생은 원하는 데로 갈 때보다 원치 않은 데로 가는 경우가 태반이고 그 모든 상황을 억지로 울며불며 참으며 사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나의 인생 모토도 "어차피 해야 한다면 즐겁게!"이다. 어차피 바꿀 수 없다면 그리고 나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억지로 끌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인생으로 사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다. 그리고 그 주도성의 시작은 나의 현실을 받아들임에서 시작된다. 억지로 참지 말고 주도적으로 받아들이며 선택하는 삶을 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