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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Sep 15. 2021

극복하는 것보다
인정하는 것이 먼저 입니다.

인생의 고난 앞에서

얼마 전 조정석과 도경수 씨 주연 형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스토리는 좀 설득력이 떨어졌지만 배우들의 생활연기와 간간히 나오는 유머 코드로 나름 재미있게 봤습니다. 엄청 감동적이거나 교훈을 주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영화 대사 속에 한 문장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잘 나가던 유도 국가 선수였던 도경수는 시합 도중 사고로 갑자기 실명을 하고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합니다.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셔서 갑자기 시각장애인이 된 경수를 돌봐줄 사람이 사람이 없는 가운데, 국대 코치였던 박신혜가 장애인 선수로 운동을 다시 해볼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20 년이 넘게 살아온 집에서도 자신의 방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자신이 다시 어떻게 운동을 하냐며 거절합니다. 그때 코치는 " 누군가 말하길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갑자기 이렇게 사고로 장애가 되거나 혹은 아이를 낳았는데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은 경우,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갈 준비를 다하고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를 탔지만, 이 비행기가 전혀 준비나 계획에 없던 아프리카나 아마존에 비상 착륙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갈 방법도 경로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 어떤 사람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미국으로 가기만을 바라고 애타게 찾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이 황폐한 아프리카 땅 혹은 아마존에서 살아남을 궁리를 하겠지요. 그 나라의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익히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정이고 받아들임입니다. 그래서 때론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처절하게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치스럽고 부끄럽지만 도움을 받을 것은 받고, 또 노력해야 할 것은 노력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이런 예기치 않는 변화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합니다. 장애를 가지게 되면 그때야 장애인들이 눈에 보이고 그들의 세상이 보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아프거나 장애를 가지게 되면, 그때야 우리 사회엔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들 처음엔 죽을 것 같아도 또 그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가족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절대 웃지도 행복 지지도 못할 것 같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다시 웃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의 행복감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런 인정은 사고로 인한 장애나 불우한 환경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과적 질환이나 마음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독 치료의 첫 번째 시작은 내가 중독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환청과 망상이 보이는 것 또한 내가 바라보고 들리는 것이 실제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스스로 불안한 사람이라는 것, 스트레스에 취약한 존재라는 것, 나의 부모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 나의 자존감이 낮다는 것, 나의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그제야 치료가 시작합니다.


저는 사랑에 굶주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성인이 되고 난 후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내 맘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사소한 일에 서운해지고 나와 다른 상대를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내 맘 같지 않게 불쑥불쑥 나오는 감정들과 행동들에 나 자신이 또한 너무 싫어졌습니다. 사랑은커녕 너무나 이기적이고 소심한 사람이라는 것만 확인할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제 안에 사랑이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받은 자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 싫었지만, 그렇게 내 속은 텅 빈 깡통처럼 따뜻함이라곤 하나도 없는 절 인정하고 나니,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준답시고 한 나의 모든 행위는 어쩌면 남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돌아서면 섭섭하고 돌아서면 화가 난 것입니다.

내 안에 사랑이 없다는 걸 알고 나니, 내가 그전에 억지로 했던 사랑의 행위나 구애를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건 어찌 보면 제대로 된 사랑도 선행도 아녔으니까요. 그 이후로 남에게 사랑을 주려고 하는 행동보다 내 안에 사랑이 쌓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나의 마음을 돌아보려고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내 안에 사랑이 차고 나서야 다른 이에게 사랑을 제대로 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 당면한 과제를 막무가내로 극복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때로는 나의 상황이나 처지를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인정이 철저하게 된 사람이 오히려 가야 할 방향과 방법을 찾기가 쉬운경우를 많이 봅니다.  지금 당면하고 있는 문제, 고난 혹은 어그러진 인간관계, 맘처럼 되지 않는 감정..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은 어쩌면 극복이 먼저가 아니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먼저 일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처절하게 울어야 할 때가 있고 화내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내가 원하는 곳에 정착하지 못했고 그래서 어쩌면 영원히 그곳으로 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그때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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