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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Apr 22. 2022

배움의 기쁨? 고통?

사람은 많은 것을 배우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 정말 응축적으로 집약된 많은 지식을 배우도록 강요받았다. 이런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공부 때문에 배움에 대한 거부감이 먼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배워도 마찬가지이다. 배우는 일은 쉽지 않다. 지끈 지끈 머리에 쥐가 나는 경험을 하고 정말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앉아 있어야 할때가 많았다. 나는 전공을 육아 교육에서 미술로 또 미술에서 상담으로 여러 번 바꾸고 또 미국에 정착함으로 인해 살면서 새로 배워야 할 것이  아주 많았다. 미국에서의 삶은 대부분 배우고 공부하는 삶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작의 설렘은 잠시이고 항상 익숙하고 능숙해 지기까지 무척 힘들었다. 도전하고 배움을 시작한 것을 후회할 만큼.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수준에서 멈추어 발전이 없는 나에 대한 답답함과 짜증 그로 인한 좌절을 오래 경험했다. 영어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남들보다 2-3배 공부해도 나는 절대로 원어민이 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대학원 내내 나를 지배하던 감정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도  딱 하나뿐이었다. 그냥 계속하는 것뿐. 그렇게 하다 보면 내 앞에 막혀있던 보이지 않던 벽이 뚫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완벽하진 않아도 내가 바라던 수준까지 올라가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나는 배움을 시간과 성실함을 싸움이라 믿는다.


요즘 나에게 새롭게 배울 거리가 던져졌다. 바로 글쓰기. 사실 글쓰기가 내 삶의 메인이 되리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사람 인생은 정말 모를 일이다.  2년 전 코로나 때문에 블로그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기독교 신문에 칼럼도 쓰게 되었다. 작년 9월에 브런치로 옮기고 한 출판사의 출간 의뢰가 들어오면서 요즘은 매일이 글쓰기이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글쓰기 강의라도 들어봐야 하나 고민도 했었다. 물론 출판사에서 나에게 바란 것은 수려한 글솜씨가 아닌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쓰는 김에 원고를 잘 만들고 싶어서 지인 찬스(?)를 사용하게 되었다.  바로 나의 오빠.


오빠는 시나리오 작가이다. 이런 말을 하면 혹시나 "역시 글도 잘 쓰는 유전자가 있나 보네요."라는 말을 듣게 될까 봐 낯 부끄러워 쉬쉬하며 살았다. 오빠가 들으면 무척 기분 나빠할 소리이다. 그냥 우리 집엔  각기 다른 예술가적 기질이 충만한 걸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출간 계약을 하고 원고를 출판사에게 보내기 전, 찐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가족들의 성화 아닌 성화에 못 이겨 오빠에게 부탁을 했다. 나는 오빠에게도 보여준다는 것도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정말 몰래 출판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바쁜 와중에도 전문가의 피드백은 확실히 달랐고 좀 충격적이었다. "아.. 내가 이렇식으로 말하고 표현했구나. 이렇게 표현하면 더 와닿겠구나. 이렇게 공감을 끌어내는구나." 싶으면서 마치 발가벗겨진 기분이랄까. 솔직히 그 기분은 썩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로 다시 돌아가 나의 아픈 기억을 세세히 떠올리는 것도 아프고 힘들었다. 그래서 대충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짓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코멘트는 다 맞는 말이었고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래서 다시 원고를 다시 읽고 수정하고 읽고 다시 수정하고를 무한 반복 중이다. 이 과정이 과거에 내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처럼 지겹고 지루하다. 정말 이런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도  다 알고 있는 오빠의 한마디가 다시 배움에 대한 기억을 떠 올렸다.


"너의 배려심과 성실함이 집필이라는, 사람의 진을 빼는 작업을 끝까지 수행하게 해 줄 거야."   


정말 글 쓰는 것뿐만 아니라 배운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사람의 진을 다 빼는 작업이었다. 그림을 배울 때도 "이만하면 됐어!"라는 내 마음소리에 선생들은 늘 "좀 더 자세히 보고,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좀 더 다양한 색깔을 이용해 봐"를 외쳤고 그래서 다시 피사체를 바라보고 다시 수정하고 덧칠하고를 반복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대학원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얼마나 많은 논문들과 책을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까지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조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람의 진을 빼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늘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인 성실함과 꾸준함이 그 모든 과정을 견디게 해 주었다. 아마 누가 보기엔 미련하고  답답해 보일 수 있지만 늘 그 자리에서 될 때까지 하는 것으로 그 모든 배움을 끝내었고 아마 이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될 것 같다.  "그래 처음엔 다른 것도 다 그랬어. 그래도 다 잘 넘겨왔거든. 지금도 그런 과정일 뿐이야." 그렇게 매일 나를 다독이며 글을 쓰고 있다. 이 배움에 끝에도 분명 " 잘 견뎠다. 잘했다"라는 기쁨이 찾아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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