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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May 02. 2022

아이들만 남게 된다면..

미국에서 알고 지낸 친한 동생이 몇 달 전에 하루아침에 심장마비로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다. 동생은 아직 남편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함께 사는 동안에도 장거리 출장이 잦았던 남편 때문에 그녀는 여전히 지금도 남편은 출장 중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이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자마자 유언장을 작성하고 자신의 사망 보험금을 들었다. 자신도 혹시나 남편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면 남게 될 두 아들들이 너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몸으로 실감했고, 그 허망한 죽음 뒤에 유가족에게 남은 수많은 무거운 선택으로 인한 괴로움을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의 자신의 신체까지 기증하는 것으로 모든 장례절차까지 간소화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고작 40대 초반의 그녀인데 죽음을 준비해 논 모습이 너무나 담담하면서 비장했다. 마치 아이들 위해서라면 더한 것도 할 수 있다는 모습으로.


그러나 유언장을 작성할 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아들들이 만 18세가 넘어 어른이 되면 걱정할 일이 없지만 만약 미성년자 일 때 자신이 죽고 나면 아이들의 법적 보호자로 삼을 만한 사람이 없더란다. 시댁 식구는 돈에 환장한 사람들이라 법적 보호자 권한을 주는 것은 고양이 앞에 생선주는 꼴이 될 것 같고 자신의 친정어머니는 영어도 잘 못하시고 이미 나이가 많아 돈 관리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보니 주변에 자신의 아이를  제대로 보호해 주고 키워줄 사람이 너무 없더란다. 이 세상에서 아이들을 가장 사랑해줄 남편이 떠나고 나니 아이를 믿고 맡길 사람이 없는 세상에 오롯이 홀로 책임자가 된 그녀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 말에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그랬다. 나와 남편이 먼저 일찍 떠나게 된다면, 정말 아이를 믿고 맡길 사람이 있을까? 양쪽 집 어른들은 모두 나이가 많으시고 나와 남편의 형제에게 부탁하기엔 아이들이 셋이나 되니 너무 민폐였다.  나는 다행히 큰 아이가 성인이라 아마도 큰딸이 보살피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어린 두 동생을 책임을 지고 살아갈 큰 아이에게 상상만으로도 안쓰럽고 미안해졌다.


사실 나는 뉴스를 통해서 직업적인 이유로 부모 같지 않은 부모들을 너무 보아왔다. 그 아이들에겐 차라리 부모가 없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할 정도의 수준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보호자가 되지 못하고 괴롭히는 부모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보통의 평범한 가정에선 부모는 분명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울타리이다. 그리고 울타리가 아무리 오래되고 낡아도 울타리는 있는 것이 안전하다. 그 존재만으로 사실 보호받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울타리가 있는 집과 없는 집은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어쩌면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방법은 오래도록 그들 곁에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비록 남편은 먼저 떠났지만 그녀가 오래오래 아이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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