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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May 06. 2022

부정적인 게 뭐 어때서?

나는 매사에 부정적인 편이다. 예전엔 부정적이 다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살면서 "너는 너무 부정적이다"라는 말을 꽤 들었다. 무슨 일을 할 때에도 긍정적인 점을 바라보기보다는 가장 나쁜 상황을 항상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남편이 보기엔 김 빠지고 초를 치는 행동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가장 나쁜 시나리오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건 내가 일부러 남편을 김 빠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그건 내가  불안이 매우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래전엔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고 이유 없이 늦는 날이면 가장 든 생각은 어디 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였고 아이들이 어디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아이가 타고 가던 차나 비행기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고, 내가 탄 비행기나 배는 꼭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이 있었다. 사실 이런 불안이 지나쳐서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면 범불안장애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모든 상황에서 거의 최악의 상황을 항상 상상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봐야 마음이 놓였다. 그땐 내가 불안이 높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이런 생각은 나의 불안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 생각에 함몰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해봐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의 마지막은 거의 "죽음 아니면 장애"였다. 나의 죽음, 아이들의 죽음, 남편의 죽음 등등. 그러나 인간에게 죽음만큼이나 무기력한 것이 어디 있을까? 나는 아무리 걱정하고 고민하고 예방한다고 해도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도 막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현재를 충만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죽는 것도, 사랑하는 이들이 죽는 것도 막을 수는 없지만 사는 동안 후회 없이 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그나마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방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월호같이 그렇게 허무하게 아이들이 떠나는 것도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는 없다. 아무리 내가 대신 죽어주고 싶어도 그 때 자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지인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남편을 잃는 것도 내가 막을 도리는 없다. 이런 것들이 두려워 사랑하는 이들을 24시간 내 곁에 묶어 둘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이 내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평소에 알려주고 사는 동안 좋은 추억을 함께 하는 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오히려 현재를 즐겁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부정적이고 불안했기 때문에 늘 예방하는 방법을 찾았다. 모든 상황에서 100% 의 완벽한 예방책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음의 준비를 하는 편이다. 가장 나쁜 최악의 시다리오를 대비할 마음의 준비가 되면  최악이 아닌 상황은 오히려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미국에 유학을 올 때도 최악의 고생을 예상했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 허름한 방에 혼자 일하고 학교 다닐 각오를 하고 왔다. 그래서 초기 유학생활은 생각보다 덜 힘들었다. 나에게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지심리치료 중에도 최악의 시나리오 쓰기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우울하고 불안해 하지만 정작 알고 보면 본인에게 일어난 최악의 상황은 아닐 때가 많다. 따라서 생각보다 지금 현재 상황은 어쩌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치료이다. 


나는 도전이나 새로운 일을 매우 주저하는 편이다. 대학원을 갈 때도 블로그를 시작할 때도 남편이 여행을 떠나자고 할 때도 늘 혼자 고민이 많았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일 년 정도를 혼자 곱씹어 보는 편이다.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먼저 생각하는 성향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해야 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생기는 것까지 마음을 먹는 편이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가 되면 오히려 두려움 없이 시작한다.  그리고 사실 그런 최악의 상황들은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묵묵히 할 수 있는 편이었다. 더 나아가 최악의 일이 일어나지 않으것에 감사하는 마음도 더불어 커졌다. 그러니 오히려 다른 이들이 보이겐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는 것은 정신건강에 너무 중요하다. 그러나 무턱대고 아무 생각 없이 긍정적인 것은 사실 매우 위험하다. 너무 큰 기대는 늘 큰 실망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오래 쌓이면 무기력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두움 가운데서 작은 밝은 빛을 찾을 때가 훨씬 기쁘고 감사할 때가 많았다.  


나는 부정적이었기에 마음의 준비를 늘 하며 살았다. 그래서 더 많이 연습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았다는 것은 감사를 불러일으킬 때가 훨씬 많았다. 나아가 언젠가 최악이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마음은 오히려 현재를 매우 충만하게 살게 했다.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늘 고민하고 바로바로 실천하는 편이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눈에는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는 내 삶은 나의 부정적인 성향이 만들어 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정적인 면에도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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