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좋은 사람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진 않아
인간은 매우 주관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개인의 가치 판단 기준은 자신의 경험에 의한 것일 때가 많다. 그리고 특별히 인간관계에서 그렇게 주관적으로 쌓인 경험을 스스로 객관적이라 착각한다. 그래서 " 저 사람은 너무 괜찮은 사람이야! 혹은 저 인간은 상종을 말아야 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이중적이며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래서 살다가 맞닥뜨리는 말도 안 되는 상대의 모습에 혼란스럽고 당황해한다. 얼마 전 계곡 살인사건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범인 이은해 씨도 마찬가지이다. 보험금을 노리기 위해 결혼을 몇 번씩 해가며 남편들에게 악랄한 짓을 벌인 희대의 악녀이지만 아버지에겐 세상없는 효녀이고 동네 사람들에게 착한 아이였다고 했다. 이 간극을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녀가 그냥 무조건 나쁜 사람이기에 그런 것일까?
물론 이은해 같은 경우는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겐 한없이 친절할 수 있어도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나에게 사랑과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많은 고부 관계 혹은 장서갈등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 우리 엄마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혹은 우리 딸 우리 아들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착각과 오해가 관계를 더 꼬이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나를 지극히 아끼는 부모가 나의 여자 친구 혹은 배우자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어 줄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한 20여 년 전 청년시절 카이스트 박사를 졸업하고 실리콘 밸리의 한 IT기업에 CEO로 스카우트가 된 지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엄마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자신에게 너무나 헌신적이었고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 주시던 사랑 많고 신실한 믿음을 가진 어머니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내 귀한 아들을 너 같은 여자에게 보낼 수 없다며 길길히 날뛰셨던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의 집 귀한 딸을 매몰차게 하대하고 꽃뱀 취급하는 엄마의 모습에 그 지인은 한동안 충격에 빠졌었고 당연히 그의 결혼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 지인은 자신에게 늘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시던 어머니가 모든 사람에게 그럴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방송에서도 시댁에서 받은 수모와 차별을 전 남편에게 쏟아내는 내용이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전 남편은 극구 " 그렇게 말하지 마라. 우리 엄마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부인했다. 그 모습에 아내는 더 억울해했고 상처를 받는 듯했다. 남편은 자신에게 좋은 엄마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다정하고 좋은 엄마가 좋은 시어머니는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만 해도 부부관계가 그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좀 안타까웠다.
따라서 나에게 좋은 사람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은 반대로 나에게 나쁜 사람이 모두에게 나쁜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 나에겐 너무 별로인 남편이지만 자녀들에겐 너무 좋은 아빠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가정에선 무뚝뚝한 자녀가 밖에선 다정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관계에서 오는 관계의 질을 자신의 경험으로 함부로 판단해서 결정짓거나 결론 내리지 않아도 관계는 좀 더 유연해진다. 공식석상에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고 나와의 관계에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자신도 타인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인격이 성숙한 사람일수록 모든 관계에서 보편적으로 일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절대로 완벽할 수는 없다. 그렇게 모두가 아직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성장이 있다.
나에게 남편은 너무 좋은 사람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고 나를 가장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모든 사람에게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당신을 남편으로만 만나고 싶다"라고. "당신을 직장상사나 손님 등 다른 관계로는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꼼꼼하고 완벽주의에 손해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이기에 다른 관계에선 깐깐하고 까다롭기가 그지없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만 포용력이 넓은 사람이다. 그런 그의 성격은 어떤 면에선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선 큰 약점이 된다. 나도 마찬 가지이다. 나에게도 좋은 면도 있지만 분명 연약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좋은 쪽을 많이 본 사람들에겐 매우 좋은 사람이겠지만 나의 약점을 많이 본 사람들에겐 나는 별로인 사람이다. 나에게도 그런 이중적이고 불완전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아님을 인정해야 하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 또한 모두에게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걸 받아 들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 아주 불완전한, 그야말로 미생의 과정을 거쳐가고 있는 중이라 인정하고 그래서 인간관계는 흑백으로 절대로 단순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것만 알아도 유연성이 생긴다. 이 유연성이 있어야 관계가 좀 편해지고 쉬워진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