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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마주할 용기가 필요해

by 원정미

은유작가의 책 "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에 보면 예술의 최악은 부정직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문학은 저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대한 정직한 표현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까지 말한다. 아마 정직하지 못한 글, 겉핡기식의 글은 독자의 내면 깊숙이 닿기 어렵기 때문이라 이렇게 표현한 듯하다. 문학의 가장 큰 이유와 의미는 아마도 스스로 표현하지 못했던 내면의 감정 와 생각을 " 그래! 맞아.. 나도 이런 느낌이었어. 나도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문학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말하지 못했던 억눌린 감정과 생각을 대신 표출해 주고 그로 인한 심적 해방 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이유로 문학과 글쓰기가 사실 치유의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이런 이유로 솔직하지 못한 글은 감동도 공감도 불러일으키기 힘들다.


문학처럼 내면의 정직함을 표현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숨기고 싶었고 감추고 싶었던,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었던 나의 치부를 대중에게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솔직함은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 아니 다른 이의 판단이나 비난보다는 나답게 솔직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훨씬 커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어떤 면에서 타인의 비판이나 판단을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야 하고 때론 타인의 기준이나 인정을 버릴 용기도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참으로 어렵다.


"과거에 연연하지 마라. 잊어버려라. 나는 다 잊었다."며 자신의 아픈 과거나 상처를 없던 일처럼 무덤덤하게 혹은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보기엔 멘털이 강하고 단단한 듯이 보이지만 어떤 면에선 자신의 아픔을 제대로 직면하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회피적 방어기제일 뿐 절대로 마음이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아픔, 상처 혹은 실수를 충분히 숙고해서 감정적으로 풀어야 할 것은 풀어내고 고쳐야 할 것은 바로잡아가며 사는 사람이다. 비슷한 상황이 오더라도 감당하고 감내하며 살아갈 수 있다. 때문에 치유는 성장을 일으킨다. 그러나 회피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도록 도망가기에만 바쁘다.


이런 이유로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끄집어 내는일,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했던 연약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일, 사랑받고 싶었던 부모는 그다지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 그런 부모에게라도 사랑받고 싶어서 애썼던 어린 나를 마주하는 일,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증오했던 모든 일들을 끄집어내는 일은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고선 시작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담치료의 시작도 내담자가 그 용기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두려운 트라우마 기억가운데 함께 동행해 주고 아픈 상처를 함께 들여봐 주고, 무기력하고 연약했던 내면의 어린아이를 지지하고 격려해서 스스로 일어나게 함으로 스스로 다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치유는 내담자 본인이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직면해야 가능하다. 이 용기가 없다면 직면이 일어나지 않고 당연히 치유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용기는 혼자서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의 아픈 과거와 상처를 직면하기 두려운 사람들의 대부분은 나답게 살아도 괜찮다 혹은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옳은 것이었다는 존재적 인정의 경험이 없는 전무하다. 따라서 스스로 대한 확신이 없기에 직면도 어려운 것이다. 치료자의 가장 큰 역할은 내담자가 그런 자기 신뢰와 확신을 가지도록 꾸준히 지지하고 격려해야 할 때가 많다.


용기를 가지기 위해서 스스로 대한 신뢰를 쌓여야 한다. 좋은 책과 강연을 듣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삶에서 자신이 세운 작은 목표를 성취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경험이 많아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 나는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이다. 열심히 살아왔다'라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그때 자신의 트라우마나 상처를 직면할 용기가 생긴다.


치유와 회복은 어쩌면 자기답게 살지 못하던 사람을 자기답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포장하지도 부정하지도 또 혐오하지도 않고 사는 것이다. 이 과정은 때로는 자신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겹겹이 감추어왔던 너무나 연약하고 불완전한 내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이 과정은 절대로 쉽게 끝나지 않는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아프고 힘든 과정이다. 이 힘든 과정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보겠다는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만이 가는 길이다. 이런 이유로 심리치료를 받아도 누군가는 회복되고 누군가를 그렇지 못한다.


치유와 회복은 이처럼 용기 있는 자들의 결과물이기에 매우 특별한 것이다. 때문에 상처로부터 회복된 사람들은 상처받지 않은 사람들 보다 훨씬 성숙해지고 내면이 단단해지는 것이다. 회복과 치유에 대한 갈망 전에 내가 그만큼 준비되어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큰 수술을 시작하기 전에 체력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회복함으로 용기를 가져야 치유의 과정을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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