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art therapist Jun 23. 2022

지나친 사랑과 보호가 때론 자녀의 날개를 꺾는다.

인생을 살다 보면 무수한 갈등과 문제 상황을 만난다. 나의 문제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문제 자녀의 문제들도 만나게 된다. 내가 힘들고 어려운 것도 괴롭지만 가까운 사람이 힘들어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힘들긴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때론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 가운데 처해있는 경우도 있다. 특별히 자녀의 아픔이나 고민을 바라보면 부모는 더 괴롭다. 그래서 어떤 부모는 자녀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에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며 고생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부모는 어차피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다며 모른척하고 회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둘 다 그리 건강한 방법은 되지 않는다.


아주 어린 영유아의 자녀가 아니라면 모든 아이의 문제를 부모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 사실 아이들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감으로 자기 신뢰를 키우고 인내심과 조절력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의 문제를 해결사처럼 다 해결해 주는 부모는 이런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경우 아이들은 오히려 아주 조급하고 통제 욕구가 심하고 욕심이 과한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자라나게 되거나 부모가 없으면 무기력하고 불안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아이가 겪는 문제를 모른척하고 내버려 두는 것도 옳지는 않다. 부모는 자녀가 어떠한 어려움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도록 때로는 가이드를 해주고  조언을 해 줄 필요는 있다. 하지만 가이드와 조언은 아이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좁은 소견으로 보지 못하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훈련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 스스로 세상에 대한 맵 집이 생기도록 키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조언을 하기 전에 반드시 아이들에게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녀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한 후 부모가 관여해야 할 중차대한 일인지 아니면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배워야 할 일이진 구분하는 것이 먼저다. 부모가 반드시 관여해야 하는 일은 자녀와 타인의 안전에 관한 문제와 누군가의 재산이나 재물을 파손한 행위 같은 도덕과 법에 관련된 문제는 부모가 나서야 한다. 아이가 다칠 위험이 있거나 누군가에게 어떤 식의 위해를 가하는 행동은 반드시 부모가 간섭하고 제제하고 훈육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자녀와 합의를 하거나 달래줄 필요는 없다. 아이들이 예방접종을 맞고, 카시트에 앉아야 하고, 자전거를 탈 때 안전모를 쓰고  친구들의 물건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등등은 자녀와 합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가 떼쓰고 울고 난리를 치더라도 아이들이 듣고 따르게 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이런 일에 자녀를 방치하거나 자녀에게 휘둘리는 부모는 앞으로 자녀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민주적인 시민으로 자라는데 큰 구멍을 만든다.

 

그러나 아이들의 모든 문제가 부모의 문제는 아니다. 영유아의 아이가 아니라면 아이가 숙제를 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친구관계를 힘들어하거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안달복달하는 것 등의 주도권은 아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스스로 실컷 고민하고 아파해 봐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을 키운다. 어떤 부모들 중엔 자녀에게 슬퍼할 시간, 고민할 시간, 인내하는 시간을 주지 부모들이 많다. 힘들어하는 자녀를 부모가 오히려 못 견디거나  답이 뻔히 보이는 일에 고민하는 아이가 답답하다. 그래서 답을 빨리 제시해 주는 것이 아이들이 시간과 에너지를 줄여준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자녀 앞에 놓은 모든 장애물을 치워주기에 바쁘다. 그러나 이런 아이의 인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조작된 인생과 비슷하다. 마치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처럼. 부모가 평생 그렇게 자녀의 장애물을 치워주지 않을 바에는 스스로 장애물을 넘어가는 법, 극복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건강하고 바른 양육이다.


부모의 이런 과도한 보호 아래 자란 아이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 앞에 놓인 작은 장애물에 쉽게 좌절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자신을 스스로 믿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실패하고 넘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힘든 부모의 과잉보호, 과잉간섭, 해결사 노릇은 자녀의 내면의 힘을 키우지 못하게 되고 자신에 대한 내적 힘이 없는 아이는 아무리 재능과 능력이 많아도 다 펼치지 못한다.  아이가 생각하는 힘,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 스스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힘을 빼앗아버리는 것은 자녀의 인격적인 성장과 성숙을 오히려 방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아기를 지난 자녀의 부모는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  "네가 000 때문에 너무 힘들구나. 속상하구나. 너는 지금 어떡하고 싶어? 그리고 엄마/아빠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니? ooo과 같은 방법도 있는 것 같아" 등의 조언과 함께  자녀의 선택을 기다려만 줘도 충분하다. 그렇게 자녀가 생각하게 하고 주도적으로 선택하게 하며 스스로 책임지는 연습을 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갈등과 어려움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훈련이 된 아이들이 스스로 미래를 주도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얼마 전 어떤 글에서 대학교까지 부모가 시키는 데로만 하고 살면서 아주 평탄한 삶을 살았던 한 대학생은 갑자기 대학을 입학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너무나 많은 자유와 선택 앞에 두려움을 넘어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공부하는 것 말고 스스로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대학생은 자신을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안전하고 평탄하게 키워준 부모에게  100% 고마워할지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큰 성인을 신체만 컸다고 어른으로 부를 수 있을까 싶었다.  


자녀들이 실패 없이 고통 없이 늘 평탄하고 안전한 길만을 가기만을 바라는 부모는 매우 위험한 부모이다. 그것은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를 무균실에서만 살게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먹이를 구해보고 허탕을 쳐서 굶어보기도 하고 맹수의 공격에 도망 다녀보기도 한 새가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스스로 배운 경험으로 자신만의 비행을 배운 새가 자신의 잠재력을 더 발전시킬 수 있으며 부모를 떠나 독립적으로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사랑의 가장 큰 속성은 성장이다. 부모 마음이 편하자고 자녀의 성장을 막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한다. 자녀의 방황과 갈등 그리고 그들의 시행착오를 힘들지만  묵묵히 기다려주고 자녀를 믿어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자신만의 실패와 성공, 그리고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는 경험이 많아야 자녀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보호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날개를 꺾는 부모는 되지 않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부모는 안전한 부모입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