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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Jun 25. 2022

최고의 며느리가 되다니..

시부모님은 늘 매년  맞이하는 나의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신다. 20년 가까이 되면 그냥 지나칠 만도 한데 그런 적이 별로 없으시다. 얼마 전 맞은 내 생일에도 시아버지와 어머님은 용돈을 넣은 금일봉을 내게 주시며 봉투 앞에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최고의 며느리라는 말을 정성스럽게 써주셨다. 평소에 말수도 없으시고 무뚝뚝한 아버님의 표현이라 더 감동으로 다가왔다.


최고의 며느리라니... 그 말에 너무 감사하면서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결혼한 지 20년째이지만 나는 한 번도 나를 좋은 며느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집에 와서 점심식사를 대접한다는 이유로  평소에 살뜰히 시부모님을 챙기거나 매일 전화로 안부를 여쭙거나 하지 않는다. 더욱이 특별한 날이 아니면 매달 용돈을 챙겨드리거나 때마다 좋은 옷이며 보양식이며 하는 것도 하지 않는다. 사실 효심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어르신들의 입장에서 나는 오히려 무심하고 효심이 없는 며느리에 가깝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나는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께 좋은 며느리 착한 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애초에  포기하고 살았다. 그래서 소위 애쓰며 잘 보이려고 하거나 부모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지나치게 하는 노력하는 것은 하지 않았다. 그냥 내 능력 안에서 내 마음이 편한 수준의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그런 내가 왜 최고의 며느리가 되었을까? 그건 나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시아버님의 기대가 매우 낮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다. 그리고 그렇게 시부모님의 기대가 낮아진 것은 어쩌면 시대의 변화로 인한 것이 더 많다. 주변의 나이가 마흔이 넘도록 부모 곁에서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받는 지인들이 있고 또 결혼을 한 자녀들이 그들의 부부 문제로 자녀문제로 갈등과 고통 가운데 있는 친지와 친구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나이 든 자녀가 소위 말하는 노총각, 노처녀에 아니면 돌싱에 손자 육아까지 떠안고 사는 지인들의 사정을 보시면서 우리 부부의 삶이 그저 고맙기만 하시듯 하다.  그냥 당신의 아들과 별 탈 없이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아이들 키우면서 살고 있는 그 모든 공을 나에게 돌리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뭘 무척 잘해서라기 보단 어쩌면  나는 그냥 시대를 잘 만났것뿐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최고의 며느리라는 타이틀에 나의 공을 조금 돌리자면 극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외부활동이 별로 없는 나는,  사람을 만나러 외출을 자주 하지도 않으니 돈을 쓸 일도 없다. 남편에게 좋은 차, 집, 좋은 옷, 명품 타령도 하지 않고 교회 가고 봉사하고 직장을 가는 것 외에 평일 저녁과 주말엔 가족들과 늘 함께  있으며 맛있는 것 만들어 먹는 것이 전부인 내 모습이 당신 아들 힘들게 하지 않는 것 같아 이쁘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그렇게 되기 위해 절약하고 애쓰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내 천성이 별로 유행에 관심 없고 욕심이 없는 탓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며느리라는 칭찬을  받고 싶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좋은 엄마, 아내로 살기 위해선 무척 애쓰고 살았다. 그렇게 내가 바라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매일 고민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았다. 그 선택에 좋은 며느리는 없었음에도 나답게 살다 보니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아버님께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마치 내가 잘살고 있음을 격려해주시는 듯했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져도 자식들이 자신을 봉양해 주고 책임져 주길 바라는 부모들도 아직 꽤 많다. 자식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 보다는 자신에게 소홀한 자식에게 섭섭해하고 당신의 자존심을  자녀의 존재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부모님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주변에 그런 시댁과 친정들 때문에 맘고생하는 지인들을 여전히 많이 목격한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모들 주변에 사는 것은 정말 고통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보다 내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바깥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잘하기보단 늘 내 곁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잘하려고 노력한다. 아마 그 혜택을 남편과 아이들이 가장 많이 누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아버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 그 어떤 효부상보다 의미 있고 감사했다. 그런 아버님을 보면서 나도 후에 아버님 같은 시어머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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