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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Aug 02. 2022

넷째를 키우기로 결정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강아지와 함께 자라왔다. 정확하진 않지만 집에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늘 불안하고 우울했던 우리 집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스스로 먼지 같다고 느꼈던 존재였던 나를 따르고 반겨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미국에 오기 전 13년 동안 키우던  강아지와 작별하던 것이 참 슬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개가 죽고 나서 당시  매우 서럽게 울었던 것도 여전히 생각난다. 나에겐 강아지는 동물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미국에 와서도 개를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홀로 육아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강아지까지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내가 강아지 똥오줌도 치우고 목욕도 시켜주곤 했지만 주 책임자가 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강아지는 훈련을  잘 시켜야 사람과 함께 살아도 편안한 관계가 된다. 하지만 배변훈련이나 다른 사회성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위로와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로 전락할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귀여운 새끼 때 샀다가 성견이 되고 훈련이 안되면 유기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강아지와 함께 사는 것은 마치 2-3 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아이와 평생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만 2-3살의 아이는 말귀는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으나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없는 단계이다. 그리고 이 나이 때가 아이들의 사회성 , 조절 능력 충동성 등을 다스려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때 잘 배우지 못하면  떼쟁이나 고집쟁이 혹은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거기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은 책임질 일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성견이 되기 전까지 훈련을 시켜야 할 것도 많고 그 외에 접종, 목욕시키기, 털 관리하기 등등 반려견과 함께  사는 것은 손이 무척 많이 가는 일임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기쁨과 큰 위로가  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알고 있기에 세 아이들이 강아지를 키우자는 간청 어린 간구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간혹 어떤 가정에선 아이들의 성화에 강아지를 데려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책임지기엔 반려견을 키우는  일은 절대로 녹록지 않다. 대부분 아이들은 반려견을 마냥 이뻐하고 안아주고 놀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반려견과 함께 행복하게 살려면  훈련이 잘되어 있어야 하고 훈련을 시키려면 아주 오랫동안 일관적인 태도로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강아지가 원치 않는 교육도 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일들은 어린아이들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따라서 누가 한 사람의 책임으로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족이  함께 강아지를 잘 키우고 책임지겠다는 약속이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에 어른이 먼저 책임지고 새 식구를 기쁨 마음으로 맞이할 필요가 있다.


오래전 큰애가 4-5살쯤 크고 나서 남편은 하얀색 푸들 믹스견을 누군가에게 얻어왔다. 그렇게 딸과 함께 네 식구가 옹기종기 살 줄 알았는데 둘째를 낳고  또다시 셋째를 임신하고선 개를 키우고 싶어 하던 지인에게 입양을 보냈다. 도무지 혼자서 어린아이 3명과 개를 돌보고 대학원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산책도 못 나가고 하루 종일  집에만 갇혀있는 애가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다. 순하고 착한  그 아이를 남의 집에 보내 놓고 그렇게 한 8-9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막내까지 어느 정도 크고 나자 아이들의 강아지 타령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지만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남의 집으로 입양을 보낸 그 아이 때문에  새 강아지를 데려  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입양 간 아이가 작년에 평안히 무지개다리를 건너가고 가족들과 오랫동안 상의하고 합의한 끝에  지난주에  우리 집 막내가 될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아이들에게 도와달라는 부탁은 했지만 나는 내가 전적으로  강아지를 돌보겠다는 마음으로 데리고 왔다. 배변훈련도, 접종도, 목욕시키고 그루밍하는 것도 다 내가 하기로 마음을 먹고 데리고 왔다.


그리고 예상한 데로 어린 강아지를 키우는 건 쉽지 않았다.  매일 1-2시간마다 배변훈련을 하느라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잠깐 한눈 파는 사이 전화기 충전기를 물어뜯어 고 신발 위에다 똥을 싸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틀 만에 나를 반기며 꼬리를 흔들고  모든 가족들이 다 모여있게 만드는 그의 치명적인 귀여움에  그런 실수는 모두 용납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강아지와 함께 있을 때 느꼈던 그 안정감과 따뜻함을 다시 느끼게  해주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이 천방지축 막내를 무척 무척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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