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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Sep 27. 2022

(케테 콜비츠)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엄마가 되고 부모가 되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예전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던 유모차, 아기 옷, 아기용품들에 저절로 관심이 간다. 그리고 엄마가 되고 나면 이 세상이 생각보다 얼마나 안전하지 않은지도 알게 된다. 집안 곳곳에 있는 뾰족한 모서리, 칼, 가위, 도자기로 만든 장식품, 전기 콘센트.. 밖에 나가면 더더욱 예전엔 보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위험천만한 것들만 보인다. 그렇게 엄마의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서 엄마들은 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미술사에도 모성을 주제로 사회개혁에 애쓴 예술가가 있다. 바로 독일판 화가 케테 콜비츠( 1867-1945)이다. 중산층의 안정된 계급의 딸로 태어났지만 사회개혁을 앞장섰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불우한 이웃들과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보고 자랐다. 거기다 그 당시 독일이 세계를 상대로 한창 미치광이 짓을 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그녀의 아들도 손자들도 전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전쟁 중인 자신의 나라에서 평생 빈민가의 의사였던 남편과 함께 서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직접 보고 느끼며 살았다.  그런 가슴 아픈 개인사와 민족역사가 그녀의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제목: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전쟁 연작_ 5 과부Ⅱ, 목판, 30.0x 53.0㎝,1922-23,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 소장

그녀의 삽화와 판화엔 모성이 참 많이 나온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은 아름답지 않다. 전쟁 중 모성은 죽음 앞에 무기력한 엄마의 모습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은 그 당시의 그들이 느낀 슬픔과 공포,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그녀가 엄마로서, 자식을 잃은 부모로서, 이웃들의 마음을 오롯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림이라는 재능을 이렇게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그 당시 독일에서 전쟁반대운동과 병들고 굶어 죽는 서민들과 아이들을 위한 민중화가가 되었다.


" 그들의 커다란 눈망울이 나의 어깨 위에 짊어진 짐임을 깨달았다. "
“미술이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는 것은한 위선이다.”
“나는 혁명가가 아니다. 나는 예술가로서 느끼고 표현할 뿐이다.”


판화작업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아니 세상을 바꾸고 싶다기보다는 아마 이렇게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그녀는 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자신의 슬픔 또한 감당하기 힘들 만큼 버거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시절 그림은 그녀를 버티게 해 준 힘이 되었으리라 나는 짐작한다. 자신의 슬픔, 두려움, 공포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드러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 불행이나 국가적 불행에 좌초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오히려 자신의 불행을 이웃을 공감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로 삼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감당하시며 엄마로서, 지성인으로서의 삶을 꿋꿋이 살아내었다. 자신의 고통을 피하거나 부정하고 세상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승화 발전시킨 것이다. 너무나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행보이지 않나 싶다.


이분은 그 당시엔 그리 유명한 예술가는 되지 못했다. 아마도 온 나라가 전쟁통인 가운데 판화나 삽화, 조각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면서 그녀가 그 난리통에도 반전운동을 위해, 사회를 위해, 인권을 위해, 그림으로 애쓴 흔적들이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또 전쟁의 참상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녀의 그림들이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자 예술적 표현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세계적인 민중예술화가, 판화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녀의 삶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너무나 아프고 불행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불행에 무너지지 않았다. 자신의 불행을 발판으로 또 다른 불행을 막고자 무척 노력했다. 그녀 또한 엄마였기에 그렇게 전쟁을 막고자 하셨고 아이들을 구하고자 하셨던 것 같다. 그런 그녀의 용기와 헌신이 많은 후대들이 또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지금 전쟁 중인 나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적군이든 아군이든 평범한 시민들에겐 모두 불행이다. 얼마 전 핀란드로 선교여행을 다녀온 지인은 핀란드에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촌엔 매일 아침 남편과 아들들의 사망자 명단이 뜬다고 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부모, 아내와  아이들은 다른 나라로 피신을 보내고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애타는 마음으로 남편과 아들의 생사와 자신의 어린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을 엄마와 아이들의 마음은 100년 전 그녀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이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이 지구 어딘가에서 이렇게 절망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기도가 절로 나온다. 왜냐하면 전쟁은 끝나도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이 전쟁의 공포와 트라우마는 아마도 또 다른 100년이 흘러야 아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이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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