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를 출간하고 서평단과 독자들의 리뷰에 나도 많은 위로를 받았었다. " 읽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내 이야기인줄 알았다" " 줄을 그으면서 읽고 있다" 등등의 이야기에 부족하지만 그래도 글쓰기 잘했다는 마음을 했었다.
많은 리뷰들 중에 어린시절 상처로 힘들고 아팠는데 나중에 커서도 뼈를 깍는 노력을 해야 대물림을 막을 수 있는 거라면 너무 억울한것 같다는 리뷰도 종종 있었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너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자주 들었다. 나는 피해자 인데 왜 이렇게 또 고통스럽게 뼈를 깍는 노력을 하며 육아를 하고 가정을 지켜야하는지 억울할 때가 너무 많았다.
내가 다친 것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다친 부분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사건과 사고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해서 내 삶을 책임지지 않는 것은 나와 주변을 더 괴롭게 만드는 꼴이 된다. 상처난 곳이 아파서 건들이지도 않고 가만히 두는 것이 때로는 상처를 헤집어 치료하는 것보다 덜 아플수 있다. 하지만 치료하지 않은 상처는 절대로 제대로 아물지 않으며 그로 인해 내 삶의 반경은 매우 좁아지고 주변에게 피해가 되기도 하며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 때문에 나는 억울하고 분했지만 내 상처를 치유하기로 선택했다.
나의 상처로 인해 아이들에게 똑같은 정서적 결핍을 대물림하고 또 후에 그것으로 인해 목숨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우리 아이들이 나와 비슷한 고통을 받고 괴로워하는 것을 본다면 나의 결핍을 방치한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땐 부모님이 아니라 나에게 분노할 것 같았다. 이 이유가 그 아프고 괴로운 회복의 시간을 견디게한 힘이 되었다.
어린시절 나의 불안했던 기질, 그것을 전혀 몰랐던 부모님, 불안하고 차별적인 가정분위기, 나에게 애정을 보여주지도 나를 수용해주지도 않던 부모님의 양육태도는 나에게 사람을 믿지못하는 병을 안겨주었다. 그것이 어른이 되고 나서 나를 신뢰하고 또 타인을 신뢰하는데 얼마나 큰 장애물이 되었는지 모른다. 사랑만해도 아까운 아이와 배우자를 의심과 불신의 눈빛으로 바라볼때마다 나는 죽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도 세월이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그 불신의 병은 완벽히 치유되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의 나보다는 훨씬 건강하고 나은 사람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 때 흘린 나의 눈물은 아마도 몇 항아리를 채우로 남을 것이다. 때문에 나도 무척 억울했고 힘들었다. 하지만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족들을 제대로 사랑하는 길이기에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묶이지 않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허락해 주었고 나를 둘러싼 사랑하는 이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아가 그 과정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치유의 과정의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