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t therapist Mar 20. 2023

아직 워스트 (Worst)는 오직 않았다.

엎친데 덮친다는 말을 이럴 때 쓰던가.


남편의 쇄골은 아직 붙지 않았다. 한쪽 팔을 못 움직이는 사람과 사는 것이 이제는 조금은 적응이 된 듯했다.

그런데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 감기줄 알았는데 일 년 전 오미크론 증상과 너무 비슷했고 아니다 다를까 코로나였다.  목도 아프고 근육통이 심하고 기침도 나왔지만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해야 했다. 남편이  도와줄 수 없었고 아이들을 케어해야 했다.


이것만으로도 사실 힘들었다. 그러나 뚜둥, 강력한 한방이 더 있었다. 전기가 끊어졌다. 콘크리트도 아닌 고작 나무로 지어진 우리 집이 (미국은 큰 건물을 재외하고 다 나무로 짓는다.) 날아가는 줄 알았다. 살면서 그렇게 심한 강풍은 처음 봤다. 아.. 영화에서 보던 토네이도가 가능도 하겠구나 싶었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밖에 세워둔 쓰레기통이 날아다니고 또 나무가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이틀 동안 근처 동네 전기들이 모두 끊어졌다. 또 신호등이 나가고 온 동네가 깜깜해졌다. 일처리가 느린 미국은 전기가 다시 복구되는 데 까지 이틀이 넘게 걸렸다.


전기밥솥도 토스터기도 식기세척기도 쓸 수가 없었다.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았다. 히터도 안된다. 다른 사람들은 코로나에 걸리면 남이 주는 밥 먹고 홀로 격리되어 스마트 폰이나 TV 보면서 쉰다던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몸은 아픈데 마스크를 끼고 손전등을 켜놓고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 이 상황이 너무 짜증이 났지만 화를 낼 대상이 없었다. 남편이 다친 것도, 내가 코로나에 걸린 것도, 전기가 나간 것도 누가 날 괴롭히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니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속상하고 힘들었지만 속으로 또  "아직 최악의 상황(worst case)은 아니야!"라고 말을 걸었다.


내가 속상하고 힘들 때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중 하나이다.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어. 이 정도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야!라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 마치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해서 마음을 더 힘들게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말 이게 최악인가? 내가 겪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인가? 더 나빠질 상황은 없는가? 나의 최대 두려움은 무엇인가?"라고 생각을 하다 보면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을 생각나게 하고 그래서 오히려 감사하게 된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은 달라진다.


이 워스트 케이스 시나리오(최악의 상황 쓰기)를 쓰는 것은 사실 인지심리치료에서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사람의 생각, 감정, 행동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감정이 행동을 일으키고 생각이 감정을 만들기도 하고 또 행동이 감정을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은 어떤 상황에서 나타나는 즉각적인 반응이라 바꾸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행동은 나의 선택과 의지로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생각과 행동을 바꿈으로 감정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가짜로 웃는 연습(행동)을 하기만 해도 사람은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뇌는 가짜웃음과 진짜웃음을 구분하지 못한다.  밖에 나가서 햇빛을 쬐고 산책하는 것으로 기분과 생각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생각을 달리하면 기분은 전환된다.  나의 경우도 "아.. 왜 하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재수 없게"라고 생각하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하지만 "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지. 아직 다른 가족들은 아프지 않은 게 어디야. 이 바람에 집 앞 나무가 우리 집으로 쓰러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라고 생각하면 짜증이 덜난다. 이런 이유로 워스트 케이스 시나리오는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상황이 더 좋아지지 않음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모든 상황은 더 나빠질 수도 있고 훨씬 안 좋았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왜? 이런 일이?"라고 원망하지만 우린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어야 한다. "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가?" 하고. 불행이나 고난, 어려움을 원하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불행은 나쁜 사람들이나 벼락을 맞아도 싼 놈들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성실하게 착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나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이유를 모를 때도 많다. 원인 모를 사건과 불행이 도처에 깔려있는 것이 인생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내게 일어난 고난에 대해 유연하게 일어날 수 있다. "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지금 나의 상황과 처지가 짜증이 난다면 지금 상황에서 진짜 최악은 뭘까? 생각해 보길 바란다. 아마도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 아직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생각이 지금의 어려움과 고난을 견디는 작은 빛이 되어 주리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에서 꽃길이 위험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