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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Jun 30. 2023

밥상머리 교육이 더 필요한 시대

밥상머리 교육이란 말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 " 어른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 먼저 식사를 시작하지 않는다. 밥 먹을 때 반찬을 가리지 않는다. 떠들지 않고 밥을 먹는다. 흘리지 않는다. 어른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지 않는다."등등의 잔소리를 들으며 대화 한번 하지 않고 밥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요즘 세상에 이런 식의 밥상교육을 시키면 아이들의 반발이 무척 거세질 것이고 아이들은 더욱더 부모와 함께 밥을 먹으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과는 점점 달라지는 세상에서 이 밥상머리교육이 더욱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옛날처럼 단순히 예절을 가르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만 20살, 13살, 9살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우리 가족은 될 수 있으면 함께 밥을 먹으려고 한다. 어느 날도 어김없이 함께 옹기종기 모여서 밥을 먹고 있는데 큰 딸이  "우리 집처럼 밥 먹는 집이 없어"라고 말을 꺼냈다. 딸의 이야기는 딸 친구들 대부분 각자 자기 방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식사시간도 다 달라서  밥을 함께 먹는 가족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 말에 13살 아들도 거들었다. 자신의 친구들도 자기 책상에서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를 틀어놓고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하긴 얼마 전 식당에 가서도 대학생쯤 보이는 친구들끼리 와서 각자 스마트 폰만 쳐다보며 밥을 먹는 친구들을 보았다. 요즘 아이들의 추세라고 하지만 마음이 참 답답했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지고  각자의 사적인 공간을 존중하는 시대가 되면서 대부분의 가정에선  아이들 방이 따로 있고, 각자 컴퓨터와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다. 각자 자신만의 편안한 공간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를 보면서 자기가 먹고 싶을 때 밥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좋은 것이기만 할까?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가정에 TV가 한 대밖에 없던 시절 그것도 채널도 딸랑 3개밖에 없었고 하루종일 하지도 않았다. (내가 너무 옛날 사람인 것 같다. ㅜㅜ) 신문을 찾아가며 오빠랑 만화프로그램, 개그프로그램, 오락프로그램을 표시해 놓고 하루종일 그 시간을 기다린 기억이 있다. 그것도 아버지가 오시면 우리에게 주도권은 없었다. 아버지가 오셔서 저녁 내내 재미없는 뉴스를 틀어놓으시거나 야구나 스포츠 채널을 틀어놓으시는 날에 울며 겨자 먹기로 TV 보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가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예능을 하는 날에는 온 식구가 TV앞에 앉아서 같이 울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대화가 없고 소통이 잘 안 되는 집이었지만 그래도 밥 먹을 때 TV 볼 때 등 함께 하는 시간이 있었다.


온 세상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시대지만 오히려 가족들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고 나면, 식사 때 아니고선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밥 먹을 때도 만나지 않는다면 언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지 의아해졌다. 인간관계에서의 유대감은 반드시 함께 보내는 시간에 비례한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 함은 그냥 한집에 함께 살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함께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감정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없이 어떻게 가족 간의 유대감이나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집도 딱히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지는 않다. 지금처럼 아이들이 방학일 땐 그나마 낫지만, 학교를 다닐 땐 각자 삶이 바쁘게 돌아간다. 그나마 다 같이 모이는 시간이 저녁 식사자리이다. 그 시간에 하루의 안부를 묻고 아이들이 고민을 토로하고  또 서로의 섭섭한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다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한다.


나는  모두가 바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식사시간만큼은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함께 즐거움과 기쁨을 나누기도 하고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실없는 장난을 치기도 하며, 어떤 주제로 깊은 이야기도 나눈다. 그래서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아이들과 긴 대화가 1-2시간 이어지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 가족에겐 무척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시간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이 식사시간을 통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려하고 양보하는 법을 배웠다. 밥을 가져다 놓고 국을 나르고 먹은 그릇을 치우는 모든 것이 사회성 교육의 연장선상이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서 나눈 대화들과 토론등을 통해서 아이들은 대화의 기술이나 소통의 방법들도 많이 배웠다.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법, 차례를 기다리는 것, 예의 있게 표현하고 조리 있게 말하는 등등.  어릴 땐 서툴렀던 것들이 커가면서 발전하고 달라지는 모습에 뿌듯해질 때가 많다. 일부러 토론학원이니 발표학원이지 보내지 않아도 집에서 사실 가능한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요즘 시대가 필요한 밥상머리 교육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이유로 우리 집엔 암묵적 식사룰이 몇 가지 있다.

1. 밥 먹을 땐 아무도 스마트 폰을 보지 않는다.

2. 밥은 꼭 식탁에서 먹는다. 절대로 방안으로나 특별한 예외사항을 제외하곤 거실로 가져가지 않는다.

3. 밥시간을 놓친 사람은 알아서 끼니를 챙겨 먹는다.

4.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땐 집중해서 듣는다.

5.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땐 끼어들거나 말을 끊지 않는다.

6. 화나 짜증을 식탁에서 풀지 않는다.

7.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 꼭 감사를 표현한다.

8. 먹은 그릇은 스스로 치운다.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유산은 돈도 아니고 학벌도 아닌 좋은 추억이라 믿는다.  좋은 추억을 가진 아이들은 마음에 쉼터가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앞으로 세상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따뜻했던 추억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어서 해외여행도 가고 비싼 캠프도 보내지만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이 더 강력하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후에 세상에  나가 지치고 힘이 들 때, 내가 해준 밥이 기억났으면 좋겠다. 우리가 식탁에서 함께 깔깔거리며 웃고 장난치던 시간이 생각났으면 좋겠다. 밥 먹으면서 무심코 던졌던 엄마 아빠의 격려와 응원이 생각났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이다. 그 길로 가는 가장 쉬운 시작은 함께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현대사회에 밥 먹는 시간이 그런 시간이 될 수 있다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단 시간은 즐겁고 편안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매일매일은 힘들더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하면서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가정은 분명 달라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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