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부부들의 이혼사유 중에 공동살림과 공동육아에 대한 갈등이 급부상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여성도 직장을 가지는 경우가 많고 남녀차별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결혼하기 전부터 육아와 살림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정해 놓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어떤 부부는 모든 사항을 엑셀 파일로 만들어 놓고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확인하는 부부들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이혼을 하는 부부들이 꽤나 된다고 한다.
과거 말도 안 되는 가부장적인 부부관계의 모습에서 요즘 보이는 변화는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부부 모두가 결혼생활 전반에 있어서 공동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웠다. 부부가 되고 가족이 된다는 것은 회사에서 직원을 뽑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업무가 있고 그 일을 책임지는 사람을 정하고 회사를 경영하듯 그렇게 경영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결혼생활의 공평함을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모든 살림노동이나 육아의 시간을 정확하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남편이 8시간을 근무하니 아내도 8시간만 육아와 살림을 하면 괜찮을까? 아이를 키우는 것과 회사의 큰 프로젝트를 끝내는 것 중에 어는 것이 더 가치가 있고 돈 되는 일일까? 요리를 잘하는 남편도 있고 요리를 못하는 아내도 있다. 누가 요리를 담당해야 할까? 사실 이 모든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리긴 어렵다. 다 개인의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 그러니 어쩌면 한 사람에겐 공평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겐 전혀 공평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다 결혼생활에선 예상치 못한 변수가 무척 많다. 결혼하기 전에 남편은 00,00를 하고 아내는 00, 00를 전담한다고 정해놓는 것은 사실 무용지물이다. 살다 보면 배우자의 직업이나 직장에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코로나와 같은 재앙, 갑자기 누군가가 아플 수도 있다. 계획에 없던 임신이 될 수도 있고, 기다리던 아이가 안 생길 수도 있다. 이렇듯 예상치 못한 사건과 사고는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결혼생활의 관건을 이런 상황들을 얼마나 서로가 유연하게 처리하고 조율하며 사는 가에 달려있기도 하다. 따라서 관계에서 완벽한 50/50의 평등한 헌신이나 공동육아나 살림은 사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간엔 아내의 헌신과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한 시간이 있고, 또 어떤 기간엔 남편의 배려와 노력이 훨씬 더 필요한 시간도 있다. 또 어떤 시기는 아내와 남편모두 마음을 합해서 아픈 가족이나 부모님을 도와드려야 할 시기가 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내가 임신을 했다면 아내의 건강한 출산과 회복을 위해 남편의 헌신과 배려가 더 필요한 시간이다. 반대로 남편이 직장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고 있거나 직장을 새로 옮겼다면 남편의 직장생활을 위해 아내가 양보하고 배려해야 할 시간이 올 수도 있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헌신의 비중이 달라지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배려와 헌신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서로 간의 평등을 앞세워 이런 계약 내지는 약속을 만들어 놓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배우자의 헌신이나 노력이 당연하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원래 그것은 '너의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는 태도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처 그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배우자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원망과 비난이 쏟아지기 일쑤 이다. 부부처럼 매일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감사가 사라지고 비난과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관계는 금방 식어버린다. 이런 태도를 매일 상대방에게 보인다면, 아무리 연애 때 열정적인 사랑을 하고 서로 애틋해서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마음이 식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부부관계에서의 핵심은 내가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는가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존중과 사랑은 단순히 생활비를 정확히 반반 내고 살림을 똑같이 나눠 쓰는 평등함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배우자가 나를 얼마나 배려하고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한 믿음이고, 이 믿음은 서로를 향한 감사와 인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많다. "남들 다하는 육아인데 너만 왜 유별나게 힘들어하니"라는 태도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먼저 육아를 담담하고 하루종일 아이에게 시달린 배우자를 감사하게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싱크대에 물이 흘러넘치고 남편의 설거지가 맘에 안 들어도 직장에서 퇴근한 남편이, 아내를 위해 노력한 정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이런 감사하는 마음과 태도로 다가갈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이 사랑하는 사이이다. 서로에 대해 이런 태도와 시선을 키우는 것이 공평함을 뛰어넘어 사랑과 존중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