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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Oct 06. 2023

타임아웃이나 체벌 없이 육아를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가능하다. 내가 그렇게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처음부터 가능하지는 않았다. 나는 세 아이를 키우고 있고, 첫째는 이제 만 스무 살이 넘었고 둘째는 만 13세 그리고 막내는 9살이다. 안타깝게도 첫째를 키울 때는 둘 다 사용했었다. 타임아웃은 매일 지겹도록 사용했고, 솔직히 매를 들고 아이를 직접 때린 적은 없지만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머리를 쥐어박기도 하고, 등짝을 때리기도 했다. 매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매를 들고 겁을 주고 협박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하지만 둘 다 크게 효과는 없었다. 이십 대 후반의 철없던 나는 여러모로 미숙했다.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아이를 내 말을 잘 듣게 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아동학과를 졸업했으니 아이에 대해서 잘 안다고 착각했지만, 육아는 아이의 문제라기보다는 부모의 문제에 더 가깝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더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7년 정도 흐른 후 둘째를 낳았다. 둘째 아들은 어릴 때 누나랑 싸우거나 화가 나서 성질을 부릴 때 잠깐 타임아웃정도만 했다. 아이에게 매를 들거나 쥐어박거나 하는 등의 체벌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 4년 후 막내는 지금까지 키우면서 타임아웃이나 체벌을 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아이가 천사처럼 태어나 말썽도 부리지 않는 아이였을 리 없다. 오히려 세 아이 중에 가장 까다롭고 장난을 많이 치는 아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타임아웃이나 체벌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내가 아이를 상대할 만큼 여러 가지로 지식이나 내공이 쌓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타임아웃이나 체벌 없이 충분히 양육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1. 아이와의 애착이 중요하다. 아이가 부모를 생각했을 때 나를 정말 사랑하고 아껴주고 있다는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엄마아빠는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를 알고 있으면 아이들의 문제행동은 확연히 줄어든다.


2. 아이의 기질과 발달 단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아동학과를 졸업했어도 아이를 키워본 것은 결혼하고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첫 아이를 키울 때 아이를 향한 말도 안 되는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2-3살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친구에게 나눠줄 리 없다. 4-5살 아이가 엄마가 하지 말라는 말을 금방 까먹는 것은 당연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 가방을 싸지 않고 숙제랄 까먹고 안 가지고 가는 것은 당연했다. 첫 아이를 키울 땐 이런 아이의 미숙함이 이해되지 않아서 참 혼낸 적이 많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첫아이를 키워봤기에 그리고 둘째를 키워보면서 아이들의 참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자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를 혼낸 것 중에 많은 부분은, 나의 조바심과 인내심 부족 때문이었지 아이의 잘못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둘째와 셋째는 그런 일로 혼낼 일이 없었다. 가르쳐야 하는 것은 일관적으로 전달하고 기다려주면 되는 일들이었던 것이다.


3. 부모의 권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많은 부모들의 실수가 여기서 발생한다. 어릴 때 너무 다정하고 편안한 부모의 역할만을 하다 보니 점점 자라면서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아이에게 부모는 더 이상 따라야 할 권위 있는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행동들이 무척 많다. 부모의 권위는 아이를 내 맘대로 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이에게 예절과 규범을 가르쳐서 건강한 인격체로 만들어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부모들이 어린 시절엔 아이는 마냥 "예쁘다. 잘한다. 최고다." 하며 키운다. 그래야 자존감이 자라는 줄 안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가 고학년이 되어가고 사춘기가 되기 시작하면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간섭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갈등이 폭발한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양육방식은 아이들의 심리발달을 거스르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내가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고 본이 되고 훈육을 해야 하는 시기는 커서가 아니라 만 2-10세 이전이다. 이 시기에 많은 부모들이 영어 단어 하나, 한글 깨치기, 책 일기 등에 집중하지만 정작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것은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아이에게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는  법, 남들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법,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 규칙을 지키고 따르는 법, 좋아하는 것도 절제하고 사용할 줄 아는 법등을 가르쳐야 한다. 이 시기에 정작 가르쳐야 하는 것들을 많은 부모들이 놓치기에 육아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어릴 때 이런 것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부모의 권위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에게 부모는 나를 정말 사랑하지만 부모의 뜻을 거스르면 안 되는 권위도 함께 느끼게 해야 한다. 다만 이런 것들을 가르칠 때 아이를 너무 공포스럽거나 무섭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억압적이거나 공포스러운 훈육은 아이의 심리상태를 더욱더 불안하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단호하고 일관적인 태도면 충분하다. 마치 부모의 말은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져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따르게 되어 있다.


가장 아이와 부모를 힘들게 만드는 양육태도가 일관적이지 못한 양육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갑자기 집에 친구를 데려오겠다고 한다. 그때 엄마는 빨리 상황을 판단해서 친구와 와도 되는지 아니면 안 되는지 결정해서 아이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만약 오후에 약속이 있거나 아이가 학원을 가야 한다면 " 오늘을 000한 것 때문에 안돼, 다른 날을 찾아보자."라고 말하고 끝까지 말한 바를 이행해야 한다. 아이가 울고 불고 떼를 쓰더라고 엄마가 한 말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배워야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서도 떼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가 안된다고 했다가 아이가 너무 심하게 떼를 쓰고 운다고 "아.. 그래 알았어. 오늘 한 번 만이야. 너 다음에도 이렇게 하면 안 돼."라고 부모의 말을 바꾸면 아이는 다음번에 더 큰 울음과 고집을 피우게 될 확률이 무척 높다. 대부분 아이들이 자신의 울음이나 떼씀이 먹힌다는 것을 알고 나면, 다음번에도 자신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모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 밖에 배우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울음시간이 길어지고 떼쓰는 기간도 길어지게 만드는 꼴이 된다. 그러다 참다 참다 부모도 같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모와 아이 모두를 지치게 만들고 육아는 끔찍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끔 가다 "애 데려다가 키워보세요. 절대로 말을 안 들어요." 하는 부모들의 경우 이런 일관적이지 못한 양육태도를 가진 경우가 무척 많다.


어릴 때 부모의 가르침이나 가치관에 익숙이 된 후에, 아이가 점점 성장하고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더 많은 자유와 선택권을 통해서 스스로 자신을 찾아가고 자신의 장점과 기질을 파악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부모의 가치관이나 가르침이 잘 배어 있으면, 커서도 크게 삐뚤어지거나 엇나가지 않는다. 그 모든 가르침과 훈육이 결국은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거꾸로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린 시절에 아이에게 무한한 자유와 허용을 주다가,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기 시작할 때쯤부터 아이를 속박하고 구속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가 나빠지고 관계가 나빠지면 육아는 점점 어려워진다. 


4.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 스스로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지치고 힘들 때가 무척 많다. 육아는 부모의 인내심을 수련하는 과정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때 부모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거나 지쳐있으면 쉽게 화를 내게 되고 심한 경우 체벌까지도 가게 된다. 그 방법이 가장 빠르게 이 불편하고 힘든 상황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부모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서 생기는 경우이다.


나 또한 첫아이를 키울 때 이 부분이 너무 부족했다. 나이도 어리기도 했고 육아경험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어린 시절 상처가 불거지기도 하고 불안과 열등감이 증폭되기도 했다. 그 당시엔 나의 문제라고 보기보다는 나를 그렇게 만든 딸아이를 원망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긴 타임아웃을 하게 하거나 매를 들고 협박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내 내면이 성장하고 상처가 회복될수록  아이와 나를 분리할 수 있었다. 그제야 어른으로 아이를 어떻게 지도하고 가르쳐야 할지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실수하고 잘못을 해도 나를 향한 반항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덜 발달하고 미숙한 아이로 보였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아이에게 훈육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둘째와 셋째를 키우고 나서야 육아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악을 쓰지 않아도 회초리를 들고 아이를 윽박지르지 않아도 아이를 충분히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 편안한 육아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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