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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Sep 15. 2023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어요.

"나중에 부모가 되면 정말 친구 같은 엄마/ 아빠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마도 자신들의 부모가 너무 무섭고 어려웠거나 아이와 정말 친하게 잘 지내고픈 소망을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의도는 알겠지만 정말 친구 같은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하는 것이다. 요즘은 정말 육아에 대한 정보도 많아지고 장난감, 육아아이템이 넘쳐나고, 젊은 엄마아빠들 모두 힘을 모아 육아에 동참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육아는 힘들다고 한다. 뉴스를 보면 오히려 점점 떼쓰고 고집부리며 말썽을 부리는 금쪽이들은 더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친구에겐 '권위'는 없기 때문이다. 친구는 함께 즐거울 땐 좋아도 내 말을 듣지 않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싸우고 언제든 뒤돌아 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부모자녀관계는 그럴 수 없다.  부모자녀사이가 항상 재미있고 즐거울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있지만 자녀를 건강한 성인으로 키워야할 의무도 있다. 아이들의 자기중심적인 본성을 잘 양육에서 건강하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키워내야 한다.  그래서 육아를 할 땐 반드시 '부모의 권위'가 있어야 한다.


부모의 권위를 마치 과거 자녀의 모든 결정을 부모 마음대로 결정해도 입도 뻥끗하지 못하던 억압이나 공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라나는 아이는 아직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올바른 선택을 결정하지 못하는 미숙한 존재이다. 그래서 때로는 아이는 원하지 않아도 억지로 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카시트 하기, 매일 지각하지 않고 학교 가기, 형제나 친구들 괴롭히지 않기, 나쁜 말 쓰지 않기, 남의 물건 훔치지 않기 등등 아이를 키우다 보면 '사랑'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미숙하고 아직 사회화가 되어 있지 않은 존재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친구같은 부모는 부모의 가르침에 힘이 없다. "니가 뭔데 날 가르쳐?"라는 태도가 알게 모르게 베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자녀에게 친구같은 부모는 그리 좋은 부모가 되지 않는다.


부모에게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크게 반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따르게 되어 있다. 자녀가 부모를 믿고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이 타당하고 일관적인 것을 안다면, "엄마아빠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권위이다. 그래서 어린 자녀가 부모를 절대로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자녀에게 부모는 "나를 사랑하고 보호하지만 절대로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여야 한다. 그래야 육아가 편해진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이나 언행은 부모가 미리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때 부모의 말에 힘이 생기기 시작한다.


큰 딸이 미국고등학교를 가면서 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에서 직접적으로 한 것을 본 적은 없다. 딸은 엄마 아빠 앞에서 도무지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딸은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 집에선 욕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아무리 화가 나도 집에서나 밖에서나 욕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딸은 엄마 아빠가 누군가에게 욕을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그러니 부모 앞에서 욕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딸이 친구들과의 전화통화 이야기를 방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을 간혹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 가서 친구들 사이에서 쓰는 말까지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지만, 집에선 동생들도 배울 수 있으니 사용하지 말라고 언질을 주었다. 그랬더니 "알겠다며 동생들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그 뒤로는 나름 조심해서 말하는 것을 느꼈다. 이런 훈육은 부모의 권위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 욕을 쓰면 안 되냐? 다른 애들도 다 쓴다. 엄마 아빠도 욕 할 때 있지 않냐?"라고 따지고 들면 사실 부모는 할 말이 없을 때가 더 많다. 그리곤 지루한 실랑이만 오고 가는 것이다.


밥 먹으면서 스마트 폰 하지 않기, 컴퓨터를 어린 아이들 방에 두지 않기, 스마트 폰이나 아이패드 사용제한하기, 때리지 않기, 서로에게 거짓말하지 않기, 허락 없이 과자나 아이스크림 마음대로 꺼내먹지 않기, 남의 물건 함부로 만지지 않기 등등을 자녀들의 동의를 얻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주제들을 아이들과 상의하고 조율하고 동의를 구하는 부모들이 있다. 이런 모습들이 부모의 권위를 떨어뜨리게 된다. 아이의 안전이나 건강한 아이로 자라기 위해 필요한 부분에선 부모가 귄위를 가지고 지시하고 따르게 해야 한다.

 

부모의 권위를 자녀를 무섭게 만들고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권위는 부모의 말은 곧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부모의 권위는 어쩌면 아이에게 보여주는 신뢰와 일관성에 달려있다. 부모는 매일 같이 싸우면서 형제끼리 잘 지내라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다. 부모는 평소에 책도 안 보고 TV나 스마트 폰만 쳐다보면서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다. 더 나아가 아이와 한 약속을 번번이 어기거나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면 자녀는 부모를 존경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 귄위를 가지고 부모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오히려 더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왜냐하면 부모의 가르침이나 가이드가 궁긍적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자신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친하기만 하고 신뢰나 믿음을 가지지 못한 관계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 수로 불안해진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아이들이 부모를 무시하거나 아예 말을 듣지 않게 되기도 하고, 너무 만만하고 친근하기만 한 부모는 정작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자녀관계가 친구처럼 될 수 있는 시기는 자녀가 성인이 되어 자신만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자라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때이다. 그렇게 서로가 다 큰 성인으로 각자의 세계가 확고해졌을 땐 친구 같은 사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자녀에게 친구 같은 부모는 위험하다. 왜냐하면 자라나는 아이에겐 같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친구도 필요하지만, 자신을 가이드해 주고 또 무슨 일이 생겨도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른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건강하게 자라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신의 영역을 키워갈 때, 그땐 부모자녀사이도 친구 같은 사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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